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독(謹獨), 다스림의 요체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이가 없다고 하는가?[천지신지아지자지 하위무지(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후한서(後漢書) 양진열전(楊震列傳)〉.
레바논의 사상가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가장 고독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는데, 홀로 있는 시간이 훌륭해야만 마음과 영혼의 세계가 성장하여 비로소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사람이 혼자 있을 때에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이 정하여진다.”라는 경구는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신독(愼獨) 또는 근독(謹獨)’은 “혼자 있을 때에 마음과 몸가짐을 삼가라”는 뜻으로 <대학(大學) 전육장(傳六章)>에 이르기를 “소위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며 좋은 빛깔을 좋아하듯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삼가는 것이니, 고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 스스로 조심한다.[소위성기의자 무자기야 여오악취 여호호색 차지위자겸 고군자필신기독야(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라고 한 것에서 나온 교훈이다.
옛 성현(聖賢)들이 ‘근독(謹獨)’을 이처럼 매우 강조하였던 이유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그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장 21-22절)는 말씀의 취지에 연유한다고 본다. 실천하지 않음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은 바로 위선자가 되는 것으로 그리되면 자신도 자괴감을 느껴 무너지게 되고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이 되어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이를 막고자 옛 성현(聖賢)들은 ‘근독(謹獨)’을 그토록 강조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연유로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 홀로 있을 때에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 성인(聖人)의 극치(極致)라는 것도 결국은 이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였다. <1653년(효종 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상차문(上箚文)’에서>.
또한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인조(仁祖)임금에게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근독(謹獨)이 필요함을 강조하여 말씀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기강(紀綱)을 세워야 합니다. ··· 안으로 남이 알지 못하는 지극히 은미한 곳으로부터 계구(戒懼, 경계하고 두려워함)하고 근독(謹獨)하기를 더욱 엄격 긴밀히 하고, 인욕(人欲)은 물러가고 천리(天理)가 밝게 드러나도록 한 뒤에야, 이 일이 근본 한 바가 있어서 나라를 다스림이 바르게 정립(定立)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우암 송시열 선생, ‘백강 선생 신도비명(神道碑銘)’에서). 생각건대 우리 대한민국이 지향하고 있는 자유와 인권과 법치는 바로 천리(天理)를 환히 밝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가정이든 사회든 나라든 특별히 리더가 근독(謹獨)함으로 인욕(人欲)을 물리치고 천리(天理)가 밝게 드러나게 처신해 간다면 주변이 감화(感化)되거나 정화(淨化)되어갈 것이니 결국 이것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풀려나가게 되는 동인(動因)이 될 것이다.
2023. 7.20.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