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검약의 미학, 연세대 근대 건축물
연세대 서울캠퍼스에는 사적 275호 스팀슨관(1920년 건축), 사적 276호 언더우드관(연세대 본관·1924년 건축), 사적 277호 아펜젤러관(1924년 건축)이 있다. 고딕풍인 이들 건물은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 아름답다. 외벽이나 기둥과 지붕 하나하나에 과장스럽지 않은, 절제된 건축미가 담겨져 있다. 연세대의 전신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언더우드(한국이름 원두우) 박사의 검약하면서도 고결한 정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스팀슨관은 연세대에 최초로 세워진 건물. 당시 언더우드 박사의 부탁에 따라 건축비를 기부한 미국인 찰스 스팀슨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였다. 언더우드관은 언더우드를, 아펜젤러관은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를 기념하기 위한 건물.
언더우드관 · 아펜젤러관 · 스팀슨관 · 핀슨관
옛 캠퍼스에서 누리는 고딕풍 낭만이어라
소재지 : 서울시 서대문구 성산로 262 연세대학교
가는 법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3번 출구. 연세대 방면 직진. 연세대 정문 지나 직진 백양 삼거리. 간선버스 153, 163, 171, 172, 272, 370, 470, 601, 606, 607, 708, 710, 750A, 750B번, 지선버스 6714, 7017, 7613, 7713, 7720, 7726, 7727, 7728, 7737번, 마을버스 서대문03번 연세대 앞 하차
목차
독수리 다방 지나 백양로를 걸어
가을 낭만과 윤동주
연세대 캠퍼스에는 고풍스런 옛 건물이 참 많다. 백양로 끝자락에는 언더우드관·아펜젤러관·스팀슨관 세 개의 사적이 모였다. 가을날 담쟁이가 무성하니 옛 캠퍼스를 걷는 낭만이 고스란하다. 핀슨관기숙사를 나선 시인 윤동주도 이 길 위에서 시상을 떠올렸으려나.
독수리 다방 지나 백양로를 걸어
차들로 빽빽한 연세로의 끝자락. 창천교회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다. 독수리 약국 앞이다. 독수리 다방이 떠오른다. 1971년에 문을 연 독수리 다방은 2005년에 문을 닫았다. 동숭동 서울대에 학림 다방이 있었다면 신촌 연세대에는 독수리 다방이었다. ‘독다방’이란 애칭으로 불렸다지. 이제는 신촌의 ‘별다방’과 ‘콩다방’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련한 추억들.
경의선 철도 아래를 지나 연세 사거리를 넘어선다. 연세대의 정문이다. 다시 곧게 뻗어나간 길이다. 백양로다. 서울의 대학 캠퍼스 가운데 가장 시원스런 진입로다. 백양로는 1930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길 따라 백양목(白楊木)을 심었다. 지금은 은행나무 가로수다. 1960년 수명이 다한 백양목 대신 식재했다. 가을날에는 샛노란 은행나무 단풍이 백미다. 캠퍼스의 낭만을 가득 안긴다. 어떤 것들은 사라지고 어떤 것들은 남겨진다. 아쉽다만 할 수 없겠지. 그것이 시간의 속성인 것을.
백양로는 백양 삼거리의 계단 앞에서 길이 나뉜다. 계단은 3계의 층계참을 가진다. 그 끝자락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적혔다. 지나온 길로는 저만치 백양로의 은행나무가 멋스럽다. 그리고 정면에는 진리의 상징처럼 고딕풍의 고풍스런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원을 지나 우뚝한 사적 제276호 언더우드관이다. 정방형의 평면에 5층 높이의 중앙탑이 두드러진다.
언더우드관을 마주보고 왼쪽으로는 사적 제275호 스팀슨관이, 오른쪽으로는 사적 제277호 아펜젤러관이 자리한다. 서로 간에 길을 열며 정원을 공유한다. 세 건물은 힘차게 달려온 백양로의 정점이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우리나라 캠퍼스 건축의 표본이다. 그리고 연세대 캠퍼스의 진원이다. 캠퍼스는 세 건물을 중심축으로 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백양로의 백양목의 숨이 다하고, 연세로의 독수리 다방이 사라지는 것까지 지켜봤겠지. ‘ㄷ’자의 배치는 그 긴 세월을 가만히 품어 안은 듯하다.
세 건물 사이의 정원을 가로지른다. 정원은 창립자 언더우드의 국적인 미국의 ‘米(미)’를 형상화했다. 미국(美國)을 미국(米國)이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 중심에 언더우드 동상이 서 있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 이름은 원두우(元杜尤)다. 세 건물의 시선이 모이는 교차점이다. 그는 미국 장로교의 선교사로 1984년 조선에 파송됐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와 서울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 교회를 세웠다. 선교와 교육을 병행하며 우리나라 근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의 동상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두 차례 파괴되고 1955년 세 번째로 세워졌다.
언더우드관은 그의 업적을 기려 이름 붙인 건물이다. 하지만 시간상으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은 스팀슨관이다. 1920년에 세워진 연희전문학교 최초의 석조건물이다. 교사 건립을 위해 2만 5천 달러를 기부한 스팀슨의 이름을 땄다. 1919년 4월에 착공해 1920년 8월 완공했다. 지상 2층 반지하층으로 이루어졌다. 스팀슨관을 비롯한 언더우드관과 아펜젤러관 모두 운모편암석을 이용한 석조 건축물로 지었다. 창문 테두리 등은 화강암으로 마감했다. 장방형 평면에 슬레이트 맞배지붕 형태를 취했다.
스팀슨관만의 특징은 돌출한 형태의 정면 현관 입구다. 그 정수리 부근에는 태극마크가 선명하다. 맞은편의 아펜젤러관은 1921년 10월 착공해 1924년 가을 완공했다. 스팀슨관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졌다. 언더우드와 함께 온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를 기념한다. 배재학당을 세운 인물이다. 아펜젤러관은 스팀슨관과 유사한 형태이나 현관이 아닌 양쪽 끝이 돌출했다. 중앙 출입구에는 1층 높이의 페디먼트(입구 위의 삼각형 벽)를 설치했다. 현재는 사회복지대학원으로 쓰인다.
언더우드관은 아펜젤러관과 같이 지어졌으나 1925년 6월에 공사가 마무리됐다. 긴 공사 기간을 반영하듯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로 가장 크다. 가운데의 중앙탑이 있어 다른 건물보다 웅장한 느낌을 안긴다. 건물의 좌우 끝에는 돌출형 창을 가진다. 대학의 사무동으로 쓰인다. 백양로 등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건축의 설계는 재미 건축가 머피가 맡았다.
가을 낭만과 윤동주
세 건물은 고딕풍의 옛 벽돌 건물을 휘감는 담쟁이 덩굴로도 사랑 받는다. 건물의 역사와 맞먹는 담쟁이는 거침없이 자란다. 봄과 여름에는 짙은 초록이 시원스럽다. 하지만 역시 가을 풍경이 압권이다. 가을의 언더우드관은, 아펜젤러관은, 스팀슨관은 경쟁하듯 붉게 물든다. 흑녹색의 운모편암석은 담쟁이에 가려져 마치 붉은 벽돌 건물인 양하다. 담쟁이들은 건물을 타고 오른다. 슬며시 창가를 향해 가지를 뻗는 엉큼함은 또 어찌하랴. 같은 자리에 있지만 저마다 단풍이 드는 정도도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한층 알록달록하다.
‘어느 소가 가장 일을 잘하오?’라는 젊은 황희 정승의 짓궂은 질문처럼, 어느 건물이 더 나은지는 말할 수 없다만 귓속말처럼 다가서는 아펜젤러관의 단풍이 빼어난 건 사실이다. 특히 좌우측 돌출 부위의 담쟁이 단풍이 유쾌하게 눈을 어지럽힌다. 창가를 따라 가지런하게 번지는 붉은 잎들의 행렬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곱기만 하다. 반면 스팀슨관 북쪽 측면 담은 일찌감치 잎사귀를 떨어뜨린 담쟁이 줄기들이 빗살무늬처럼 색다른 문양을 만든다. 고운 빗금들이다. 주변으로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고목도 높게 자란다. 눈치를 살피듯 은근히 제 빛깔을 뽐낸다. 그러니 서울의 대표적인 단풍 명소로 불릴 수밖에. 백양로를 따라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길을 지나와 붉은 담쟁이 단풍의 옛 건물을 만나는 행로라니. 누군들 탐내지 않을까. 봄날에는 정원에 진달래와 철쭉 등이 만개한다.
세 동의 사적 외에 핀슨관도 찾아볼 일이다. 백양 삼거리의 서편 언덕에 1922년에 지어진 2층 영국식 주택이다. 봄날에는 건물 입구의 벚나무 한 그루가 곱게 꽃을 피운다. 핀슨관은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리고 수많은 기숙생 중 한 사람으로 인해 주목 받는다. 1938년 4월 9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다. 1941년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3년여를 연희전문학교에서 보냈다. 그는 기숙사에서 머물며 사색하고 고뇌하며 그 감성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다. 우리가 애송하는 많은 시들이 이곳에서 지어졌다.
윤동주 시인이 사용했다는 핀슨관 2층의 205호는 윤동주 기념실이 되었다. 사진자료와 미공개 자필시 등을 전시한다. 핀슨관 앞에는 그의 시비도 섰다. 그의 필체대로 조각한 「서시(序詩)」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시인의 마음이다. 그 곁에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 소리마저도 예사롭지 않다.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아펜젤러관&스팀슨관&핀슨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