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고 간 비닐우산
지난 주 예배 후에 보니
누군가가 우산을 놓아두고 갔습니다.
들어
올 때는 비가 왔는데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비가
멈추어서 놓고 간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던 기억이 솔솔 일어나면서
빙긋이 웃게 됩니다.
그런데
찾으러 오지를 않는군요...
그래서
더욱
옛 생각이 납니다.
저
어릴 적에는
‘비닐우산’
하나도
무척이나 소중하였던 것이어서
혹
들고 나갔다가
잊어버리기라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엄마에게 혼났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찾으러 나갔지요.
거의
모두 파란색 일색이었던
비닐우산의 시대가 한 세대 전에
있었습니다.
멀쩡하던 날씨였는데
갑자기
쏴-아-
소나기라도 올라 치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것인지
“우산,
우산,
우산
있어요-!!”하고
소리치며 나오는
우산장수들의 손에 들려 있던
비닐우산들이었습니다.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주로
저의
형뻘 쯤 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70세 정도들 되셨을 텐데...
벌써
50년 전
비오는 날의 서울 거리에서
우비를 입고 우산을 팔던 기억들을
아직도
소중한 추억들로 간직들 하고
계신지...
두고 간 우산을 살펴보니
투명 비닐이 입혀지고
철제 뼈대로 된 우산인데
요즘은
이런 우산이
일회용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예전에 비닐우선은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기둥도 빗살도
다
대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서 만든 것이었는데
아마도
당시의 풍경대로 대부분이
반(半)기계제품들이었을
것입니다.
기계로
큰
틀을 잡거나 조각들을 내고
손으로 다듬어서 조립을 하는
반
수공업 형태들이었지요.
아무든
지금
돌이켜 보면
상당한 공예수준이었습니다.
살 위에 씌운 비닐은
모두 반투명 파란색 일색이었는데
무슨 제한이나
규정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혹
단가
절감의 문제인지
아니면
상품
미화 차원에서
그런
색깔을 넣은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팔던 비닐우산들은
개당
30원도 하고 50원도 하다가
나중에는
200원 정도까지도 했던 기억이 있는데
후에
얼마까지 오르다가
없어졌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보다 더
어렸을 적 희미한 기억 속에는
이웃집 아저씨가
짚을 역어서 만든 망토 같은 것을 걸치고
비오는 언덕길을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롱이’라는 비옷으로
요새
말로 하면 레인코트
즉
우의(雨衣)였습니다.
짚으로 만든
고깔모자 비슷한 것을 쓰고
그
옷(?)을 입고
논이나 밭으로 나가면
비에
젖는 것도 피할 수 있고
두
손도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정말
참
오래 전 모습이고
정겨운 모습이었는데
비닐
우의가 일반화 되면서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요.
쏴-아-
비가
쏟아지던 서울 변두리 골목길-
검누런 흙탕물이
좔좔
흘러내리던 언덕길을
이리
저리 물길을 피해가며
밟을
자리를 고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저마다 우산을 하나씩 들고 나와
비오는 골목길에 앉아서
흙을
가져다가
흐르는 물길에 쌓아 막아놓고는
흰
고무신 검정고무신을 벗어서
그
위에 띄워놓고
물장난을 하면서
놀았지요.
그때-
큼직한 아버지 흰 고무신을 가지고 나와서
그
위에
얇은
나무판자 조각을 올려 덮어놓고는
‘거북선’이라고 하면서
이순신 장군이라도 된 양
“야!
비켜-비켜-!!”
하며 호기롭던 그
친구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 갑니다-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
하는 동요가 있었습니다.
파란
우산은
비닐우산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분명히
‘깜장우산’이라고 노래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검정우산은
철제
뼈대에 천을 입혀 만든
우산이 틀림없습니다.
반세기전...
사진을 찍어도 그렇고
벽에
위쪽에 걸려있던
나무
액자 속에 오그르르 모여 있던 사진들도
그렇고
극장에서 보여주던 영화도 모두
흑백이었던-
그야말로
‘흑백의 시절’이었던 때문이었을까요...
군복에
검정물감을 들여 입던 시절의
우중충함 속에서 파란 우산은 돋보였고
혹
엄마의 분홍색 양산을
우산으로 들고 나온 친구는 더욱
그랬습니다.
무엇이든
화려한 색깔자체가
충분히 동심을 자극하였고
그래서
‘무지개’노래도 여러 개가 있었으며
또
그렇듯
예쁜
색깔을 넣어
상품화 된 물건들이 귀했고
고급스러움으로
대접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찢어진 우산...’
이라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찡-
하여
집니다.
그래요.
지금
같으면
누가
찢어진 우산을 들고 나오겠느냐마는
그때는
쭉-
찢어지거나 벌컥
뒤집어져
드러난 우산살들이
서너
개 씩 쑥 삐져나온 것은 물론,
바람에
‘뒤집어졌다가 펴지기를
연속하여-’
헐렁해진 우산,
살
고정 조임틀이 고장이 나서
주르륵- 접히지 않도록
항상
잡고 다녀야 했던 우산들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습니다.
휴---
검정
고무신,
엄지발가락이 삐죽이 나오는
양말,
무릎과 엉덩이에
수시로
두꺼운 천을 덧대고 다녔던
멜빵바지...
옷소매로는
누렁콧물을 연신 훔쳐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이렇게 누군가가
‘놓고 간 투명 비닐우산’을 손
에
들고 바라보고 있자니...
만약
이
우산이 나 어릴 적에 있었다면-
친구들에게
대단한 자랑거리였을
텐데-
갑자기
붕-
뜨는 마음이 되어
옛날
허리우드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1952)’의
주인공 ‘진 켈리’가 만들어낸 명장면처럼
비오는 거리로 달려 나가
첨벙-첨벙-
하면서
비닐우산이라도 휘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불쑥
올라옵니다.
에-잇-?
아냐-!!
안
되지 안 돼-!!
무슨
주책
소리를 들으려고 그래,
정신
차려-!!
환갑도 벌써 지났어-!!
...
그래서
헝-헝-헝-
어쩐지 울고만
싶다...
by/산골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