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던 보자
무지개 카페의 안은 저녁놀이 창문을 넘어와서 옅은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창문 곁에 흰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앉아있다. 내가 급한 걸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노인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 쌓여 밝지 않은 표정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렸셨죠?”
“아니”
그리고는 말이 없다.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약간은 낯이 익은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아는 척 했다. 노인은 여전히 무표정하다.
“이당도 나오셨네.”
“아. 예. ”
이당(김은호)의 대답이 어정쩡한 걸 보니 여자를 만나는 것이 반갑기는커녕 당혹스러워 보인다. 나혜석도 그걸 느꼈었나 보다.
“이당이야 나이로 따지면 오빠지만, 서화협회에서 내게 뎃생을 배웠잖아. 그러니 내 제자이기도 하지. 안 그래.”
아, 그랬구나. 그래서 여자의 말투가 조금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보였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나혜석의 말투도 곱지만은 않는 것을 보니 이당의 태도가 마음에 썩 들어보이지는 않았나 보다. 이당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제일 늦게 소정(변관식)이 시간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어기적거리면서 나타났다. 우리를 보더니 말없이 고개만 조금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입을 열었다.
“세 분을 이 자리에 모신 것은 같은 시대를 사신 화가이시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으신 것 같아서 선생님들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어서입니다.”
“ 이 자리에 말썽만 부린 여자라는 나까지 끼어 넣어 주어서 영광이네”
“지금은 선생님이 사시던 시대와는 엄청 달라졌습니다. 상전이 벽해가 되는 만큼요. 그래서 선생님은 반드시 모셔야 하는 자리입니다.”
나혜석의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니더라도 이분들의 삶이 흥미로워서 꼭 만나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제가 비싼 여비를 들여서 이승에서 저승까지 찾아온 것은 화가로서 살아오신”
소정이 내 말을 끊고 빈정거리는 말투로 불쑥 한마디 하면서 이당을 돌아봤다.
“화가라고 모두 같아? 선비 같은 화가도 있지만 시중잡배 같은 환쟁이도 있지.”
“아이구 선생님들. 저승까지 오셔서 아직도 티격태격 하십니까? 이승에서 은원 관계가 그리도 깊었어요.”
“은원은 무슨 은원, 나야 평생을 이당과는 우정을 지킨 사이가 아닌가. 친구이다 보니 화가로서 사는 모습이 시중잡배 같아서 한 마디 한 것뿐이야.”
“이봐, 소정. 이승에 있을 때는 네 따위가 어디 감히 나더러 말이라도 걸 수 있었어. 내가 아니더라도 내 제자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네놈을 박살을 내어버렸을 텐데.”
“그렇게 사니까 좋았어? 혼도 없는 그림을 그리면서 내노라 하고 뽐내면서 사는 것이 좋았어? 제자들이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무릎걸음으로 쩔쩔 매니까 기분이 날아갈 듯 했어.”
“혼이 없다니. 나는 옛 그림을 베껴먹기만 하는, 캐캐묵은 조선의 화단에 일본의 선진 그림을 선보였던거야. 그림들이 얼마나 고왔어.”
소정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더니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당의 말이 맞는 것도 있어. 나 따위는 감히 그 패거리들 앞에서 맥도 못 췄어. 그러나 나는 내 그림을 지키려 했고, 조선의 혼을 담으려 했어.”
“조선의 혼? 어이구,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더러운 성깔은 이승에 있을 때나 여전 하시네. 제자가 큰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발표하는데도 너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싹 외면을 했다면서. 치마 두른 여자보다도 속이 좁아서야, 내 참.”
“두 분 말싸움에 여자는 왜 끼어 넣어요?”
“아닙니다. 나 선생님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입니다. 치마만 둘렀다 뿐이지 남자화가들이 감히 따를 수가 없지요. 더구나 혼이 없는 일본 그림을 그리는 스승을 따라서 일본 그림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린 조선의 남자 화가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에 비하면 선생은 자기의 그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잖습니까.”
“화냥질이나 한 여편네를 존경한다고. 제 정신이 아니구먼, 그러니 경성에서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전국을 떠돌면서 그림을 그렸구먼, 그래도 화가라면서.”
“이당, 말이 심하네. 조선의 남정네들은 여자들에게 모두 깡패야. 자기들은 기생첩에다 맨날 외입질을 하면서 조선 여자는 남성네들의 종으로 살아라고. 어이가 없어서. 여성도 성적 자유가 있어야 하는거야.”
“암닭이 울면 집구석이 망한다니까. 그러니까 그 집의 집구석도 이혼이다. 뭐다 하면서 폭싹 망했지. 집에서 쫓겨나서 자식새끼도 못 만나고 살면서 그림에 인생을 바치면서 살았다고..”
“이당 그건 말이 좀 심하네. 양화를 그리던 남자 화가들이 모두 붓을 꺾을 때 혼자서 자기 그림을 지키면서 살았잖아. 이런 걸 예술혼이라는 거야. 너한테는 없는 거지.”
“천한 여자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자인데, 예술혼을 담은 화가라고?”
나는 아무말도 않고 세 사람이 나누는 말싸움을 듣기만 했다. 내가 질문하고 싶었던 것이 세 분들이 나누는 말싸움에 모두 들어 있었다.
“나 선생이 조선 여자의 속박을 풀려고 먹을 것이 없어서 몸이 망가져가며 싸울 때 이당은 돈벌이가 잘 된다고 왜놈한테 아양이나 떨면서 반도총후 무슨 단체니 하는데서 일본을 찬양하는 그림이나 그려 바쳤어?”
“왜놈들이 너에게는 집적거리지 않으니까 편하게 보냈겠지. 왜놈이 나를 못살게 군 것은 나는 유명한 화가였고, 너는 이름도 없는 화가라서 그런거야.”
“그랬었구나, 으응”
“ 그리고 밥을 먹고 살려는 것이 뭐가 나빠. 나는 너처럼 괜찮은 집안의 출신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나 뭐라는 여자처럼 명문세가의 집에서 태어나서 부모의 돈으로 일본 유학도 가지 않았어. 밥을 굶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 밥 많이 먹는 게 꿈이었어.”
“밥 먹는 거 하고 왜놈한테 네 혼을 파는 거 하고 무슨 관계인데‘”
“모르는 소리, 선전에서 뼈가 굵어야 유명화가가 되는거야. 그러려면 그들의 식성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하고, 일본색이 넘쳐야 유명화가로 살아 남는거야. 너처럼 자기 그림이라면서 고집을 부리면 존재 없이 떠돌아다니는 화가가 되는거야. 밥도 못 먹고.”
“그래야만 너 밑에 제자들이 줄줄이 모여들고.”
“아암 그렇지.”
“그래, 배고프게 자란 탓이라고 하자. 그러나 광복이 되면 일본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아. 광복 한국에서도 일본색 그림으로 폼을 잡으면 사는 것은 아니지.”
“광복이 되어도 나 만큼 재주 있는 화가가 없었겠지.”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나혜석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나야 먼저 이승을 떠났으므로 살아 활동하던 그대들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들려오는 소문을 들었어, 화가들이 물고 오는 소식인데, 심지어 이당의 제자까지도 한소리 하더라.”
“무슨 소린데?”
“그림을 그려서 밥 빌어먹고 사는 거야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대표적인 친일화가가 이순신 장군과 논개의 영정을 그려서는 안 되지, 그 분들이 어떤 분인데 이당 같은 친일화가가 감히 영정을 그려.”
“나만큼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없어서였겠지.”
“소정도 있었는데.”
“허허, 소정 따위가.”
“그래서 소정이 한 마디 했다면서 ‘나 죽거던 보자’라고 했다면서.”
“산 입으로 무슨 소린들 못 해.”
나는 그 분들이 나누는 말을 듣기만 했다. 내가 끼어들기 에는 가시가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이당의 말을 들어보면 그때는 나혜석을 두고 몸둥아리를 천하게 굴리는 쓰레기 같은 여자라며, 아예 입에 담으려 하지도 않았나 보다. 그래서 51세의 나이에 시립병원에서 죽으면서 무연고자로 처리되었나 보다. 추정나이가 60대 였다고 하였다니 삶이 너무 비참했었나 보다.
친일화가들이 활갯짓 하고 다니는 세상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소정도 ‘나 죽거던 보자’ 했을까. 지금 이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해 주고 싶었지만 싸움에 부채질 할 것 같아서 그냥 이승으로 내려와 버렸다.
소정도 죽었고, 이당도 죽었다. 지금 이당은 친일화가로 욕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그가 그린 영정도 떼어내자는 운동이 활발하고, 7-80년 대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그림 값도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빌빌거리고 있다.
소정의 그림은 2018년 3월의 옥션에서 8억 5천만원에 팔렸다. 이당은 말할 것도 없고, 최고의 화가로 불리던 이당의 제자 운보 김기창의 그림값보다 거의 10배가 높다.
나혜석은 지금 여성주의자들의 영웅이 되어 있다. 5만원권이 발매될 때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으로 그의 영정을 지폐에 넣자는 논의도 활발했다.
소정의 말마따나 그들이 죽고 나서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