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말벗
홍 재 석
흘러가는 세월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생은 초로라고도 말하고 있다. 촌음이 아까운 여생을 그냥 덧없이 허송세월 하지 말라. 마음이 청춘이면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는 매사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주 속에 해와 달 하늘과 땅도 양음이 있듯이, 지구상의 천태만상인 동식물도, 제각기 사랑을 하며 음양의 힘으로 버티고 성장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네 인생도 음양 때문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노년의 삶도 이성 없이 홀로 살 때는 외로움이 힘겹고, 말 상대가 제일 그립다고 한다. 조물주께서는 억조창생의 우리들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남녀 간의 희로애락은 다 짝이 맞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기막힌 신비로운 감성과 기이함은 어찌 다 따질 수가 있으랴. 그러기에 지금은 젊은이들의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지만, 창차 고령화 사회에서는 다국적 로맨스 노년의 말벗도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가 좋아하고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을 해도, 한 평생 함께 회로하고 한날한시에 저승길 가기는 어렵다. 홀로된 후에 노년의 말벗은 서로가 마음을 비우지 않고는 만나기도 힘들다. 조건을 앞세우고 호구조사에 저울질을 하다보면, 어디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있을는지. 변한 세상인데 탐욕의 손만 내밀면 쓰라린 마음의 상처만 커져간다.
황혼길 인생은 내일이 어떨지 모른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삶이 아닌가. 젊은이들 같이 멀리보고 깊이 생각하면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노년의 사랑은 말과 감성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진실한 마음이 아니면 허사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라. 망측스럽다고 생각지 말고 속마음을 보여주어야만, 곱고 풍성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제 발로 걷고, 내 손으로 밥을 먹으며, 베푸는 마음으로 남의 속말을 들어줄 수 있을 때, 연륜에 걸맞은 진실한 말벗이 다가오리라.
노년에는 서로 측은지심으로 상대를 보게 된다. 소중히 여기며 다독거려 주려고 한다. 노후에 풍기는 인간의 진미와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여유로움이 있다면 복 받은 노인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
나도 아내와의 사별 후 보고픈 짠한 심정은 50여년의 성실한 삶의 그리움과, 홀로 외로움에 갈피를 다잡지 못했다. 영전사진을 쓰다듬으며 조석으로 대화를 하고 있을 때다. 친구의 소개를 받았으나 왼지 전화한번도 걸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니 사리분별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 후 잠시나마 장미꽃다발을 들려준 여인도 있었고, 산사의 오솔길에서 내 애인이라고 큰소리로 외쳐본 여사도 있었지. 뒤 골목에서 술대접을 받은 귀인도 만났고, 한적한 하천 뚝 밑에서 함께 쑥을 뜯은 아낙네도 있었다. 여행길에 천사같은 여자도 만났다. 나에게는 다 과분한 여인들로 함께 어울리고 대접해주는 소중한 벗들 이였다. 나는 그저 마음으로 간만 보았지. 열 번 찍기는커녕 도끼자루도 안 잡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세월의 차이로 어른으로서 미안함은 그지없다. 가깝고도 먼 곳에 있는 듯 반갑고 인정 있는 벗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인연으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이 나를 보면서 “잠시라도 앉아서 기다리세요. 버스가 자주 아니옵니다. 다리 앞을 탠데.” 그 말을 하면서 자기 손바닥으로 나무 의자위의 길 먼지를 닦아 주신다. 그녀의 고운 마음과 손길이 아름다움으로 보였다. 생면부지에 베푸는 마음의 봉사를 내 가슴으로 읽을 수 있었지. 얼마나 고마운 심성인가. 그 사연이 나에게는 필연이 되여 말벗으로 만나게 되었다.
서로는 한발 한발 닦아서면서 이해하고, 함께 날로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니 더 청초하게 보이고 즐거웠다. 둘이는 손을 꼭 잡고 오손 도손 정담을 나누니, 콧노래의 가곡소리가 들리고 기쁨이 커져만 갔다. 부담 없이 등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사랑을 키우니, 허전하던 외로움에 의지가 되었지.
아침저녁으로 문안전화의 인사말에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저녁 잡수셨어요, 오늘은 어떻게 지나셨나요, 편안이 잘 주무세요, 내일도 좋은날 되세요.”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이오니, 밥을 먹어도 임의 밥이요, 잠을 자도임의 잠이니 저절로 푸근한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황혼길 인생을 더 아름답게 하려면 나 자신을 먼저 낮추어야 한다. 지평선 같은 마음으로 이성을 대한다면 울타리도 없고 벽도 허물어짐으로, 이 풍요롭고 좋은 세상에서 서로는 언제고 손을 잡으며 부창부수 하리라.
봄이 오면 넓은 들판에 수많은 꽃이 피듯이 우리네 인생도 저마다 가슴속에서 가꾸는 나만의 꽃밭과 정다운 집을 지얼 때 즐거움이 쌓인다.
노년의 말벗은 더 없이 소중한 만남이다. 소홀이 할 수 없으니 바라만 보지 말라.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의식과 과거를 너무 생각하다 보면 기회도 놓친다. 마음에 둔 사람에게 가까이 닦아 설수가 없을 것이다.
홀로된 외로운 인생길에 손잡아주는 따뜻한 말벗은 활기찬 삶의 의욕을 높여준다. 둘이서 대화를 하다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해지니, 기쁨이 보약으로 더욱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리라.
첫댓글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이오니, 밥을 먹어도 임의 밥이요, 잠을 자도임의 잠이니 저절로 푸근한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
선생님 건강하시고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드십시오.
"외로운 인생길에 손잡아주는 따뜻한 말벗은 삶의 의욕을 높여준다. 둘이서 대화를 하다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해지니, 기쁨이 보약으로 더욱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리라." 그렇습니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야 사는 맛이 나는 법이지요.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 비운 곳을 채워가며 정겹게 살아야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지평선 같은 마음으로 이성을 대한다면 울타리도 없고 벽도 허물어짐으로, 이 풍요롭고 좋은 세상에서 서로는 언제고 손을 잡으며 부창부수 하리라." 살아있음은 행복입니다. 고맙습니다.
따뜻한 풍경입니다...잘 감상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슴을 녹여 준다고 하지요. 좋은글 감상 잘 하고 갑니다.
그런생각과 마음으로 즐거운 생을 사시는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히 사시기바랍니다. 좋은 글 잘 감상 했습니다.
'노년의 사랑은 말과 감성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진실한 마음이 아니면 허사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라. 망측스럽다고 생각지 말고 속마음을 보여주어야만, 곱고 풍성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제 발로 걷고, 내 손으로 밥을 먹으며, 베푸는 마음으로 남의 속말을 들어줄 수 있을 때, 연륜에 걸맞은 진실한 말벗이 다가오리라..'
햐!! 선생님 멋지십니다. 팟팅입니다. 참 잘 하셨습니다. 더욱 행복 하소서...
나자신이 부끄러운 글인데 용기를 주신 문우님들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