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산행기---환상의 雪梅花
작년 12월 내장산 산행후 두달만에 17산우회원들을 만난다. 그 동안 산에는 못 따라갔어도 카페에서 회원들의 근황 체크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2차 과메기 파티, 사진회 인사동 모임 등에서 낯익은 회원들 모습을 뵙고 반가웠다. 다른 분들이 쓴 명문의 산행기를 읽으면서 위기의식도 느꼈다.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더 잘 쓰면 결국 산행기자 자리 내놔야하는 거 아닌가?
꼬리말에 '진한' 애정표현을 실어보낸 현해수 동문 덕분에 남편은 김회장에게서 '자네, 현해수 조심해야겠더라' 소리를 들었다는데, 조심은 무슨 조심, 늙은 마누라 예쁘다는 소리 듣는 것 보고 희희낙락했다.
죽전에서 합류한 김영길, 이철주 동문을 포함, 15명이 오늘 산동무들. 이철주 동문이 처음으로 참석하셔서 모두 환영. 기자 또한 오랜만이라며 모두들 반가워해 주셨다. 아줌마가 멋쟁이 아저씨들한테 이렇게 환대 받는 곳이 또 있을까. 동문 사모님들,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까요. 정말 살맛 난다니까요.
임대장이 결근이다. 당장 '대장 바꿔' 소리가 나온다. 임대장의 결근 이유에 대해 설이 분분. 조류독감 연구차 태국에 갔다는 설, 1만원짜리 등산화를 사서 발에 익히느라 신고 다니다 뒤꿈치가 까져 못 왔다는 설, 저번에 회장님이 앞으로 회장 대신 임대장이 후미를 맡기로 했다고 발표한 후 삐져서 안 나온다는 설 등이 있었다. 명색이 17산우회 대장인데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으면 1만원짜리 등산화를 샀겠느냐며 등산화 하나 사주자는 동정파, 호시침침 노리던 후미(숭자동문 에스코트가 주임무)를 맡았는데 환호작약할 일이지 삐질 일이냐는 야지파 등, 이러 저래 또 시끄럽다. 임대장이 빨리 나와 해명할 일이다.
차여사께서는 사위가 와서 못 오셨단다. 도대체 그 사위는 왜 그렇게 자주 오는 거야.(죄송합니다. 차여사가 보고싶어서 하는 소립니다.)
오늘 산행은 우리 나라에서 네번째로 높은(1614m) 덕유산. 더 높은 산으로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이 있다. 박근준 동문이 미리 카페에 덕유산 설경 사진을 올려주셨다. 달력에 오르는 설경은 대부분 덕유산 사진일 정도로 설경이 뛰어난 곳이란다. 사진 잘 봤다고 인사를 하자 박동문이 '오늘 노여사가 꼭 올 줄 알았다. 산 좋아하는 사람은 겨울산 설경을 놓치지 않는다.' 고 하신다. 그 말에 이정수 동문 그냥 지나갈 분이 아니다. '산행기에 올라가려고 미리 준비한 코멘트냐?' 고 꼬집는다.
삼공리 주차장에서 백련사를 거쳐 정상인 향적봉까지 3시간 반, 하산에 3시간 정도가 걸리는 만만찮은 코스임을 감안, 회장님이 두 팀으로 나눌 것을 제안하셨다. 강경파(걸어서 등산, 곤돌라 하산)와 온건파(곤돌라 등산, 걸어서 하산)로 나누면 하산 시간이 비슷해질 테니 각자 선택하라신다. 경계인 김명용 동문, 나는 '중도파'라고 선언한다. 곤돌라 타고 올라갔다 곤돌라 타고 내려온다는 말씀이다. 이종범 동문이 얼씨구나 '우리 먼저 애저 식당에 가서 기다리자' 고 맞장구친다. 아무리 그래봤자 엄살인 줄 다 안다. 결국 김숭자 동문 내외와 회장님만 온건파로 남고 모두 강경파에 합류했다.
10시 15분 출발, 11시 45분에 백련사 도착, 기념촬영하고 갈 길을 재촉했다. 투명하고 싸늘한 공기가 산행에 최적인 날씨다. 하늘은 어쩌자고 또 저렇게 푸른가. 오솔길은 아직 흰눈에 덮여있는데 돌돌거리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어릴 때 부르던 동요대로 '얼음장 밑으로 봄은 오고' 있었다. 아, 자연은 어찌 이리 솔직한가.
1시 무렵 정상아래 1.5km 지점에서 하산하는 온건파와 만났다. 헤어진지 불과 3시간도 안됐는데 몇 년이라도 된 듯 모두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김숭자여사께서 손수 끓여, 오늘은 손수 지고 오시기까지한 뜨거운 된장국과 커피를 일행에게 일일이 대접한다. 김여사의 정성이 더 따뜻하다. 덕분에 모두 기운 차려 발걸음이 가뿐해졌다. 나는 상행선, 너는 하행선, 또다시 아쉬운 작별을 하고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 가기 전에 향적봉휴게소에서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늘 그렇듯이 대부분 양식(샌드위치)이다. 유일한 예외인 김명용표 한정식의 오늘 메뉴는 무엇인가 모두 호기심 어린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데 김동문이 주섬주섬 꺼내든 것은 놀랍게도 샌드위치였다. '개성여자'가 만들었다는 김동문의 변명이 있긴 해도 '좀 산다는 집'의 체면은 다 어디 가고 서양 상것들이나 먹는 샌드위치를 가져왔단 말인가. 김동문이 부인에게 지은 죄가 무겁긴 무거웠나보다. 사모님, 그만 용서해주시지요. 마지막 班家의 자존심을 접할 수 있는 영광을 저희에게서 빼앗지 말아주십시오.
그런데 사고가 발생했다. 점심을 다 먹도록 김윤기 동문이 보이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아 계속 선두에 선 것으로 아는데 30분이 넘도록 안 나타나니 길이 엇갈린 게 분명하다. 현해수 동문이 찾으러 나섰다. 한참 뒤에 새파랗게 언 김윤기 동문이 휴게소로 들어왔다. 선두인 구총무보다 앞서 가는 바람에 향적봉휴게소에 먼저 들른다는 것을 모르고 향적봉으로 가서 40분이나 칼바람에 떨며 기다렸다는 것이다. 부인 김여사가 알면 혼나니까 절대로 산행기에 쓰지 말라고 이정수 동문이 부탁했지만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아는 기자의 양심상 쓰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이 구총무보다 더 산행실력이 좋아진 걸 알면 김여사가 혼내기는커녕 상을 주실 테니 걱정할 것 없다. 밖에서는 서울 상대 출신이라고 다들 폼잡지만 집에서는 한결같이 쪽을 못쓰니... 한심하지만 귀엽다.
2시 30분 드디어 정상인 향적봉에 올랐다. 사방을 둘러보니 북덕유에서 남덕유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을 포함, 지리산천왕봉, 가야산, 대둔산, 계룡산까지 첩첩산중으로 이어진 연봉들이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연상시킨다. 기념촬영을 해야하는데 모두 1614m 표시가 사진에 나오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달마대사 이종범 동문은 1614m가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게시판 앞에서 기어이 독사진도 찍었다. 지하의 달마대사가 혀를 찰 일이다.
향적봉에서 곤돌라 승강장까지의 하산길이 오늘 산행의 백미였다. 정상을 넘어서자마자 갑자기 눈앞 가득히 만개한 매화밭이 펼쳐졌다. 겨울산에서 만나는 상고대의 아름다움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렇게 매화꽃이 핀 것 같은 설화는 처음이다. 보통 상고대는 칫솔처럼 얼음이 옆으로 나란히 붙는데 이 설화는 동글동글한 얼음이 가지에 다닥다닥 매달린 것이 영락없는 매화꽃이다. 김명용동문이 '골치 아프네' 하고 투덜거리며 배낭에서 아사히펜탁스를 꺼내든다. 사진회 총무로서 이런 선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언 손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곧 예술사진이 카페에 오를 테니 모두들 기대하시라.
곤돌라 승강장 매점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회장님의 지엄한 入山禁酒 경고때문에 아쉬움을 달래며 곤돌라로 하산했다. 황공하게도 회장님은 마중까지 나오셨다. 온건파도 도착한지 10분 정도 밖에 안됐다고 하신다. 어린 대원들 사정을 하나하나 배려해 산행을 준비하시는 회장님의 노고가 새삼 감동스럽다. 3시 20분 하산 완료. 오르막으로만 4시간 정도 걸었으니 적당한 운동량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제 애저 먹으러 가는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 현해수 동문 왈, 먼저 목욕탕에 가서 늙은 돼지부터 푹 삶은 다음에 애저 먹으러 간단다. 老猪가 애저를 먹으려니 애처로워 못 견디겠다는 순정파도 있다. 鎭安의 50년 전통 애저요리 전문점 진안관으로 갔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은 곳이다. 작년 2월 17산우회에 데뷔하던 날 왔던 식당이기 때문이다. 김회장이 그걸 다 기억하시고 추억을 일깨워 주신다. 놀라운 기억력이다.
이종범 동문 오늘도 어김없이 산소주에 프랑스제 포도주도 한병 가져오셨다. 비주류석의 남성동지들이 모두 포도주에 한 다리 끼는 바람에 목도 제대로 못 축인 기자가 불평하자 이종범 동문이 포도주는 산행기에 자기 얘기 잘 써달라고 가져온 '대가성' 뇌물인데 엉뚱하게도 '배달사고'가 났다고 다음부터는 본인이 손수 바텐더 해서 여성동지들한테 직접전달하겠다고 하신다.
주류석에선 소주잔이 오가느라 정신이 없는데 숭자동문은 비빔밥 공장을 차리셨다. 갖가지 나물에 들깨기름을 듬뿍 쳐 기가 막히게 비볐다. 너도나도 밥그릇을 들이대는 바람에 비빔밥 공장 생산라인을 풀가동해도 모자란다. 출발 담당 이사 현해수 동문, 식당에 들어올 때 오늘은 출발시간 제한이 없다더니 웬걸 6시 반이 되자 칼같이 일어나라고 독촉해댄다.
취기는 도도하고 주위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검은 실루엣으로 둥실 떠오른 마이산을 뒤로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오늘따라 구총무가 말이 많으시다. 버스를 코오롱 관광에서 금성관광으로 바꾼 배경설명을 하는데 횡설수설 요령부득이다. 요지인즉, 어려운 재정상태 속에서도 회원들을 편히 모시기 위해 고급 버스로 바꿨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화자찬임을 감지한 회원들, 잘 알았다고, 종신 총무 시켜주겠다고 만장일치 박수로 환영. 드디어 김회장에 이어 구총무도 종신 임원이 됐다. 축하합니다.
회장님이 다음 산행지를 놓고 회원들의 의견을 묻는데 전북 금산사 뒤 모악산(제대로 된 전주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과 대구 팔공산이나 비슬산이 후보라고 한다. 그 중 곤돌라가 있는 곳은 팔공산 뿐이라고 하니 김명용 동문 우리를 어떻게 보고 지금 곤돌라 소리를 하느냐고 대갈일성. 모두들 '오늘의 명언'이라고 환호했다. 다음 행선지는 모악산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뻥뚤린 고속도로를 타고 귀경하니 10시. 춘삼월 호시절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날 산행에서는 손길승 동문의 담당재판부에 제출할 탄원서 서명을 했습니다. 3월3일에는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 위한 점심모임이 있으니 많이 참석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노순옥 기)
참가자: 구명회, 김명용, 김숭자 내외, 김영길, 김윤기, 김종남, 박근준, 박정수 내외, 이정수, 이종범, 이철주, 최영철, 현해수. 이상 15명.
첫댓글 히야! 과연.
프로는 역시 뭔가 다르군요! 계속 수고 바랍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마추어분들은 글씨가 작아 읽느데 눈이 감감했으나.이점까지 해아려주시니 역시 프로는 프로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직업상 늘 심사위원장을 맡는데, 위의글은 산행기 contest 에서 금상 감입니다
부럽다 부러워, 못가 안달이 나는데... jspark 의 산행기를 보고 위안이나 삼자.jspark이오는 줄 알았어면 무선 수로도 갈걸..moon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