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0. 큐티
마태복음 8:28 ~ 34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 둘
관찰 :
1)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자 둘을 만나시는 예수님
- 28절.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 “가다라”는 갈릴리 동쪽 8km 지점에 위치한 베레아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일명 ‘거라사’라고도 불리웠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거라사로 지칭했습니다.
- 귀신 들린 자의 수에 대해서 마태복음은 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하나로 기록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오류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이 잘못됐구나 하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 언제나 문제인 것입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경의 기자가 기록한 그 원본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성경을 대해야 합니다. 이 귀신들린 자들의 숫자가 차이 나는 것에 대해서 칼빈은 귀신들린 자가 원래는 두 명인데 예수님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한 자가 한 명이기에 다른 본문에서는 한 명으로 묘사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펼쳤습니다. 또는 둘 중에 보다 괴악하게 귀신들린 자에게 집중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 귀신들린 자의 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씌여진 것이기에 오류라고 볼 수 없는 사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마태가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해가고 있으며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들에게 가라”시는 예수님
- 32절.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신 예수님은 이제 영적인 세계도 다스리시는 분이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에 물질의 영역 뿐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의 간구에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허락이 아닌 허용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귀신들의 요구에 내버려 두시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심판이 유보되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 그러나 주님의 ‘가라’는 다스리심이 있었기에 군대귀신(누가복음에서 설명)은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의 다스리심이 임한 것이기에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가게 되는 것은 올 세대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대에 시간과 공간을 격하고 침노하게 되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에 사로잡힌 인간을 그 세력에서 구원하시는 일은 천국 복음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3) 귀신들린 자들의 고백
- 29절 ~ 31절.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 귀신들린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주님에 대해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자들보다, 바리새인들보다, 사두개인들보다, 서기관들보다, 제자장들보다, 대제사장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주님의 존재를 바르게 인식한 이들은 주님을 떠나시기를 구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심판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주님의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기에 자신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4) 예수님에게 떠나시길 구하는 가다라 지방 사람들
- 33절 ~ 34절.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 가다라 사람들이 돼지 떼 값을 변상해 달라고 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정말로 예수님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두려움의 본질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바꾸어야 하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부담이었던 듯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쇠사슬도 끊어버리는 가다라 광인들이 구원받은 것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믿는 신앙보다 더 큰 이가 오심에 자신들의 그릇됨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나아오기보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죄악에 물들어 있는 인생의 아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 현재도 자신이 믿는 신념과 신앙에 사로잡혀 참되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모습입니다. 안타깝고 아픈 인생의 현실입니다.
5) 귀신 나간 자들의 나중
- 눅 8:38~39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 가다라의 귀신들린 광인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그들의 고통이, 그들의 눈물이 별이 된 것입니다. 귀신들렸었기에 주님을 만났고, 귀신들림 없이 귀신들린 자들을 흉보던 이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 물질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일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도 다스리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2) 예수님은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들로 전도자를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의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3) 주님의 가르침에 나의 생각을 내려두고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적용 :
1) 주님의 역사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혹 내 안에 예수님이 역사하심을 방해하는 어떤 것,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어떤 부담이 있는 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아내가 이렇듯 황망하게 떠난 것에 대해서 감정적으로는 울컥울컥 힘들고 괴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주님의 은혜의 한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2) 가다라의 광인들의 아픔이 별이 되고 훈장이 되듯이 내가 아내를 잃는 슬픔, 그리고 미얀마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별이 되고 훈장이 될 것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