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의 철학과 같은 행위의 철학이 그 반을 무시할 정도로 어떻게 호모 파베르(工作人:Homo Faber)의 심리학을 훼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작업에 시간의 체계를 부여하여 자발적이고 규칙화된 지속을 만드는 시간적 부분을 어떻게 훼손할 수 있었는가?
-가스똥 바슐라르《대지와 휴식의 몽상》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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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내용을 갑작스럽게 떠 올렸고 문장을 확인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늘 저지르는 실수들 가령, ‘자신은 절대로 그러하지 않은데 남들은 어떻다’ 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남에 대해 스스로 어리석은 평가일지도 모를 평가를 내리는 행위에 대한 어떤 연상 작용이었던 거 같습니다. 도무지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공간적 이해와 어떻게 대비를 시켜 볼 수 있을지도 애매한 바슐라르의 몽환적 철학의 사유를 기억해냈는지…
오히려 바슐라르가 인용한 베르그숑의 ‘지속의 변증법’이나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대한 시론’을 떠 올렸다면 더 적절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시간운동의 연속성 이란 틀에 놓고 보았을 때,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일들은 결과적으로 습관화된 개인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위일 뿐이란 사실로 놓고 보아서도 그랬어야만 합니다.
어떤 현상들이 발생하기 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연상 작용에 의해, 미리 발생할 일이나 문제에 대해 찰나의 순간 직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들이 대부분 그대로 실현되다는 건, 대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그의 말이나 행동방식 등) 직감적으로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발달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며칠 전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리란 것은 그가 하는 말들로 미루어 유추해내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에 대한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하게 되고 만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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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많이 찹니다.
12월 중순으로 접어 든 지금, 창문을 뒤흔들고 불어대는 바람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채 한 시간도 못 잔 잠을 깨운 바람을 탓하기엔 맑아진 머릿속이 용납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이런 날, 답답하고 날 선 글을 쓴다면 많은 이들의 가슴은 일순 후련할지 모르겠으나 도리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을 이겨낼 기운조차 빼앗고 말 거 같습니다. 시원한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먹는 이야기, 그것도 추위에 언 가슴을 뜨끈하게 덥혀줄 따끈한 국물까지도 정겨운 이야기나 풀어놓겠습니다. 거기에 여기 지금 흐르는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 노래를 곁들여 말입니다.
명태의 아가미만을 모아 깍두기나 무를 나박하게 썰어 담는 김치가 있습니다.
찬바람이 요란스럽게 창을 흔들어대서인지 소주 한 잔 생각이 났습니다. 술을 챙기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명태아가미로 담근 서더리김치가 있군요. 서더리김치는 강원도 영동권의 별미입니다. 함경도지방에서도 서더리김치를 먹는다고 하는데, 같은 영동지방의 지형적 특성과 그만큼 싱싱한 명태들이 흔하였기에 발달한 음식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서더리김치는 조나 쌀로 밥을 지어 버무리는 식해와 비슷합니다만, 밥이 들어가지 않으니 같은 삭힌 음식이라도 식해(食醢)라고 하지 않습니다. 식해는 밥이 들어간 삭힌 음식을 이르는 말로 대표적인 것이 가자미와 명태로 담근 식해가 있지요.
시원하면서도 적당히 비린 듯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더운밥과 먹거나, 어촌마을에서는 소주 한 잔을 하면서도 먼저 손이 가는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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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로야 프랑스적 사유가 문맥 사이에 철철 넘치는 바슐라르의 철학이나, 면밀한 분석을 통해 과정철학이라는 철학사조를 정교하게 발전시킨 앙리 베르그송의, 정지보다 운동·변화·진화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던 문체의 대가를 따라가기는 어려운 법이란 걸 아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하기야 베르그송은 철학을 대중적인 문학으로 발전시킨 1927년에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문체의 대가입니다. 프랑스인들의 철학적 감성이 풍부한 어휘구사들이 베르그송이나 바슐라르의 영향이 아니겠느냐 싶은 대목이기도 하지요.
그러하니 음식 이야기 하나, 맛집 이야기 하나라도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삶의 질박한 감성들을 오롯이 담아내는 문학으로 표현을 해 낸다면 정말 멋진 일 아니겠는지요. ‘맛이 죽여준다.’ 라던가 ‘끝내주게 맛있다.’ 란 말이 난무하는 요리와 맛집 이야기들로는 이젠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갖기 어려우니 말씀입니다.
겨울 바다를 만나면 여름과는 다른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남쪽에 계신 분들이야 바닷물도 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바위에 부딪친 물보라가 바위에 얼어붙어 있는 걸 종종 만나게 되는 곳이 이곳 동해안입니다. 그 위로 파도는 바위를 부서트리기라도 하려는지 세차게 밀려들고…
그런 바다에서 나오는 물곰이나 도치, 대구, 명태, 도루묵과 같은 찌개로도 좋은 생선들이 맛이 좋은 때도 요즘입니다. 복어도 제철인데 어찌 된 일인지 예년만큼 잡히지 않다더군요. 시원한 복지리 국물 한 수저 떠 넣으면 속이 확 풀리는데 말입니다. 두터운 살코기는 고추냉이 푼 간장에 찍어 먹으면 겨울철 냉한 기운이 일순간에 빠져나가고 오장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누구나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생태지리와 생태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생태가 없다면 동태도 괜찮습니다. 다만 동태는 소금물에 담가 충분히 해동시켜 이용해야합니다. 대부분 식당에서 동태를 소금물로 해동을 시켜 생태라고 말한다는 건 이젠 비밀도 아니지요. 얼룩무늬가 그대로 살아있는 생태로 조리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생태와 소금물에 해동한 동태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시더군요.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생태는 지방태로 불리는 근해에서 잡은 명태로 얼음을 채워 이동시켜 얼룩무늬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껍질의 무늬는 사라졌어도 내장도 싱싱하기 때문에 정소나 애 모두 그대로 이용해서 맑은탕으로 끓여도 좋습니다. 물론 동태로도 맑은탕을 끓여도 괜찮습니다. 동태는 베링해와 같은 먼 바다에서 원양선이 현장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며 곧장 급랭을 시켜 해동만 잘한다면 생태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생태지리(생태탕)의 재료
손질한 명태 1 마리(머리와 꼬리도 그대로 넣습니다.)
※정소(수컷)와 애, 알(암컷)은 깨끗하게 손질해 모두 함께 이용합니다.
무 약간(5mm 두께로 6절 크기로 썬 무 12~20조각 가량)
두부 1cm 두께로 썰은 것 2~3 조각
대파 1 뿌리
마늘 찧은 거(마늘 쪽 세 개 분량)
매운 고추 1개
다시다 약간(조미료 사용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금(간을 맞추는 용도로는 3년 이상 묵힌 천일염을 사용합니다.)
고춧가루 큰 수저로 가득히 1개(매운탕에만 사용하는데 식성에 따라 가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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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가 깊지 않은 냄비에 무를 먼저 깔고 준비된 재료를 넣습니다. 밥상에 올릴 수 있는 이동식 가스렌지에 냄비를 올리고 물을 부어줍니다. 불을 켜고 끓기 시작하면 약간만 불을 조절합니다. 너무 불을 낮게 조절하면 살코기가 완전히 으스러지게 됩니다. 조금 강한 불이 짧은 시간에 음식을 조리하게 하며 살이 부서지는 걸 막아줍니다.
무가 다 익으면 먹을 수 있는데 이때 불을 최소로 조절하고 몸통과 고리부터 떠먹으면 머리는 나중에 먹을 수 있습니다. 애와 정소는 건저 잘게 으깨 국물에 다시 넣으면 구수한 맛이 더 깊어지는데 느끼하다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그러나 맛을 들이면 이렇게 먹는 걸 즐기게 됩니다. 시장에서 곤이라고 해서 수컷의 정소를 따로 판매하는데 이걸 조금 구입해서 함께 이용하시면 더 좋습니다. 이 경우엔 암컷을 이용했을 경우에도 더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고춧가루를 처음부터 넣고 끓이면 생태탕이 되지만 맑은탕으로 먹다 나중에 넣어 두 가지 맛을 동시에 즐길 수도 있습니다. 생태 한 마리는 2~3인분 됩니다. 아주 큰 생태라야 4명이 드실 수 있습니다. 가족들의 식습관을 고려해 준비하면 되겠군요. 소주를 마시며 술안주로 즐긴다면 약간 부족한 듯 하게 마련하는 것도 불필요한 음식물 낭비를 막는 방법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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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감동은 각기 다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특정적인 음식이 갑작스럽게 먹고 싶어지지요. 요즘은 그걸 “땡긴다”고 하던데요. ‘당긴다.’가 맞는 말입니다. “~구미가 당긴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이렇게 무언가 먹고 싶은 음식이 갑작스럽게 생각나면 반드시 그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 몸이 필요한 영양소가 바로 그 음식에 있다는 걸 아는 몸이 미리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색상에 분노가 더 증폭되거나 소진되는 형상과 마찬가지로, 영양소들이 지닌 맛의 특성을 기억하는 뇌가 미각을 자극하는 이유를 구체화시킨다면, 그 영양소를 섭취하지 않으면 몸이 피로를 느끼거나 원활하게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가령 오늘같이 추운 날 횟감을 제쳐두고 국물이 넉넉한 생태지리나 생태탕이 먹고 싶다면 몸이 더 많은 수분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수분이 영양소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양소들을 고루 이동시키고 신진대사에 필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겨울바다를 보고 싶다.’ 란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난 사람의 심리상태가, 강렬하게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무한의 관점에서 말하는 허무감을 치유하기 위한 것과 같은 이치라 할까요. 비현실적인 것들까지도 용해시켜 이성적이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오묘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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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의 박사학위 논문인 《시간과 자유 의지:의식의 직접 자료에 대한 소론 Essai sur les donn?es imm?diates de la conscience(1889)》에서, 지속 또는 실제 시간개념을 확립함으로써 과학이 사용해왔던 시간개념인 시계로 측정할 수 있는 공간화한 시간개념을 거부하려 했습니다. 또한 인간이 내적 자아에 대해 체험한 내용을 스스로 분석해 심리적 사실을 구체화 한 것과 통념적인 사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특히 심리적 사실을 계양화해서 계산함으로써 이를 왜곡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요. 특히 주목할 대목은 자극의 강도와 이에 상응하는 감각의 강도 사이엔 계산할 수 있는 관계를 확립했다고 주장하는 페히너의 법칙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맛있다’란 표현을 이렇게 계량화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페히너의 법칙이 맞다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맛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바슐라르와 베르그송의 책 몇 권 정도는 읽어두면 좋을 거 같습니다. 조금 짠듯하게 먹는 사람에게 싱겁게 먹어야 한다고 간권하는 건 그에게 맛을 버리고 영양만으로 음식을 먹으라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이 나쁘다며 정제염을 먹는 이들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으며, 싱겁게 먹으면 좋다고 하는 이들이 수입산 통조림 햄을 먹는 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요. 너무 지나치게 싱겁게 먹는 사람들에게서 ‘각기병’이 나타나는 현상을 도 어떻게 설명을 하겠습니까.
소금을 먹되 화학식으로 만든 소금이나 간수가 덜 빠진 소금을 먹지 않으면 됩니다. 천일염을 3년 이상 간수가 빠지게 한 뒤 음식에 사용하면 가장 현명한 소금섭취방법입니다. 알맞은 간맞춤만큼 맛을 제대로 살리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 글을 새벽에 등록되게 설정을 해 놓았는데 날짜를 잘못 설정한 탓에 등록되지 않았었습니다.
기껏 맑아진 머리 자랑 하며 글을 써 놓고 거꾸로 등록일자 설정을 며칠 뒤로 하는 바보짓을 하고 말았군요. 이른 새벽이 아닌 점심시간에 이 글을 만나시니 오늘 점심은 생태탕 생각들 간절하시겠습니다.
그러게 사람은 늘 겸손해야 하고, 늘 조심스러워야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