부산행
한 해가 마지막 가는 날은 일요일이었다. 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대학 동기가 해안가 트레킹을 제안해 왔다만 응할 수 없었다. 아내와 함께 부산에 문병을 다녀올 일 때문이었다. 지난 추석 무렵부터 손위 셋째 형님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해 있어서다. 그동안 대학병원을 비롯해 몇 군데 병원을 옮겨가며 여러 검사와 치료를 받고 있으나 시일이 걸려야 좋아질 듯하다.
나는 몇 차례 문병을 다녀왔으나 아내는 그간 몸이 편찮은 시숙과 간병으로 고생하는 손위 동서를 찾아가보지 못했다. 평소 휴일이라면 혼자 산행차림으로 일찍부터 훌훌 길을 나섰으나 그럴 수 없었다. 외출 준비를 끝낸 아내를 기다려 택시를 타고 팔룡동 버스터미널로 갔다. 부산 사상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부산은 버스 종점이 세 곳이나 된다. 사상 말고 노포동과 해운대도 있다.
사상에 닿아 지하철 2호선으로 서면으로 가서 1호선 다대포행으로 갈아탔다. 몇 구간 못 가 부산진역에 내려 동부경찰서와 인접한 어느 종합병원으로 갔다. 형님은 건물이 높이가 꽤 되는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나는 그동안 가덕도 집과 해운대 병원과 녹산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다녀간 적 있다. 형님은 외과 수술로 치료될 성질의 병이 아니었다. 마음이 여린 성격이 병을 불렀다.
요즘 병문안은 평일은 저녁 시간대만, 주말과 휴일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허용했다.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는 형님을 보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형님 내외는 두 분 다 부산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세월 따라 은퇴해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소심하고 반듯해 너무나도 교과서적으로 사는 분이다. 아우는 벗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씩 나누나 형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병실에서 두어 시간 가량 머물면서 형님이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십사고 했다. 날씨가 풀린 봄에는 아우와 함께 강둑이나 해안가 산책을 같이 가자고 했다. 병실을 더 지킨다고 해도 내가 뾰족이 도움이 될 게 없었다. 아내와 아쉬운 발길을 돌리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같은 부산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넣어 오빠의 안부를 전했다. 여동생도 이미 몇 차례 병실을 다녀간 바 있다.
바로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아내 보고 자갈치시장을 구경하고 가자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남포동 다음 자갈치에서 내렸다. 영화로 유명해진 국제시장과 인접했다. 회 센터를 비롯한 자갈치 시장은 사람들로 붐벼 활기가 넘쳐났다. 부산 구도심은 노령화 되어 도심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으나 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회 센터 1층으로 들었더니 펄떡이는 활어와 어패류가 가득했다.
시장 골목으로 접어드니 창원에서는 볼 수 없는 선도가 높은 생선과 조개가 가득했다. 갓 잡아 횟감이 된다는 방어는 커서 상어만 했다. 동해 어디서 잡아온 듯 한 대왕문어도 엄청나게 컸다.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고등어와 갈치가 주를 이루었다. 고래 고기와 상어 내장을 삶아 파는 가게도 보였다. 시장을 둘러본 뒤 생선구이 골목으로 갔다. 늦은 점심시간인 데도 자리가 없었다.
여러 생선구이 식당 가운데 겨우 한 테이블 자리가 나 아내와 마주 앉았다. 모둠 생선구이를 시켰더니 선짓국과 공기밥이 따라 나왔다. 도톰한 갈치 한 도막에다 고등어와 가자미와 조기가 각 한 마리씩 구워져 나왔다. 나는 생선구이가 안주로 좋을 듯해 아내보고 맑은 술을 한 잔 곁들이고 싶다 했더니 허락을 받지 못했다. 생선구이는 자갈치 시장에서 회 센터와 함께 알려진 명소다.
점심 식후 사상터미널로 가질 않고 지하철 하단역으로 나갔다. 하단은 을숙도와 인접한 낙동강 하류다. 그곳에서 명지와 녹산을 지나 용원으로 다니는 시내버스를 탔다. 명지 신도시 아파트단지를 지나 용원 종점에서도 어시장을 둘러봤다. 제철을 맞은 대구가 많았다. 가리비를 비롯해 싱싱한 조개들도 보였다. 부지런히 굴을 까는 아낙도 있었다. 창원으로 가는 757번 좌석버스를 탔다. 17.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