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1887~1948)
♤ "탐미적이면서 폭력적…. 일본의 이중성 파헤쳐"(1-2) ~홍영식
*"신분 체제, 국가 간 관계로 확대시켜"
"일본 사회조직은 오랫동안 '천황'을 정점으로 막부(幕府, 무사 정권) 최고 권력자인 '쇼군', 영주, 농민, 상인, 천민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형 위계 제도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 맞는 삶을 살았으며, 그 위치에서 최상의 안정감을 느꼈다." 일본은 이 신분 체제를 국가 간의 관계로 확대했다. 국제적인 계층제도의 정점에 도달한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다.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아시아 각국에 자기들의 분수에 맞는 위치 찾기를 요구한 배경이다. 일본은 이런 국가 간 계층이 항구적 평화를 보장한다는 믿음을 가졌고, 이를 깨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항하면서 태평양전쟁 발발로 이어졌다는 게 베네딕트의 분석이다.
보은(報恩) 편도 일본인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개념이다. "일본인은 은혜를 받는 것을 부채로 여겼다. 특히 천황에게 최대의 채무를 졌다고 생각했다. 황은(皇恩)을 무한한 감사로 받아들이고, 이를 반드시 갚는 것을 최대 의무로 여겼다. 전쟁 때 '옥쇄(玉碎)'(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 것)를 하는 것은 천황의 무한한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런 일본인들이 왜 패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온순한 국민으로 돌아가 아무런 저항 없이 미국인들을 맞았을까. 천황이 패전을 선언해 이를 따르는 것을 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천황의 뜻에 순종하라는 가르침은 양날의 칼이다. 한 일본군 포로가 '천황의 명령이라면 죽창 한 자루 외에 아무런 무기가 없더라도 주저 없이 싸울 것이다. 그렇지만 천황의 명령이라면 즉각 싸움을 멈출 것'이라고 한 데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이런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했기 때문에 전후 천황제 존속 결정을 내렸다.
~홍영식, 김태철, 김태완, 백광엽, 양준영, 《다시 읽는 명저》, 홍영식, p.75~6
첫댓글 감사합니다
Thanks a 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