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미술관에서는 지금 파리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래전, 이응노화백의 일생을 다룬 책을 읽고
내가 맨 먼저 감정이입한 사람은
시대의 아픔을 살다 간 예술가 이응노가 아니었다
그의 빛나는 작품과 업적에 박수를 쳐 주기에 앞 서 난 한 여인에게로 눈길이 더 갔다
그를 평생 기다리며 살아간 본부인 박귀희라는 여인의 삶이 가장 뜨겁게 내 맘에 가라앉았다
너무 뜨거웠다
그 시대엔 다 그랬지라고 치부하기엔 한 여인의 삶을 바라보는 여자의 입장에선
그저 시대의 아픔으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오래전에는 수덕사에 가면 입구 근방에서 수덕여관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떨 지 궁금하다
안에까지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가까이에서 힐끔거리기도 했고
그 근처의 암각화 있는 곳에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도 했었다
너럭바위 위에 새겨진 암각화는 아마도 한참 뒤의 군상이나 문자의 형상화를 탄생케 한 주춧돌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어린 나이에 이응노와 결혼한 박귀희여사는
일본에서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가 뒷바라지하고 수덕여관을 운영하며 남편 내조했건만
대학 교수활동을 하던 이응노는 제자 박인경과 파리로 훌쩍 떠나버린다
그 후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를 때도, 옥살이로 허해진 몸을 추스를 때도 이 수덕여관의 안주인은
정성을 다해 마음이 떠나간 남편을 돌본다
하지만 그의 앞길에 방해가 될까 봐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것을 훗날 후회했다는 그녀의 술회는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옥고를 치르면선 허약해진 심신을 달래며, 울분을 삭이며
인간의 힘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커다란 너럭바위에 징과 망치를 들고 덤벼들 듯이 작업한 한 남자의 뒷모습이 오버랩된다
수없이 찍어내고 쪼아댔을 시간들이 아마도 몸속의 화를 다 몰아냈을 것이다
훗날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이응노화백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고성쇠의 모습을 표현했다
여기에 네 모습도 있고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렇게 설명했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는데 이번 이응노전시관에서는 <이응노 파리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그가 살았던 거주지역을 3개의 시대로 나누어 화백의 예술세계가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한다
종이에 먹, 색, 콜라주를 이용한 작품 <구성>
종이에 먹, 콜라주 <구성>
문자를 활용한 콜라주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종이, 모래, 콜라주 <구성>
위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모래에 의해 한지가 톡톡 찢겨진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나 같은 속세무민이라면 모래 때문에 한지가 찢어졌으니 다시 작업해야 해 했겠지
이 작품 군상 앞에서 가장 길게 머물 수 밖에 없다
군상들 사이에서 다양한 모습(포즈)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가 작품하면서 방향이나 구조화를 위해 연필로 살짝살짝 표시해 둔 흔적까지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보고 그 의도를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서 그림을 읽는다
관람자가 많지 않으니 여유있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남편과 각자 자신의 관심을 끄는 작품에 집중하며 가끔 동선이 겹치면 이런저런 감상을 소곤소곤
<죽엽무> 종이에 목판
이응노 화백이 활동한 파리의 세 곳
파리 교외의 아스니에르와 15구에 위치한 구르넬 시기
퐁트네 오 호즈 파스퇴르 시대
악소 프래 생 재루배 시대
이렇게 세 곳에서 활동하며 완성한 작품을 나열해 놓으니 파리에서의 작품 흐름도를 이해하기 좋았다
뭐~~
그런 복잡한 연대기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이응노 작품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다
소박한 이응노 미술관이 예산 수덕사 근처에 있는 수덕여관을 떠올리게 한다
조만간 수덕여관이 있는 수덕사로 달려갈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