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자기자신에 관한 것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프랑스의 작가 샤토브리앙은
우울증에 대해 그의 글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텅 빈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그 어떠한 것이라도 전혀 즐기지 않으며,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완전히 무너지게 만든다"
내가 심리상담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날마다 만나게 되는 내담자들 중에는
우울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지만
우울함이란 것이 내가 직접 경험하고 고통을 당한 이후에는
그것에 대해 단순하게 이런 저런 feedback을 드리기가 어렵고
쉽게 그것에 대해 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연말부터 거의 4개월 동안 호되게 우울을 앓았다.
나의 힘듦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상태를 눈치 챈 남편은 내게
"당신과 같은 심리상태의 내담자가 찾아왔을 때 당신은 그분들에게 어떤 말과 마음으로 다가가는지,
그것을 생각해보고 또한 그것을 당신 스스로에게 잘 적용시켜 보라" 고 했다.
나는 이미 그러한 노력을 무수히 하고 있었지만 쉽게 내 감정은 나를 물러나지 않았다.
힘겨웠다.
자꾸만 무기력해지려 하고, 모든 것이 귀찮다는 생각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겹치면서 나는 정말 지독한 속앓이를 했다.
시간나는대로 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커피도 마시면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살펴 보기도 하고,
깊은 밤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를 달래기도 하고,
목숨같은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과의 추억과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해 봐도
나는 언제나 가슴이 무겁기만 하고 즐거운 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방문을 닫고 침잠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차라리 노력을 포기했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일어서려고 노력할수록 힘이 더 들고, 더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웠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담담하게 일상을 살았다.
그리고 한 줄씩 글을 읽으며 내 마음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나와의 만남 속에서 나는 진실한 반성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누렸던 나름대로의 행복에 대해 감사함을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곁에서 아무리 그 이야기를 해 줘도 내 맘속으로 느낌이 없던 그것이
홀로 깨어 고민하고 나를 만나는 시간에 섬광처럼 다가 온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더 힘든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나는 홀연히 나의 우울과 결별했다.
새로운 시도를 위한 다양한 계획을 설계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내 삶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게 겨우 2주 전의 일이다.
어제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는 여고생이 왔다.
내 딸보다 더 어린 그녀를 바라볼 때 마다 마음이 아린다.
그녀의 어머니가 내민 병원 처방전을 보게 되었다.
그 어머니께서는 딸이 이렇게 많은 약을 몇 년 째 복용중이라는 것이다.
자꾸만 늘어가는 체중과 눈동자가 풀려가는 신체적 변화를 지켜보면서
계속 이 약들을 복용해야하는지를 물어온다.
이런 경우 나는 할 말이 없다.
몇 년째 약을 먹어도 근원적인 치료가 되지 않으며 그녀는 학교 생활을 못하기에
여학생으로 불리우지만 사실은 아무런 직업도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절망과 좌절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약을 중단하기가 두렵고, 그 약을 계속 먹이기는 더 두렵다고 한다.
이러한 판단은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부분이기에 병원에 가서 논의를 하시라고 했다.
그 약의 처방전에는 내가 잘 모르는 약의 이름도 보인다.
푸로작, 쎄로켈, 인데놀, 리보트릴, 아빌리파이, 자이프랙사....
처방전의 글씨들은 나를 위협적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다.
약이름 하나 하나의 효능과 부작용을 검색하면서 나는 한숨이 나온다.
왜 우리가 이렇게 아파해야하는가?
조금의 관심과 사랑,
조금의 허용과 관용,
조금의 인내와 용서,
조금의 인정과 격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가 관대했다면 이러한 약들이 그녀에게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마음을 다루거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에 대해 교육받거나
연구하거나, 배우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마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나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하고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 온 스트레스들은 세월을 두고 점차 굳어지고 단단해져 우리를 병들게 한다.
안타깝다.
몸짱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보이는 몸을 가다듬고 보기 좋게 만드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먼저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가야하는 것 아닌가 ....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가야만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움 세상이 될 것만 같다.
자살과 우울,
우울과 불안, 공포, 죄책감, 알레르기.....
이런 이름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살게 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