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 땅 바사의 왕후 와스디의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한 번의 완고한 마음과 행동이 어떤 폭풍 같은 일들이 되어 지고 예상치 못할 결과들을 낳으며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는 믿음이 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드러냄과 함께 모든 영광이 될지는 당시에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고 상상도 못한 것이었는데..
실상 그와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와스디 왕후는 폐위케 되었고, 그로 인해 에스더가 대신 그 나라의 왕비가 된 것이며, 그 후 에스더 왕후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신앙적인 치열한 몸부림들과 그 나라의 2인자인 하만의 강포와 박해들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에스더 4장 14~17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라고 증거된 것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에스더와 모르드개 중심으로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금식과 간구들이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치열하고 절박하면서도 특별한 믿음의 몸부림들은 모르드개를 위시해서 그 땅의 거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절되는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가 순식간에 완전히 뒤바뀌게 되어 에스더 6장 1절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라고 증거된 말씀과 그 후에 이어지는 실제들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가장 정확하고 절묘한 타이밍에 모든 것들이 역전되어 핍박의 원흉인 하만과 그의 집안 뿐 아니라 그 땅에서의 하나님 백성들에 있어 대적들이 되었던 많은 족속들이 거의 대다수 멸절당하게 되는 기적과 응답들이 되었고, 에스더 9장 22절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라고 증거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역전과 간증과 찬미와 하나님의 영광의 제목들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통찰해 보면 그와 같은 모든 일들, 상황들, 순간들 하나하나마다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일들 중 극히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와 같이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들이든 특별 은총들이든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마다,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마다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예수님의 구원과, 진정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할 수 있도록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바로 그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하나하나 모두 다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순간순간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에 참으로 아무나가 아니라, 또한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당시의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위시한 그 땅의 남은 자들처럼 치열하고 뜨거우며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뜨거운 열정과 함께 실제로 세밀하고 강렬하게 나타나고 경험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생생하심과 강력하심들인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에스더1:11~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0월 23일(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