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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참 농담은 그만합시다.』
남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지금 저기「소파」에 앉아 있는「씰크햇트」에「모노클」을 쓴신사 ─ 그가 대체 누굽니까?』
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글쎄 누굴까? 아, 이선배라는 화가가 아니예요?』
『전부터 친분이 있었읍니까?』
『아뇨. 오늘밤이 처음 ─ 아직 인사도 못했어요.』
공작 부인은 그리고 남수의 어깨 위로 묵묵히 앉아 있는「씰크햇트」의 신사를 뚫어질 듯이 넘겨다 본다.
남수는 다시 말을 이어
『그리고는 조금 전 곡마단의 어릿광대로 가장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대체 누굽니까?』
『곡마단의 어릿광대?』
『얼굴에다 흰떡같은 분칠을 하고 우수워서 죽겠다는 듯 초생달 같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 사람, 머리에는 주홍빛 수건을 쓰고……』
공작부인은 이상하다는 듯이「홀」안을 이리저리 휘 둘러 보았다.
『어디 있어요?』
『없을리가 있나? 조금 아까도 있었는데 ─』
『누굴까?……』
남수와 공작부인이 「홀」안을 아무리 살펴보았으나 주홍빛 도화복으로 전신을 감추고 히죽히죽 웃고 서 있던 수상한 그림자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 도화역자(道化役者)
춤은 또 한 차례 끝났다.
백남수와 헤어진 공작부인은 저편「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이선배 옆으로 걸어갔다. 그때 이선배는 얼른「포켙」에서 커다란 「마스크」를 꺼내어 눈과 이마를 가리우면서 몸을 일으켰다.
『처음뵙겠읍니다. 이선배 ─ 김수일(金秀一)군을 대신하여 이 흥미 있는 가장무도회를 구경할 셈으로……』
독자제군은 이 선배가 오늘밤 이 공작부인의 저택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부터 자기의 본 음성은 감추고 가짜 목소리로 대화(對話)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만 할 것이다.
공작부인은 약간 수심 띈 얼굴로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읍니다. 수일씨와는 전부터 친분이 있었어요?』
『저와 수일군은 막역지우 ─ 수일군의 일신상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알고 있읍니다.』
『네, 그러세요?』
공작부인의 주옥같은 두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공작부인, 이리로 좀 나오시지요.』
이선배는 앞장을 서서 홀 밖 발코니로 나갔다. 명수대 일대에 고요히 흐르는 달빛 ─
『그때 수일씨는 어디 편찮으세요?』
그러나 그 때 자칭 화가 이선배는 엄숙한 목소리로
『공작부인!』
하고 힘있게 불렀다. 순간, 공작부인의 화려한 얼굴빛이 금새 어두워 졌다.
『네?』
『백영호씨와의 결혼식을 끝끝네 거행하실 작정입니까?』
이선배의 물음의 떨어지자 마자 공작 부인의 관을 쓴 머리가 창백한 달빛속에서 힘없이 숙으러졌다.
『대답을 하십시요! 당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수일군의 일생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
『그 처럼 순진하고 쾌할한 청년으로부터 당신은 영원한 행복을 빼앗으려는 겁니까?』
『…………』
『대답을 하십시요! 그에게 준 사랑의 말 ─ 자기 입으로 한 말에 책임을 못 느끼십니까?』
그러나 공작부인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숙으렸던 머리를 들어 달빛에 곱게 깔린 한강을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었다.
꿈과 같은 백요(白妖)의 세계, 멀리 서울 시가의 울긋불긋한 네온이 호화롭게 흐른다.
『수일씨!…………수일씨!』
약간 떨리는 공작부인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긴 한숨과 함께 얽히어 나왔다.
『운명은 김수일씨와 저와 서로 사모하는 마음을 허락했으나 결혼까지는 허락치 않았다고 ─ 돌아 가시면 부디 부디 그떻게 전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백영호씨의 백만원과 결혼 하시렵니까?』
『말씀을 삼가세요.』
『그러면……』
『백선생은 나의 예술 파트너 ─ 나의 예술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 ─ 나의 세계적 진출을
위하여 노력한 사람이예요.』
『사랑과 의리를 구별하시지요.』
『저는 연애 지상주의자가 아니라는 말을 수일씨에게 전해 주셨으면 고맙겠어요.』
『잘 알아 듣겠읍니다. 다시는 수일군의 자취를 찾으려고는 생각지 마시요.』
『……?』
이선배가 던진 최후의 한 마디는 확실히 공작부인의 가슴을 바늘로 찌른 듯, 긴 눈썹 밑에 숨어 있던 두 눈동자가 쏘는 듯이 이선배를 쳐다 보았다. 그때 젊은 안내인이 밖으로 나오면서
『아씨, 삼청동댁에서 오셨읍니다.』
하고 공손히 읍하였다.
『아, 그래?』
하고 공작부인은 잠깐 주저하는 모양을 보이더니
『그럼 잠깐 실례 하겠읍니다.』
한마디를 남겨놓고 약혼자 백영호씨를 맞이하러「홀」안으로 들어갔다.
이선배는 공작부인이 살아진『홀』문쪽을 언제까지나 바라보면서 중얼거린다.
『아아! 절망이다! 암흑이로구나!』
『발코니』에서 이선배와 헤어진 공작부인은 지금「홀」안으로 들어서는 백영호씨와 그이 딸 정란(貞蘭)을 향하여 걸어간다.
『늦었읍니다.』
화려한 러시아 귀족의 복장을 입은 백영호씨는 서양사람 모양으로 젊은 약혼자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아버지는 오늘 밤 자기를 네프류 ─ 도프 공작이라고 부르란답니다. 저카츄 ─ 샤를 위하여 일생을 참회 생할로 보낸 도덕적 연애인!』
서반아의 집시 칼멘으로 분장한 정란이 냉큼 나서면서 공작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호호……네프류 ─ 도프 공작!』
공작부인은 반만큼 웃는 낯으로
『그럼 나도 저 천진난만한 카츄 ─ 샤로 분장 했으면 좋았을 걸!』
그러면서 약혼자의 딸 정란의 부드려운 어깨를 정답게 껴안았다.
그 한 마디가 늙은 백영호를 어지간히 만족시킨 모양이다.
『카 ─ 츄샤가 공작의 면류관을 썼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하하하……』
백영호씨는 눈부신 듯이 젊은 약혼자의 아담한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네프류 ─ 도프 공작이라는 공작(公爵)과 공작부인이라는 공작(孔雀)의일치에 무척 흥미를 느끼시는 모양이야. 그렇지 않아요? ─ 네프류 ─ 도프 공작부인!』
『호호호……』
『호호호……』
『얘는 너무 입이 빨라서 ─ 』
『그래 그렇지 않으셔요? 아버지.』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았다.』
삼년 전 어머니를 여윈 정란은 홀아버지의 사랑을 혼자 받아 가면서 자랐다. 작년 봄 P 여자 전문학교 음악과를 마치고 혼담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금방석 위에 앉은 정란이었다.
그 수 많은 혼담 가운데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서 아까 잠깐 독자제군에게 소개하여 둔 「그리샤」 조각형(型)의 미남자 오상억 변호사가 있었다.
청년변호사 오상억은 법조계에 마치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일뿐더러 백영호 씨의 고문 변호사란 지위로 따져 보더라도 백정란의 약혼 상대자로서 가장 유력한 후보자였다. 백영호 씨는 딸 정란에게 오상억을 택하기를 누구보다도 주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란의 가슴속에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한 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그것은 작년 봄 학위논문이 통과된 의학박사 문학수(文學洙)와의 사이에 얽히어진 「로맨스」였다. 정란은 마침내 아버지를 설복하여 문학수와 약혼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년 늦은 가을의 일이었다.
인물소개는 이만해두고 이제부터 필자는 그리도 호화롭던 가장 무도회가 돌연 공포의 마수가 꾸물거리는 암흑의 세계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사실을 기록하여야만 될 때가 왔다.
그것은 유랑한 음악에 마추어 약혼자 백영호 씨를 상대로 한차례 춤을 추고 난 공작부인이 저 편 「소파」에 걸터 앉아서 자기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씰크햇트」의 신사 이선배와 시선이 부딪치면 그 청아한 눈동자가 구름 낀 하늘처럼 어두어졌을 때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왜 그리 안색이 좋지 못하시오? 무슨 근심되는 일이라도?』
백영호 씨의 음성은 언제나 은근히 그리고 부드럽게 굴러 나오는 것이다.
『아니예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 저 잠깐 화장을 고치고 나오겠읍니다.』
그리고 공작부인이 이선배 앞을 지나 복도로 나가버리지 약 오분 후 돌연
『악』
하고 마치 장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릴까?』
열광적으로 춤추며 돌아가던 여러 손님들은 마치 방바닥에 얼어 붙은 듯이 우뚝 멎었다. 그때 또 한 번
『아, 아, 아―ㅅ!』
하고 외치는 공작부인의 공포에 찬 목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찢는다.
『공작부인의 목소리가 아닌가?』
『이게 대체 어디서 나는가?』
방바닥에 얼어붙은 듯이 우뚝 멎었던 손님들은 다음 순간,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무서운 예감을 전신에 느끼면서 떠들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쏜살같이 「홀」 밖으로 뛰어 나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택시 ─ 도오」에 「씰크햇트」를 쓴 이선배의 검은 그림자요 하나는 「네프류 ─ 도프」로 분장한 백영호 씨의 흰 그림자다.
『공작부인은 어디 있읍니까?』
이선배의 고함소리다.
『화장실에 있을겁니다.』
백영호 씨의 목소리다.
이선배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넓은 복도를 왼편 쪽으로 달음박질 해 간다. 그는 전 부터 공작부인의 화장실을 잘 알고 있던 사람처럼 서슴치 않고 왼편 복도 맨 나중 방 「도어」를 힘차게 열어제쳤다.
『앗!』
하고 외치는 이선배의 놀란 목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덜컥하고 눌렀다.
사람들은 대체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커다란 삼면경(三面鏡) 앞에 무참히 쓸어져 있는 공작부인의 몸뚱이! 공작부인의 왼편 어깨 위에 날카로운 비수가 박혀 있지 않은가! ─
『이게 어찌된 일이요?』
이선배와 백영호 씨는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부르짖으며 쓸어진 공작부인 옆으로 뛰어 갔다.
『빨리 빨리…… 저 주홍빛 어릿광대를 …… 들창으로 …… 그 들창으로 ……』
공작부인의 숨찬 목소리와 함께 그의 백납(白蠟)처럼 흰 손가락이 활짝 열어 젖힌 달빛 어린 창 밖을 가리키며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순간 그 주책없이 히죽히죽 웃으며 돌아 가던 곡마단의 웃음단지 도화역자의 간판 같은 얼굴이 번개 같이 눈 앞에 떠 올랐다.
공작부인이 말한「어릿광대」란 한 마디에 누구 보다도 놀란 것은 백영호 씨의 아들 백남수였다. 그는 아까부터 수상한 도화역자의 정체를 누구보다도 의혹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 속히 정원을 뒤져 봅시다!』
백남수는 그렇게 고함을 치면서 들창을 넘어 달빛이 희미한 정원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손님들은 감히 그의 뒤를 따라 나갈 용기가 없다는 듯이 돌부처처럼 우뚝 서서 자기네들도 조금 전에 목격한 도화역자의 무서운 환상을 머리에 그려 볼 뿐이다.
한편 이선배는 시뻘건 피가 뚝뚝 흘러 내리는 공작부인의 어깨로부터 그처럼 절박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손수건으로 칼 자루를 쥐고 뽑으면서
『경찰 당국이 올 때까지는 누구든지 이 칼에 손을 대지 마시요.』
하고 사람들에게 주의를 시켰다.
얼른 보기에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으나 정신을 잃어 버린 공작부인의 납상(蠟像)처럼 해말쑥한 얼굴에는 그 어떤 무서운 광경을 아직도 눈 앞에 보는 듯한 공포의 빛이 심각히 그려져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요?』
까닭 모르는 이 무참한 봉변에 백영호씨는 절반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의술(醫術)의 경험을 가지신 분은 없읍니까?』
하고 이선배가 물었을 때, 백영호 씨의 딸 정란이 제 옆에 서 있는 투우사(鬪牛師)의 등을 살그머니 밀었다.
『변변치는 못하지만……』
투우사로 가장한 청년은 서슴치 않고 앞으로 나섰다.
『오, 문군, 빨리 손 좀 써 주게!』
하는 백영호 씨의 말에
『과히 염려하지 마십시요. 경상(輕傷)인 듯 싶읍니다.』
그가 바로 정란의 약혼자인 의학박사 문학수(文學洙) 그 사람이다. 오상억 변호사의 눈초리가 쏘는 듯이 문학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동안 공작부인의 상처를 만져보고 난 문학수는 상처에다 붕대를 대면서
『극히 경상이니까 그리 염려 되는 일은 없읍니다. 다만 극도의 공포로 말미암아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지요.』
하고 설명하였다.
그 때 이선배는
『하옇든 누구든지 빨리 경찰에 전화를 걸어 주시요. 전화는 이층 서재에 있읍니다.』
하고 외치면서 정신없이 쓸어진 공작부인을 안고 옆 방 침실로 들어가서 하얀 시 ─ 트가 깔린 침대 위에 눕혔다.
오늘 밤 처음으로 공작부인의 현관을 들어섰다는 수상한 화가 이선배는 대체 전화기가 이층 서재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리고 한 달 후면 공작부인의 남편이 될 백영호 씨가 옆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몸소 공작부인을 안고 침실로 옮긴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그러나 백영호 씨 이하 여러 손님들은 그가 오늘 밤 처음으로 공작부인을 찾았다는 사실도 몰랐을 뿐더러 공작부인을 칼로 찌르고 들창을 넘어 도망한 저 도화역자의 가장으로 정체를 감춘 무서운 악마의 환영이 그들로부터 정당한 사색의 힘을 모두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
그때 만일 탐정소설가 백남수가 그것을 보았던들 이 모순된 이선배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 밖으로 도화역자의 뒤를 따라 나갔던 탐정소설가 백남수가 헐떡거리며 뛰어들어 왔다.
『어떻게 되었소?』
여러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고함을 치면서 백남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뒤져도 보이질 않습니다. 한길 반이나 되는 돌담을 넘어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정원을 통해서 정문으로 밖엔 도망할 길이 없는데……그래 그때 바로 정문 밖을 순회하던 경찰에게 물어 보았으나 그런 수상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구요.』
『그럴리가 있나? 그러면 그 놈은 아직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정원 어느 구석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래 그 경찰은 지금 어디 있소?』
『정문을 지키고 있읍니다.』
그래 이번에는 백남수, 오상억 변호사, 의사 문학수 등 여러 사람이 한 번 더 정원을 이 잡듯이 뒤져 보았으나 이상한 도화역자의 그림자는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편 정신을 잃어 버렸던 공작부인이 눈을 반만큼 뜨고 악몽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어릿광대, 어릿광대가 나를……』
하고 아직도 무서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정신을 차리시요 은몽 씨!』
백영호 씨는 공작부인의 핏기없는 흰 손을 잡고 애처러운 듯 서너 번 잡아 흔들었다.
『상처는 극히 가벼우니 염려 마시고 속히 그 수상한 도화역자의 이야기를 하여 주시지요.』
하고 묻는 이선배의 말에 공작부인은 이상스러운 표정으로 이선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저를 화장실에서 이 침실로 옮겨 주신이는 어느 분이예요?』
하고 의외의 말을 물었다.
『저올시다. 긴급한 때라 실례를 무릅쓰고 제가 침대로 옮겼읍니다.』
그 말을 들은 공작부인은 아무말도 없이 이 두 눈을 스스르 감았다.
공작부인은 실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비록 정신은 잃었다 할지라도 아까 자기가 화장실로 부터 침실로 안기워 올 때 자기의 코를 찌른 이상한 체취(體臭)─ 어디선가 맡아 본 적이 있는 듯한 몸 냄새를 깨달았던 것이다.
공작부인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 독특한 몸 냄새를 어디서 맡아 보았으며 누구의 것인가를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때
『그런데 빨리 그 도화역자의 이야기를 하여 주십시요.』
하고 재촉하는 이선배의 말에 공작부인은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면서 입을 열었다.
공작부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가 「홀」에서 백영호 씨와 춤을 추고 나서 화장을 고칠 셈으로 「홀」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삼면경 앞에 서서 얼굴을 고치고 있노라니까 언제 어디로 들어 왔는지 주홍빛 도화복을 입은 어릿광대가 바람처럼 등 뒤로 쑥 나타나는 것이 거울에 비치었다.
공작부인은 그만 『악!』하고 뒤로 돌아서려는 순간, 시퍼런 칼날이 왼편 어깨 위로 번쩍 들리었다고 한다.
공작부인은 그 때 무서운 광경을 다시 한번 회상하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래 그만 악하고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쳤어요. 그러나 칼 쥔 손이 제 왼편 어깨 위로 번쩍 들리는 것과 제가 고함을 치는 바람에 들창 밖으로 달아나던 것만은 기억 하겠어요.』
그때 옆에 있던 오상억 변호사가
『범인은 왼손잡이다!』
하고 중얼거리는 말에
『음 그렇다! 공작부인의 등 뒤에 섰던 범인이 만일 왼손잡이가 아니고 보통사람처럼 바른 손을 쓴다면 정녕코 공작부인의 바른편 어깨를 찔렀을 테니까 ─ ─』
하고 오상억 변호사의 말을 지지한 것은 탐정소설가 백남수였다.
그러나 오늘 밤 그 도화복으로 정체를 감춘 범인이 대체 누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현관을 지키고 있던 안내인도 그런 수상한 사람을 들여보낸 기억은 전연 없다고 단언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관할 경찰서로부터 사법주임 임경부가 십여 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도착하자 그 뒤를 이어 검사국으로부터 박검사가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그 이상 더 신통한 발견은 못하였으며 다만 흉기(凶器)인 단도 한 자루를 유일한 물적 증거품으로 압수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 이상한 현상이 하나 일어났다. ─ 경찰 일행이 손님들을 홀 안으로 몰 넣고 간단한 취조를 시행하려고 하였을 때, 조금 전까지도 보이던 저 수상한 화가 이선배의 그림자가 마치 요술사처럼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이선배라니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임경부와 박검사는 남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