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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불은 80년대 후반 우리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하였다. 당시 작가는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대단히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화단을 충격에 빠뜨렸다. ‘여전사’, ‘한국 미술 최전위 작가’와 같은 화려하고 강렬한 수식어가 그녀에게 붙어다니게 되는데 그 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작가 이불의 개인전이 1998년 처음 개인전을 가졌던 아트선재센터에서 다시 열리고 있다. 20여년의 시간동안 그녀의 작품은 천천히 변화하였고 작가 자신도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여 올해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아시아작가 최초로 회고전을 가졌다. 1997년 뉴욕 MOMA에서 개인전을 가지고, 1998년 휴고보스상 최종후보로 선정되었으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그녀는 한국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성장하였다. 더 이상 과거의 여전사가 아닌 작가 이불로 불리길 바라는 그녀의 이번 개인전에는 어떤 새로운 작품들이 선보이는지 궁금해진다.
이번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의 2층과 3층의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2층 전시실에서는 작가 이불의 최근 신작 3점이 공개되는데, 근대적 자각을 의미하는 거울을 매체로 제작되어 작품을 체험하는 이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해준다. 전시실 입구를 들어가면서부터 마치 자신과 사회에 대한 투영의 경험을 선사하게 될 또다른 세계로 안내하려는 듯, 작가의 작품이 동굴처럼 설치되어 있다.
이 <수트레인 Souterrain>을 지나면 넓은 2층 공간엔 또 다른 두 작품이 위치해있다. 전시실 벽면 전체는 검은 천으로 감싸져있고 바닥은 거울과 같이 비치는 소재로 되어있어 관객들은 외부세계와 차단된 이세계異世界로 온 듯 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한 느낌을 가지고 가장 먼저 마주하게되는 작품은 <비아 네가티바 Via Negativa>이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대규모 설치작품인 <비아 네가티바>는 지적, 시각적 구조에 대한 이불의 끝없는 탐구를 보여준다. 설치된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관객들은 다각도로 배치된 전면의 거울에 반사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불완전하지만 다양한 조각이라는 파편으로 접하게 되는데, 미로와 같은 좁은 길이 이어져있어 그 안에서 관객들은 불안감과 함께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게 된다.
<비아 네가티바>의 옆에는 <나의 거대 서사> 시리즈 중 <벙커(M.바흐친) Bunker(M.Bakhtin)>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마지막 왕손 ‘이구’의 불행한 삶을 조명한 이 작품은 우리 근대사의 다양한 요소를 담고 있다. 왕족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조선왕조복원사업을 위해 박정희 정권에 강제소환되어 역사의 희생양으로 살다 삶을 마친 그의 삶을 되짚어보며, 작가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여섯 공간을 선정하였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관객은 스스로에게 발생하는 소리와 과거 이우가 존재했던 여섯 공간에서의 소리가 하나로 재구성되어 관객에게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역사라 생각되는 과거와 지금 이 순간의 현재를 융합시켜 그것을 관람객에게 현재의 경험으로 전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3층 전시실은 이불의 회고전으로 기획되어 기존 작품과 현재 전시된 작품들의 다양한 스케치와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스튜디오 전체를 건축적 변형을 통해 구조적으로 재구성하여 전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 그 안에서 20년 동안 선보인 작품들의 일면을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녀의 과거작품을 살펴보면, 초기는 전위적인 퍼포먼스와 페미니즘적 색채가 강한 도전적인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MOMA에 전시된 죽은 물고기의 부패하는 냄새가 그대로 진동하게 하는 <화엄 Majestic Splendor>을 비롯하여,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을 드러내기 위한 반라의 퍼포먼스 등은 당시 여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과격한 예술을 선보였다. 1994년부터는 대형 풍선작업을 시도하는데 자신을 모델로 한 <히드라>가 당시의 대표작업이다. 오리엔탈리즘적 환상이 기반이 된 이 작품의 제목이 <히드라>라는 점은 대단히 아이러니한데, 이불 자신에 투영된 동양소녀는 유약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않고, 머리 아홉 달린 죽어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괴물의 이름을 하고 있다.
1997년 이후엔 사이보그라는 조형으로 그녀의 혼합된 문화적 정체성과 여성성에 대한 불완전하고 일그러진 현대의 왜곡된 시선을 투영해내고 있다. 또한 그녀의 [나의 거대서사] 시리즈는 근대성에 대한 그녀의 불완전한 투영과 자각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나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시대인 근대를 상징하는 거울은 최근 작업까지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을 결코 완전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고 다각도에서 파편화된 자신의 모습을 조각처럼 찾아나가는 미로 속 현대인들의 모습을 연출한다.
이번 아트선재센터의 전시는 도슨트가 하루 4번의 안내를 하고 있다. 평소 이불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 현대미술작품의 난해함으로 평소 거리감을 느낀 이들,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세한 작품 설명을 곁들여 작가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 기간: 2012년 9월 9일(일) - 11월 4일(일)
관람 시간: 11am - 7pm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 요금: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도슨트 안내: 1일 4회 (오후 2시, 3시, 4시, 5시)
단체전시관람: 어린이~청소년 대상, 전시기간 중 사전예약
뮤움닷컴 인턴기자 김태윤
첫댓글 선재는 언제나 지나다녀도 그냥 지나치게 되는것 같아요.. 오래전 야요이쿠사마 전시때 미어지는 사람들 틈속에서 전시 본 후 가본적이 없네요..이불의 거울작품, 드로잉등은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