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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창조와 축복
(창 1: 26-31)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과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 만물 그리고 인간이 깊은 관계가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우연히 이 땅에 왔다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인간은 영원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 안에서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하여 애착과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창세기 1장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줍니다.
특히 본문은 인간의 존엄성과 그 탁월함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닫고 감사와 기쁨 가운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 인간 창조의 의미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e)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 구조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영적, 도덕적 본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도 인간의 영적, 도덕적 본성을 표현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간 창조는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그 위치는 피조물 가운데 당연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 영장(靈長)이라는 것은 최고의 힘을 가진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지,정,의(知,精,意)를 갖춘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 것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어떤 동질성에 의해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교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누구나가 그 마음에 종교성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신적 요구, 즉 종교성을 가지고 있어서 무언가를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혼자 살지 않고 교제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은 하나님을 믿으며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2.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전, 물고기와 모든 생물과 새를 만드신 후에 그들에게 복을 베풀었습니다.
(창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한 것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풍성히 늘어나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과정에서 특별히 애정을 기울인 생명체에 대한 보존과 증식을 통한 축복과 사랑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생명을 창조하신 후에 그것을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생명이 보존, 번식될 수 있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생물들은 이러한 축복의 방법에 의해 제각기 독특한 방법으로 종족을 보존하고 번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창조의 섭리에 의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도록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땅과 바다에 거하는 생물과 날짐승들이 받았던 복 이외에 인간에게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동물들이 받았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과 함께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복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먼저 "땅에 충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이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뿐 아니라, 온 백성이 모든 땅에서 거할 수 있도록 복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땅을 정복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땅을 소유하라는 말인 동시에 그 땅에 있는 자원을 활용하여 필요를 채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를 마음껏 향유하고 정복할 권리와 우주를 개발하고 가꾸도록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전 우주를 마음껏 향유하고 정복하고 개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의무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문화적 소명이며, 문화적 명령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경제 생활을 영위하며, 교육과 학문, 사회 생활, 예술과 신앙생활 등의 소위 문화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태초 이래로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문화를 창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각 분야에서 뛰어나도록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자기 분야를 개척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사고 구조와 생각을 바꾸어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소위 선진국은 바로 이 문화 명령에 순종한 기독교 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좌절하거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낙망, 비관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며 정복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문화적 위임에 근거하여 이 땅에서 충만하며, 정복하는 진취적 삶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배를 통하여 삶의 힘을 얻고, 사업과 인생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이런 취지에서 뻗어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
첫째,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복을 주셨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다스리다"는 말은 '주권을 잡다', '지배하다', '통치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한 말씀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등한 존재로 다른 피조물들에게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분명히 창조 당시 이 땅의 주역으로서 임명받았으나, 범죄 이후부터 인간은 땅과 모든 생물에 대한 주권 행사를 올바로 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오히려 자연과 생물에 대하여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때로는 신으로 착각하여 그것을 섬기게 되는 과오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니 모든 피조물에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는 능력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히 11:38).
둘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인간에게 식물로 주셨습니다.
(창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인간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양식으로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와 우주 만물을 지으신후, 이것을 인간의 삶과 축복을 위해서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만 우리의 필요를 위한 것으로만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운 삶을 위해 풍부하고 풍족하며 기름진 것으로 다양하게 그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 인간에게 주신 무한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지 인간이 물질을 위해 있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왕이면, 남에게 꾸어 쓰기보다는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창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인간뿐만 아니라, 하등 피조물까지도 날마다 먹여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게 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요, 모든 것이 넉넉한 분으로서 모든 생물들의 요구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먹여 주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그에게 영적인 것 뿐 아니라, 육적인 것도 주십니다.
미국의 카놀 산도스씨는 60세에 파산을 당했습니다. 그는 수백만 달러의 빚을 지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산도스씨는 자살할 생각으로 밤늦게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그때 어디에선가 찬송가 432장이 애절하게 들려왔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주 너를 지키리/주 날개 밑에 거하라/주 너를 지키리”찬송은 조그마한 교회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늙은 부인이 꿇어앉아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산도스씨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교회의 바닥에 엎드려 통곡을 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무거운 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새 출발'에 대한 힘이 솟구쳤습니다.
그는 자본금이 없었기 때문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번 돈으로 통닭 집을 운영했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도스 치킨'입니다. 그는 결국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또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회사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기름회사로 이집트에서 기름을 퍼내고 있는 유명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의 스탠다드 오일 회사가 이집트에서 석유를 퍼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의 중역가운데,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읽던 중 출애굽기 2장을 읽고 있는데, "레위족속 중 한 사람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 동안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에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2장) 라는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읽는 동안 그의 머리에 무엇인가 번갯불처럼 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역청'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청은 영어로 피치(pitch)라고 하는 것인데, 피치는 바로 석유의 일종입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역청을 구할 수 있었다면, 바로 그 곳에 기름이 날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한 그는 찰스 휫샤트(Charles Whitshott)라는 지질학자를 이집트로 보내어 현지조사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곳에서 커다란 유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결 론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사실 하나님은 피조물을 향해 계속 감탄사를 발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 창조 사역까지 모두 마친 후에 발하신 감탄사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한층 더 고조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감탄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의도하신 모든 것이 성취되어 피조계에 조그마한 흠도 없이 조화와 질서와 아름다움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간이 건강하며 모든 것을 누리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에덴의 축복을 누리는 데데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노동을 하면서 수고의 대가로 그 복을 누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또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만 생육하며 번성하게 복을 유지하게 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가인은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생 아벨을 참혹한 죽이는 범죄까지 저지르므로 더 인간에게 더 악한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노력하여도 땅은 황폐하여 식물을 얻기 위하여 가시와 엉겅퀴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뭄과 홍수 그리고 폭풍우로 말미암아 경작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며 그에게로 돌아와 은혜를 구하지 않고는 그 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학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우리 인간에게는 특별히 큰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며 식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이며 또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을 것입니다.
사람,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시는 피조물
창 1: 31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적 존재인 사람을 창조하여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을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제 모든 창조의 일은 끝이 났고, 하나님은 모든 창조세계를 둘러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만족하셨습니다. 그 만족하심을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창1:31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크게 만족하여 기뻐하신 것은 특히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볼 때보다 사람을 바라볼 때 더 기뻐하셨고, 지구의 아름다운 산천과 짐승들을 바라볼 때보다 사람을 바라보실 때 더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보다 사람을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들을 보실 때보다 사람을 보실 때 더욱 만족하셨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창조의 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1. 사람된 우리는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토록 기뻐하시는 것은 사람이 영이신 하나님과 같이 영적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짐승보다 사람을 더 기뻐하시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시골에 가면 짐승들을 많이 키웁니다. 소나 돼지, 염소, 개, 고양이, 닭이나 토끼 등을 키웁니다. 농부는 이런 가축들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정성을 다하여 키웁니다. 그 정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러나 농부는 자기 자식을 제일 사랑합니다. 소는 죽도록 일을 하지만 여물이나 먹여서 외양간에 재우지만, 아들은 일은 안하고 판판히 놀기만 해도 이쁘다고 맛난 음식 먹여서 방에다 이불을 덮어서 재웁니다. 닭은 꼬박꼬박 알을 낳아서 농부를 기쁘게 하지만 딸은 그저 아빠 따라다니며 귀찮게만 구는데도 예뻐서 입을 맞추고 난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아들딸은 아버지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형상을 가졌다는 것은 그 어떤 경제성보다도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바가 됩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지구의 땅 속에 묻혀 있는 모든 보석보다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사람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동식물보다도 가치가 있고, 온 우주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사랑을 생각해 보면 더 감격적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값 주고 사셔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런 희생을 치르시면서 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기 원하셨습니까? 사람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버리고는 하나님이 기뻐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다 지옥에 보내버리면 하나님은 아들 잃은 어미처럼 슬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아들들이 야곱의 생명과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창44:30). 그래서 베냐민이 죽으면 야곱도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죽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44:31).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결탁되게 하셨습니다. 사람 없이 하나님 혼자 기뻐하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구주로 보내어 십자가에 희생케 하시고 구원하여 당신의 아들을 삼고 영원한 기쁨을 삼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이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됨을 기뻐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맘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외모에 불만을 갖습니다. 키가 작은 것에 대하여, 얼굴이 못생긴 것에 대하여, 재능이 뛰어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불만을 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육신에 장애가 있다든지, 다른 사람에 비해 뭔가 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 자기를 비하하고 자학하여 심각한 병에 빠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도 비관을 많이 합니다.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비관하여 부자만 보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있고, 모든 것을 잃고서라도 부자가 되어보려고 힘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모두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외모나 환경, 재능의 우열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평하게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를 아낌없이 희생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영원하고 완전한 천국을 예비하시고 그곳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너무 너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자신을 기뻐하여야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공주병 왕자병과는 다른 것입니다. 공주병 왕자병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을 지나치게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지만 우리의 기쁨은 그런 것과는 질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됨을 기뻐합시다.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음을 기뻐합시다. 사람답게 살기를 힘씁시다.
2. 우리는 늘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된 것은 놀라운 복이요 기쁨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이란 단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였습니다. 창세기가 그것을 웅변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웅변은 성경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16:3)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바라보시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십니다. 하물며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때에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여 행하는 모든 행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을 미워하고 저주하실 수밖에 없으셨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시고 하나님은 다시 성도를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성도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성도의 순종을 기뻐하시고, 성도의 찬송을 기뻐하시며, 성도의 기도, 예배, 충성, 봉사를 기뻐하심을 알아야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겠습니다(고전10:31). 나의 기쁨을 구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여 살아야겠습니다.
이런 삶이 실상은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기쁨보다 더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께 영광을 돌린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기쁨을 위해 사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고 고백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삶을 진정한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십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나의 영광이라고 고백하게 될 때 정말 주님은 그런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아주 영원한 기쁨, 영원한 영광을 주십니다.
다윗은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도 자신의 기쁨이나 영광을 위해 살 때보다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 때의 기쁨과 영광이 더 크다고 고백하게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바라보며 기뻐합시다. 그리고 더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기를 힘씁시다. 이것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삶임을 알고 사람답게 사기를 힘씁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