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마루
방학이라 출근 부담이 없는 새해 둘째 날이 밝았다. 이른 새벽 종이신문을 펼쳐 읽은 후 며칠 전 밀양 지인에게 받아온 시래기가 삶겨져 있어 줄기를 몇 가닥 깠다. 시래기는 삶은 후 물에 불려 놓았다가 줄기를 까면 반투명 껍질이 벗겨져 나온다. 시래기는 그냥 조리해 먹어도 되지만 껍질을 까서 먹으면 식감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시래기 까는 정도야 집안에서 내가 거들만한 했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도시락을 챙겨 산행을 나섰다. 어제는 남쪽 구산 바닷가로 나가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오늘은 동쪽으로 가서 창원터널 위로 넘나드는 상점고개를 넘어 장유로 가 볼까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나는 평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러 학교로 오가고, 주말이나 방학이면 내가 자연에서 한 수 배우러 산이나 들로 나다닌다. 산야에선 급식이 안 되기에 보온도시락을 챙겼다.
집 앞에서 대방동 종점으로 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창원대학과 도청 앞을 지났다. 법원과 검찰청을 지나 대방동 아파트단지에서 내렸다. 대암산 오르는 들머리가 가까웠다. 곧바로 오르는 대암산이 아닌 용제봉으로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상점고개는 지난 가을에 장유사로 가면서 오른 적 있었다. 그간 계절이 바뀌고 해도 바뀌었다. 건너편 안민고개와 장복산 산등선이 드러났다.
용제봉 임도는 산 아래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즐겨 찾는 등산과 산책을 겸한 트레킹길이다. 중간에 불모산 숲속 길과 연결된다. 나는 생활권과는 다소 떨어져도 여름철에도 가끔 찾아왔다. 봄철은 북면이나 진동 근교 산을 오르느라 틈이 나지 않았다. 등산객은 사계절 어느 철이나 가리지 않으나 봄과 가을이 많고, 여름과 겨울이 적은 듯했다. 그 가운데 여름보다 겨울이 더 적은 듯했다.
임도 바닥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 반질반질했으나 평일 겨울이어서인지 산행객이 한산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네가 몇 스쳐 지날 뿐이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눈에 더 띄었다. 산에 가 보면 확실히 남녀 평균 수명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는 것을 실감한다. 야간에 시내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도 여성이 더 많다. 남자는 그 시간 회사 잔업을 하거나 술집에서 고기 안주를 먹는다.
인적 드문 임도를 따라 걸어 상점고개로 갈리는 이정표에서 용제봉으로 올랐다. 상점고개로 바로 가지 않음은 용제봉 오르는 숲길을 더 걷고 싶어서였다. 소나무보다 낙엽활엽수들이 우거진 숲이었다. 가랑잎이 바스락거리는 산길을 걸어 올랐다. 가파른 비탈을 암둔 지점에 나무로 된 평상 쉼터가 나와 배낭을 풀고 앉았다. 보온도시락은 열지 않고 김치를 꺼내 곡차를 몇 잔 비웠다.
이정표를 지나서부터는 인적이 뚝 끊겼다. 쉼터에서 배낭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용제봉 정상이 멀지 않으나 그곳으로 오르지 않고 옆으로 난 길을 걸었다. 그 길은 예전에 송전탑을 세우면서 중장비가 지난 길인 듯했다. 근래 수종 갱신을 위해서도 산기슭으로 중장비가 올라온 듯했다. 숲속 길을 한참 나아가니 상점고개와 만났다. 거기서 장유사 가는 왼쪽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용제봉 남사면에 해당하는 산줄기를 따라 걸었다. 용제봉으로 가는 길과 장유사로 가는 길로 나뉘었다. 장유사 가는 길에서 장유계곡으로 내려섰다. 삼랑진 만어사 물고기돌과 같은 돌너덜을 지나고 나서 너럭바위에 퍼질러 앉았다. 배낭을 풀어 보온도시락을 열었다.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아까 비우다 남겨둔 곡차를 마저 비우면서 소진된 칼로리를 보충했다.
도시락을 먹고 난 뒤 비탈로 내려서니 가랑잎이 말라 산길이 미끄러웠다. 삭은 참나무등걸에서 부석부석 마른 운지버섯을 몇 줌 땄다. 겨울 산행에서 자연이 주는 선물로 여긴다. 갈색의 참나무 진흙버섯도 보였다. 나목이 된 숲을 빠져나가니 인가가 나타났다. 장유계곡에서 가장 위쪽에 해당했다. 꿀벌을 키우는 양봉원과 절이 나오고 포장된 길을 따라 내려가니 식당과 찻집들이었다. 1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