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이 계속 어른거린다. 스리랑카 대통령 관저에서 시민들이 피아노를 치는 풍경. 얼마나 근사한가.
2022년 여름, 스리랑카 대통령이 이른 새벽에 도망쳤다. 전용기를 타고 해외로 줄행랑을 친 것이다. 시민들이 강력한 대중 투쟁을 벌여 대통령 관저 목전에까지 몰려왔기 때문이다.
당시 스리랑카는 국가 부도 상태에 내몰린 터였다. 팬데믹으로 인한 관광 수입 감소, 중국 일대일로 채무 문제, 미련한 감세 정책, 부정부패, 물가 폭등과 식량 위기가 맞물려 국가 위기가 빚어졌다. 그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분노의 화살이 부패한 대통령과 권력 카르텔에 쏠렸고, 몇 날 며칠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마침내 대통령이 도망치고 시민들이 대통령 관저를 접수했다. 아래 사진들이 바로 그 순간이다. 부유한 대통령 가족이 즐기던 호화 수영장에서 시민들이 떠들썩하게 수영을 하고, 대통령 가족이 즐긴 고가의 피아노를 연주하며, 관저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겼다. 말 그대로, 주권자의 주권이 가장 투명하게 현시되는 순간이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홍세화 선생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GDP 인종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GDP 지표에 근거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들을 경시한다는 이야기다. 스리랑카의 정치는 한국보다 낙후되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2022년 시국 때 스리랑카 시민들과 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구조를 제한하고 의회와 시민들에게 더 많은 권력의 지분을 할애하기 위해 많은 논의를 펼쳤다. 게다가 스리랑카 시민들은 기존의 거대 여당과 야당이 아니라, 군소정당이었던 '인민해방전선'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무장투쟁을 벌이다 대중정당으로 선회한 좌파정당인데, 단 3석의 초미니 정당이었다.
작년 9월에 취임식을 마친 스리랑카의 좌파 대통령은 대내외 우려와 달리, 실용주의적 노선을 취하며 스리랑카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여기에, 2024년 11월에 치뤄진 총선에서 인민해방전선과 20여개 정당이 연정을 꾸린 '좌파연합'이 225석 중 159석을 확보하며 압승했다. 스리랑카 역사가 새롭게 씌여진 것이다.
어쨌든. 관저를 요새화한 채 꽁꽁 숨어있는 윤석열 일당을 보면서 2022년의 스리랑카 대통령 관저의 풍경들이 계속 생각난다. 저 정도는 돼야 주권의 진정한 도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은. 저 내란수괴를 내쫓고, 우리도 관저에서 개도 산책시키고, 피아노도 치고, 인증샷도 좀 찍고, 뭐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짜장면도 좀 먹어 봐야, 나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