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단평
「어느 흰나비의 자리」
시 / 김세영 , 단평 / 김겸
1초도 멈출 수 없는 초침바늘처럼
팔랑이는 날갯짓이 일으키는 공명의 바람이
확성기처럼 숲의 그늘을 흔든다
온종일 제 몸 틀을 찾아
꽃들을 기웃거리는 방황의 끝,
멈추어 선 자리, 언제이든가
낯설게 보이지 않는 저 자리!
그늘 속 흰빛의 편린,
기억 저편의 체취!
어두워지기 전, 허둥지둥
꽃잎에 날개의 문양을 맞추어 보고
오랜 섭생의 침낭인양
그의 혼령이 스며든다
볼록렌즈의 초점처럼 한 점에 모아져 있는
그 향기의 깊숙한 속이
네 꿈과 생의 발원 점이었지
심저의 특이점特異點*인가?
두툼한 환생의 갈피 속에 자리한
한 가닥의 기파,
오랜 탐색의 끝에 재회한
거듭나는 생의 몸틀,
데자뷰의 요람일 거야.
*singularity: 빅뱅우주의 최초점
이처럼 시인은 꽃을 찾는 나비의 수분授粉 활동에서 우주의 빅뱅을 본다. 나비의 날갯짓은 하나의 공명의 바람으로서 기氣의 파동이라고 할 때, 제 몸피에 맞는 틀을 찾아 꽃을 기웃거리는 것은, 자신이 공명할 우주적인 기연機緣을 찾는 행위를 의미한다. 나비가 찾는 꽃향기의 깊숙한 속이 “꿈과 생의 발원 점”이자 “심저의 특이점”이라면 우주의 삼라만상과 모든 연緣은 이러한 각자의 빅뱅의 순간을 관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법성게의 한 구절인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현현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의 기파에 맞는 꽃을 찾는 나비의 생리(한 작은 티끌) 가운데 온 우주적 기연(시방세계)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 중에 일체가 있고, 일체 속에 하나가 있으니一中一切多中一 꽃은 바로 “생의 몸틀, 데자뷰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극미極微와 극대極大는 곧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시인의 우주관은 모든 존재의 생이 우주적 크로노토프를 유추적으로 거듭하는 끊임없는 데자뷰의 순간들임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