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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하옇든 이제 그 산보객더러 물어보자.』
이리하여 박부장은 아직 우두커니 서서 경찰들이 떠들고 있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는 산보객을
『여보!』
하고 불렀다.
『왜 그러시우?』
산보객은 한발자욱 경찰 앞으로 다가 서면서 대답하였다.
『이제 방금 이리로 「씰크햇트」를 쓰고 예복을 입고 단장을 든 수상한 신사가 뛰어 들어가는 것을 못 보았소?』
하고 묻는 말에
『「씰크햇트」를 쓰고 예복을 입은 신사?』
하고 산보객은 또 한걸음 다가 선다.
『그리고 외알안경을 쓴 ──』
그때 그 산보객은 달빛에 어렴풋이 비치는 박부장의 창황한 얼굴을 유심히 드려다보면서
『자네 박태일군이 아닌가?』
하고 의외의 말을 건넸다.
이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이 뜻하지 않은 인물과 만난 박태일은 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어떻게 축복하여야 할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지금 서울 장안뿐만 아니라 전 조선의 범죄자들을 전률시키며 따라서 그들의 미움을 자기 혼자 차지하고 있는 명탐정 유불란(劉不亂) 씨 그 사람이었던 때문이다.
경찰서에도 소위 저라고 하는 자칭 명탐정이 수두룩한 가운데 박태일은 오직 자기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은 유불란 씨 이외는 없다고 믿고 그를 지금까지 사숙해 왔던 터이다.
그러한 유불란 씨를 이러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박태일이었다.
『무슨 공명을 이룰만한 사건이 생겼나보구만, 응?』
하고 묻는 유불란 씨의 말에
『「씰크햇트」를 쓰고 예복을 입고 아래 턱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수상한 신사를 못 보셨읍니까? 이제 방금 이리로 쫒겨 들어 갔는데 ──.』
『이제 방금?』
『네! 그이가 유령이 아닌 이상, 그리고 세상에 과학(學科)이란 것이 있는 이상 선생과 그이와는 이 좁은 골목에서 필연적으로 만났을 것입니다.』
「하아, 군의 말을 듣고 보니 군은 나를 몽유병자(夢遊病者)로 생각하는 모양이네 그려. 그렇지 않겠나? 내가 졸면서 산보하는 습관을 가지지 않은 이상 사실 그런 사람이 이 골목으로 뛰어 들어 왔다면 내가 못 볼 리가 없을 텐데 ──』
『이상한 일입니다. 이선배란 인물이 겨드랑이에 날개를 붙이지 않은 이상 이 수수께끼를 풀 사람은 우리 조선 안에 단 한사람 ── 선생님뿐이겠지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군의 말을 들으니 대단히 재미있는 사건 같은데, 어디 처음부터 한번 이야기를 해보지. 그리고 웬만하면 내 집으로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씩 ──』
그 때야 박태일부장도 오른편 양옥이 유불란 씨의 댁인줄 비로소 깨닫고
『고맙습니다. 그러나 곧 서로 돌아가서 보고를 해야겠읍니다.』
『하아, 사법주임 임경부가 또 활약 할 모양이로 구먼.』
『그렇습니다. 오늘밤도 임경부께서 현장을 임검했읍니다.』
그래서 박태일은 행길에 서서 오늘밤 명수대 공작부인의 저택에서 가장무도회가 열리었고 도화역자가 나타나서 공작부인을 칼로 찌르고 한편 이상한 화가 이선배를 따라오던 도중이란 것을 간단히 말하였다.
『하아, 그랬던가! 글쎄 우리 서울안에는 아직 「씰크햇트」에 「모노클」을 쓴 「댄디(풍류신사)」는 없을 텐데 하고 이상스러히 생각했더니만 ──』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과학을 믿습니까?』
『나는 무엇보다도 과학을 사랑하지.』
『그러면 이선배가 ── 아니 사람의 힘으로 이와같은 두길이나 되는 돌담을 눈 깜박할 사이에 넘을 수가 있을까요?』
『못 넘는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
『그러면 이선배라는 인물은 사람이 아니고 귀신……?』
『귀신이 걸어 다니는 것을 군은 보았는가?』
『그러면 이 이상야릇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되겠읍니까?』
『그것이 즉 우리들 탐정으로서의 연구 대상이다. 음 괴상한 일이로군!』
『그러면 이 좁은 골목에서 유령처럼 사라진 이선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아, 박군도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구만, 그것을 곧 이 자리에서 대답할 자격을 가진 이는 탐정이 아니고 신인(神人)이거든. 샬록 ‧ 홈즈가 어떤 곤난한 사건에 당면했을 때, 그는 어떻게 했는가 쯤은 군도 잘 알 것이 아닌가?』
『하루 밤에 담배를 스무 갑이나 피우고 커피를 설흔 잔이나 마시고 고슴도치 처럼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렇다. 군도 오늘 밤에 집에 돌아 가서 담배 열 갑만 피워 보게. 그러면 유령 이선배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릴지도 모를 테니까…… 하옇든 이 공작부인 살해 미수 사건은 대단히 재미있는 사건이다. 대체 동서고금을 통하여 무척 무섭고 무척 흥미 있는 사건은 거의 전부가 처음에는 신비(神秘)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법이건든.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 다시 말하면 과학으로는 넘겨다 볼 수 없는 유령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것이다. 이 공작부인 살해 미수 사건만 해도 두 가지의 신비로운 점이 있다.── 한 가지는 도하역자의 신비요, 또 한가지는 이선배의 신비다. 하옇든 돌아 가서 임경부에게 보고를 해 보게. 그가 과연 어떠한 의견을 가지는가.』
『그럼 후일 또 다시 뵙겠읍니다.』
이러하여 근방 일대를 이리 저리 수색하고 있던 동료를 불러 가지고 유불란 씨의 정문 앞에서 헤어졌다.
××서에 도착하니 서린정 『중앙 ‧ 아파 ─ 트』로 김수일을 찾아 갔던 임경부 일행이 좋지 못한 안색으로 박태일 부장을 맞이 하였다.
『박군, 어떻게 되었는가?』
임경부는 박태일을 보자마자 성급히 물었다. 임경부는
『실로 상상하지 못할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읍니다.』
하고 이선배 추격전의 전말을 세세히 보고 하였다.
『음, 이 세상에 그런 일도 있을까?』
임경부는 한층 더 이 사건의 신비성과 정체모를 악마의 촉수(觸手)를 전신에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그래 유불란 군의 의견은?』
『하룻밤에 담배 열 갑만 태우면 이선배에 대한 신비의 껍질이 벗어 지리라고 말합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
『샬록 ‧ 홈즈는 하룻밤에 담배 스무 갑을 피우고 어려운 사건을 해결했답니다.』
유불란이 어느새 이 사건에 등장하였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임경부는 벌써 기분이 상했던 터이라, 화를 벌컥 내며 고함을 쳤다.
『이 바보야! 샬록 ‧ 홈즈는 소설속의 인물이다! 공작부인 살해 미수 사건은 현실 문제가 아닌가!』
『네, 저는 다만 유불란 씨의 말을 전했을 뿐입니다.』
박태일 부장은 일상 임경부가 민가 탐정 유불란 씨에게 질투와 시기와 마음을 품고 잘 잘못은 하옇든 그를 항상 힐란하고자 하는 임경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속으로는 픽하고 웃으면서도 태도만은 공손하였다.
그 때 한 사람의 경찰이 또 경찰부 감정과(鑑定課)에 보냈던 단도 ── 공작부인을 찌른 흉기가 감정되었다는 보고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 보고서에 의하면 단도에는 아무런 지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문을 인멸(湮滅)시킬 셈으로 범인은 처음부터 무슨 헝겊 같은 것으로 단도를 싸 쥐었다고 한다.
임경부는 보고서를 구겨 쥔 채 한참 동안 지긋이 눈을 감고 잠자코 앉았더니 돌연 의자에게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하옇든 이상한 일이다. 이선배와 김수일이 둘 다 가짜 화가다! 그리고 이선배가 자취를 감춘 태평동 골목과 김수일이 유숙하고 있는 서린정 「중앙 ‧ 아파 ─ 트」는 말하자면 엎드리면 코가 닿으리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것이 과연 우연한 일치일까?』
하고 부르짖었다.
- 마인(魔人)의 명분서(命分書)
공작부인이 가장 화려하게 꾸며 놓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가장무도회는 저 벙글벙글 웃으면서 돌아가는 무기미한 도화역자가 던진 한 자루의 비수로 말미암아 공포의 수라장으로 변하였으나 다행히도 공작부인이 받은 어깨의 상처는 예상외로 극히 가벼워서 오월 초열흘에 거행될 결혼식에는 추호도 지장이 없으리만치 회복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늙은 신랑 백영호 씨의 남다른 두터운 간호의 보람도 많았다.
그는 거의 매일 젊은 약혼자 옆을 떠날 줄 몰랐다.
『은몽 씨!』
그는 어떤 날 오후, 공작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춘색이 파랗게 어린 한강 일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불렀다.
『왜 그러세요?』
긴 속눈섭 밑에 숨었던 공작부인의 까만 눈동자가 반 만큼 웃으면서 흑요석(黑耀石)처럼 백영호 씨를 쳐다보았다.
『한 주일 후면 은몽씨는 나의 아내!』
감개무량한 듯 그는 다시 찾아온 자기의 청춘을 혀끝으로 대굴대굴 굴리면서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공작부인의 얼굴에서 그 순간 부처처럼 표정이 사라졌다.
『은몽 씨는 이 늙은이의 아내란 말에 아무런 불쾌도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런 말은…… 그런 말씀은 이후 다시는 저에게 들려 주시지 마시고 물어주시지도 마세요.』
거의 애원하듯이 굴러 나오는 공작부인의 목소리였다.
『아름답지 못한 질투라고 생각하시지 마시오 ── 저번 달 은몽 씨가 경찰관에게 한 증언 ── 김수일이란 화가와 연애 관계가 있었다는 말을 이 늙은이는 어떻게 생각해야만 될는지……』
공작부인은 잠시 동안에 대답이 없다가 간신히 입을 연다.
『김수일 씨는 나의 감정의 연인, 그리고 백영호 씨는 나의 이성의 연인 ……』
그 순간 백영호 씨는 한편 젊은이 처럼 모욕을 느끼었으나 다음 순간,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그의 핏기 없는 피부와 그의 힛득힛득 흰 머리털이 그의 귀밑에서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다.
『잘 알아 들었읍니다. 나는 은몽 씨의 말에 대하여 분노를 못 느끼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읍니다.』
『걱정 마세요. 연정의 대상도 가지각색……나는 벌써 꿈을 사랑하는 어린 소녀는 아니예요.』
『은몽 씨!』
하고 그때 백영호 씨는 힘있게 불렀다.
『…………?』
『만일 내가 가진 백만 원이란 재산이 이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소유로 변하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은몽 씨는 역시 이 늙은 백영호와 결혼해 주시겠읍니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공작부인의 어조는 약간 높았다.
『은몽 씨! 고맙소! 이 늙은이가 만일 시인이었던들 이 고귀한 순간을 이대로 보내리까 ──』
백영호 씨는 불현듯 공작부인의 어깨를 껴안았다.
『이와 같은 의사를 언제가 한번은 은몽 씨에게 조용히 표시해 보리라고 기회만 있으면 입을 열었으나 도무지 말문이 꽉 막혀서……사실은 지금 경비난으로 폐교의 운명에 임한 혜성전문학교(惠星專門學校)을 위하여 칠십 만원을 제공할 셈으로 교장 황세민(黃世民) 씨와 누차 교섭을……』
감격에 찬 백영호 씨의 목소리를 공작부인은 들은 체 만체하고 머엉하니 서 있더니 어깨에 얹은 백영호 씨의 손을 슬그머니 내려 놓으면서
『저기 남수 씨가 오십니다.』
하고 정문을 가리키었다.
『응, 그러면 나는 이 길로 황교장을 찾아봐야 되겠소.』
백영호 씨의 가슴을 누르고 있던 우울 ── 황금의 힘이 공작부인을 황홀케 하지나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던 우울을 일시에 떨쳐버린듯 그는 발걸음도 가볍게 공작부인의 저택을 나섰다.
백영호 씨가 나간 뒤로 공작부인의 방을 들어서는 탐정소설가 백남수는
『무슨 소식을 전했기로 아버지가 저렇게 희색이 만면해서……』
하고 의아의 눈썹을 모으면서 표정없는 공작부인의 백옥같은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회사업을 하신답니다. 칠십만 원의 제공을 ……』
『칠십만 원?』
태연스럽게 말하는 공작부인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한마디에 백남수는 순간 얼굴이 핼쓱하게 핏기를 잃어버렸다.
『뭘 그리 놀라세요? 아버지께서 훌륭한 사회사업을 하신다는데……』
『그러나 그게 사실입니까? 칠십만 원을…… 그래 무슨 사업을 하신답디까?』
『해성전문학교를 살리신다고요.』
『해성전문학교를? 아버지가? 아니, 저 백영호 씨가……』
남수가 이처럼 놀라는 것은 결코 이유 없는 일은 아니었다.
팔 년 전 어디론가 행방불명이 된 형 ── 백남철(白南鐵)이 작년 가을 실종선고(失踪宣告)를 받은 이상, 당연히 상속권은 남수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속재산의 십분지 칠이 눈깜짝할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사실도 사실이려니와 그보다도 한층 더 남수를 놀라게 한 것은 아버지 백영호 씨의 사람된 품이었다.
『아버지 같은 위인이 사회사업을 하다니? 칠십 만원을……』
『왜 아버지는 사회사업을 하면 안 돼요?』
공작부인은 의미있는 웃음을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안되죠.』
『어째서?』
『음 ──』
남수는 터져 나오려는 말을 목구멍에서 꽉 막으려는 듯 혀를 깨물었다.
『백영호 씨가 공작부인의 미모에 눈이 어두어져서 공작부인을 위하여 적지 않게 산재(散財)한 것은 말하자면 예외의 일이지요.』
『예외의 일이라니오?』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써 보았다는 말입니다. 현재 은몽 씨가 쓰고 있는 이 집값만 해도 오만 원 ── 백영호 씨가 오만 원을 허어! 게다가 이제 와서 칠십만 원을 교육사업에 던진다. 옛적부터 하는 말이 구두쇠가 돈 쓰는 법을 알게 되면 황천에서 호출장이 온 것이라고 하더니만 행복스러운 결혼식을 한 주일 앞두고 염라대왕이 백영호 씨를 황천으로 모셔 갈 모양이 아닌가……』
『호호호! 남수 씨도 재미있는 말을 제법 잘 하셔.』
공작부인은 유쾌한 듯이 웃었다.
그러나 이 남수의 농담 섞인 말이 한 개의 무서운 현실로서 독자 제씨의 눈앞에 나타날 것도 멀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그렇고, 경찰 당국에서는 아직 저 김수일 씨를 범인이라고 인정하는가요?』
하고 공작부인은 말머리를 돌린다.
남수는 잠시동안 묵묵히 앉아 있다가.
『당국뿐만 아니라 나 역시 김수일이란 인물을 의심하고 있어요. 첫째로 그가 무슨 이유로 돌연 「중앙 ‧ 아파 ─ 트」에서 자취를 감추었을까요?』
『그건 지난번에도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영원히 나의 눈 앞으로 부터 떠날 셈이겠지요.」
김수일을 변명하고자 하는 공작부인의 태도는 어느 듯 백남수의 탐정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면 김수일이란 인물은 어째서 은몽 씨와 만날때만 「중앙 ‧ 아파 ─트」를 사용했을까요 ── 그의 본 주소는 어디에요? ──』
『뭐요? 저와 만날 때만 「중앙 ‧아파 ─ 트」를 사용했어요?』
공작부인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그럴리가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당국이 조사한 결과 김수일이란 이름을 가진 화가는 서울에는 없답니다.』
본적이 평양부 남문정이라는 것도 거짓말이랍니다.』
공작부인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었다.
『그러니 은몽 씨는 김수일이란 가짜 화가 ── 가짜 신사와 교제를 하여온 것이지요.』
『그럴리가 있어요?』
『그런걸 어떻거우. 대체 그이와는 언제부터 교제를 하였소?』
공작부인은 잠깐 주저하는 모양이더니 이미 경찰에도 말한 바라 숨길 것 없다는 듯이 작년가을 ×××개인전람회에서 알게 되어 단 한 번 본 그이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 쏠려 그후 몇 번 그가 거주하는 「중앙 ‧ 아파 ─트」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흥!』
하고 남수는 한번 코웃음을 치고 나서
『그래 무도회 날 밤, 이선배란 작자가 무슨 말을 가지고 왔읍디까?』
『김수일 씨를 생각해서 이 결혼을 그만두라고요. 그래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절을 했더니만 그럼 이후에 다시 수일 씨를 찾지말라고 ──』
『그래 은몽 씨는 그날 밤 은몽 씨를 해치려고 한 그 도화역자가 결코 그 김수일이란 사람은 아니란 말씀이지요?』
『그이가 그렇게 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공작부인은 머리를 숙으렸다가 다시 들면서 「테이블」 설합에서 한장의 종이를 꺼내어 「펜」을 들었다.
김수일 씨! 지금 경찰당국의 무서운 혐의는 오직 수일 씨에게로 쏠리어가고 있읍니다. 나는 수일 씨를 어디까지나 믿고 있읍니다. 수일 씨가 저를 해한 저 도화역자의 정체라고는 꿈에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일 씨는 무슨 이유로 자취를 감추었읍니까? 어째서 저와 만날 때만 「중앙 ‧ 아파 ─ 트」를 사용했읍니까? 한시바삐 나타나서 이러한 의문을 풀고, 받고 있는 무서운 혐의에서 벗어 나십시오.
- 주은몽
『남수 씨 수고스럽지만 이 글을 신문에다 광고해 주세요. 무슨 소식이 있을지 모르니까.』
남수는 그것을 받아들고 읽더니
『생각 잘 하셨읍니다. 그러면 지금 곧 돌아가는 길에 ××일보사에 들르겠읍니다.』
하고 황급히 명수대 저택을 나섰다.
그 때 공작부인과 헤어진 백영호 씨는 효자동 해성전문학교 교장실에서 황세민 교장과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필자는 여기서 황세민 씨에 관한 세평을 간단히 소개할 필요을 느낀다. 그것은 이 한 편의 이야기에 있어서 표면에는 그리 흔히 나타나지 않지만 맨 나중에 이르러 그는 실로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십이 넘은 황세민 교장은 십 년 전, 삼백만 원이란 거액의 돈을 품고 아메리카로 부터 표현히 귀국한 독신자(獨身者)다. 그 후 그는 고아원, ×××중학교, ××도서관, 혜성전문학교 ── 이와 같이 사재를 모두 교육사업에 바친 독실한 사회사업가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금액이 어디서 들어 왔으며 그가 어떠한 과거를 밟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특히 영어와 중국 말에 능통하였으나 남달리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것은 하여간 지금 황교장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백영호 씨의 모양은, 마치 고양이 앞에 쥐와도 같았다.
『혜성을 위하여 칠십 만원을 제공할 결심을 했읍니다. 그러나 공식 발표와 모든 수속은 결혼식 후로 밀어 주시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자네의 의향만 그렇다면 그떻게 해도 무방하지.』
『고맙습니다. 그러면 후일 다시……』
걸상에서 일어 서는 백영호 씨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격이 넘쳐 흘렀다.
『고맙기야 이 편이 더 한층 고맙지. 하옇든 우리들은 손과 손을 마주 잡고 미미하나마 사회를 위하여……』
황교장은 백영호 씨의 손을 붙잡고 힘있게 서너 번 흔들었다.
교문을 나서는 백영호 씨의 가벼운 발걸음을 황교장은 커 ─ 텐을 열어 젖히고 머엉하니 바라보았다.
이리하여 한 주일 후면 공작부인과 백영호 씨의 결혼식을 부민관에서 거행하게까지 결정되고 무려 수천 장의 결혼 청첩장이 각계 명사들에게 발송된 어떤 날이다. 실로 뜻하지 않았던 악마의 무서운 명령이 청천벽력처럼 떨어졌던 것이다.
여기는 다방 백구 ── 자욱한 연기 속에서 손님들은 차를 마시며 달콤한 레 ─ 코드 음악에 귀를 기우리고 있었다.
저편 파초 나무 그늘 밑 ── 전등불이 어슴프레 흐르는 구석 복스에는 아까부터 누구를 기다리는지, 연방 팔뚝 시계를 들여다 보는 한 사람의 청년 신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저 백영호 씨의 딸 정란의 약혼자인 의학박사 문학수 그 사람이다.
양미간을 약간 찌프린 그의 얼굴에는 무엇인가 헤아릴 수 없는 수심과 초조의 빛이 뭉게뭉게 떠돌고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