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낭시
프랑스 여행 5일차 우린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의 북단 르아브르를 출발 동북쪽 방향 건축 예술의 도시 낭시로 향한다.
낭시도 우리에겐 그리 알려진곳이 아니지만 건축학을 하는 사람들에겐 많이 알려져 있다고한다.
오전 느즈막히 르아브르를 출발 해서 낭시에 도착하니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 했다.
우린 예약된 호텔에 짐을 내려두고 낭시 시가지를 한바퀴 둘러 보고 저녁 식사 할곳을 찾아 식사를 한후
아름다운 낭시의 야경에 취한후 호텔로 향했다.
낭시는 독일과 국경지대인 프랑스 북동쪽 알자스로레인 지방의 주도이며 18세기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다.
사각(四角)의 스타니슬라스 광장을 중심으로 둘러선 오페라하우스, 호텔, 미술관, 시청 등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광장 전체가 ‘18세기 건축물 박물관’인 셈이다.
독일 접경에 위치한 알자스로렌 지방은 프로이센에게 보불전쟁에서 빼앗겼다가 제1차세계대전 이후에 되찾은 땅으로
'알퐁스 도데의 소설인 마지막 수업'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랍니다.
그 당시 알자스로렌 지역 대부분은 독일령으로 넘어갔지만 낭시만은 프랑스령으로 남아있으면서 아르누보양식의
꽃을 피웠던 곳이다.
스타니슬라스 광장은 폴란드 출신 영주 스타니슬라스 에게 빚진 게 많다.
18세기 중반 영주로 부임한 스타니슬라스는 뉴타운을 조성하고서 자기 사위인 프랑스왕 루이 15세에게 광장을 헌정했다.
스타니슬라스는 폴란드 국왕을 두 번이나 지냈지만, 나이 육십에 빈털터리로 왕좌에서 물러나 있었다.
당시 이곳 영주였던 공작 프란시스3세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한 터였다.
그리하여 이 땅이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것을 염려한 루이15세가 장인에게 로레인을 맡긴 것이다.
사위 덕에 영주가 된 스타니슬라스는 이름난 건축가들을 불러 모았다.
광장과 개선문을 설계한 건축가 에레(Emmanuel Here)는 베르사유를 설계한 망사르와 보프랑의 후계자였다.
광장을 포함한 주변 건물들이 1752년부터 1755년까지 3년 동안 집중적으로 지어진 것도 호사가들에겐 관심거리.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여느 유럽도시에 비해 건축양식의 동질성이 유지되고 있어 공부하기에 좋다고 한다.
광장으로는 문이 모두 8개 있다. 그중 6개는 순금이 칠해져 있다.
순간순간 햇살에 번뜩이는 광휘(光輝)에는 18세기 절대왕정국가 프랑스의 영광이 아직도 살아 비치는 듯하다.
파리 개선문을 본뜬 개선문의 황금천사상, 승리의 신, 지혜의 여신상 등의 장식이 눈을 즐겁게 한다.
“지금도 10년마다 한 번씩 금을 새로 칠한다”고 했다.
광장 주변에는 노천카페들이 많아 해질녘에는 한가로운 오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은 광장 한가운데 스타니슬라스의 동상이 서 있다.
프랑스 혁명 전까지만 해도 이곳엔 국왕 루이15세의 동상이 서 있었다.
성난 군중들이 국왕의 동상을 무너뜨린 자리에 광장 조성자인 스타니슬라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역사는 아이러니다.
낭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면, 16세기 귀족의 궁전이었다는 로렌 박물관(Mus e Lorraine)은 도시에 대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그림과 사진, 유럽 여러 도시의 생성과 발전, 소멸 등에 관한 미술품
수백점이 소장돼 있다.
낭시는 19세기 말 최전위 예술이었던 ‘아르누보’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알자스로렌 지역이 대부분 독일령으로 넘어가고, 낭시만은 프랑스령으로 남아 있을때. 인근의 프랑스인들이
대거 낭시로 몰려들었다. 사업으로 돈을 번 부르주아와 아르누보 계열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들이 일거에 낭시로 몰려와 호화 주택을 지으면서 당시로선 최신 유행이었던 아르누보 건축물이 들어서게 됐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아르누보 건축물만 80여개가 넘는다.
고급 주택가인 소호 지역에는 지금도 100년 전에 지어진 이들 작품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루이 마조렐이 지은 한 주택은 낭시 정부가 사들여 관광코스로 개발되었다.
철과 나무, 대리석을 이렇게 저렇게 구부려 화려한 장식을 넣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많이 사용한 아르누보 건물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현대적 감각에서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루이 마조렐, 에밀 갈레, 자크 그루베 등이 낭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아르누보 작가들.
박물관에는 아르누보 계열의 유리공예 작품들이 많다. 침대, 식탁, 옷장 등 아르누보 양식의 다양한 소품들을 모아
놓은 루이 마조렐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로렌박물관을 비롯해 30만명이 사는 도시에 박물관이 5개나 된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이곳이 18세기에 조성된 낭시의 스타니슬라스 광장입니다. 스타니슬라스 광장을 중심으로 오페라하우스, 호텔, 미술관,
시청 건물이 둘러쌓여 있는데,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즉 광장 전체가 '18세기 건축물 박물관'으로 보면 되다.
광장 한가운데는 스타니슬라스 영주 동상이 있다. 프랑스 혁명 전까지는 루이 15세의 동상이 서 있었다고한다
원래 이곳의 영주는 공작 프란시스3세였는데, 프란시스3세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을 했다.
그러자 이곳이 오스트리아 영토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루이 15세가 장인인 스타니슬라스(폴란드 국왕 역임)에게
로레인 지방을 맡겼다고 한다.
18세기 중반 영주로 부임한 스타니슬라스는 이름난 건축가들을 불러들여 1752년부터 1755년 3년 동안 광장과 주변
건물을 짓게 했다. 특히 광장과 개선문을 설계한 건축가 에레는 베르사유를 설계한 망사르와 보프랑의 후계자였다
이 건물이 호텔이 표시가 아니고 불어로 시청이란 뜻이 랍니다.
이곳 광장 주변은 항상 야외 테이블이 놓여지고 카페가 성업중이다. 이곳 뿐만 아니라 유럽 어느곳이 든지 그러하다.
그리고 낭만적이고 자연스럽다 . 우리로썬 꿈 같은 현실.....단속 철거 단속 철거....!!!!
광장에는 문이 8개 있는데 형태는 비슷하지만 조각은 각기 달랐다, 그 중 6개는 순금으로 칠해져 있다고 했다.
지금도 10년에 한번씩 금을 다시 칠한다고 하네요.
이문을 나서면 까리에르 광장(Carriere Place)이 연결된다.
까리에르 광장(Carriere Place) 광장쪽에서 들여다본 시청광장.
까리에르 광장(Carriere Place)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에요. 까리에르(Carriere)는 프랑스 고어로 (중세 기사의) 마상(馬上) 시합하는
곳이라는 뜻이랍니다. 16세기 중반 성벽을 현대화하면서 마을을 동쪽으로 확장시키고, 이 광장을 만들었다.
이 광장은 구시가와 신시가를 연결하는 역할도 했어요. 광장 끝에는 Palais du gouvernemen건물이 있다.
광장을 둘러보고 구시가지를 돌면서 저녁 먹을 맛집도 열심히 찾아 본다.
결국 광장 주변 카페거리를.....
우린 해물 요리 전문인 이집에서 또 다시 여러가지 해물 요리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생말로에서 의 맛있던 해물 모듬을 생각하면서 레스토랑 2층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해물 요리를 먹어 보았다.
해변 도시가 아닌 탓인지 생말로에서 보다는 수준이 떨어진다.
우린 식사후 다시 광장으로 들러 야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며 이곳 사람들 생활속으로 빠져 들어 보았다.
호텔에 돌아와 장시간 차에 시달리며 쌓인 피로에 골아 떨어지고 눈을 뜨보니 창너머로 먼동이 터고 일출장면이 포착된다.
아직 딸 부부는 한밤이라 아침식사때 까지 혼자서 카메라를 메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밤새 비가 내렸는 거리는 촉촉히 젖었고....다시 또 날은 흐려지고 전형적인 유럽 날씨로 변한다. 우중충 잿빛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