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도대체 이 사람들 어디 있는 거야?" 17일 8월 정기산행으로 찾은 북한산 원효봉 근처 북문 아래 효자비 나들목까지 1km 떨어진 곳에서 북한산 둘레길 합쳐지는 곳까지 800m 구간을 두세 차례 왔다갔다 했다. 나 혼자만!
장면 2. 북한산성 입구에서 버스 내려 땡볕 쏟아지는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 올라간다. 왕복 4차선 도로 건너편 등산용품점에서 누군가가 길 건너편의 앞선 일행을 향해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열심이시네'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아 바수구리 형님이시구나. 늘 그렇듯 새벽에 이곳을 타고 오후 2시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가하시던 참에 우리 일행을 응원하기 위해서 짠! 나타나셨다. 아니, 이 말은 어폐가 있다. 오전 10시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 앞에서 집결했을 때 형님이 나타난다는 문자를 받고 이곳에서 기다리실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땡볕에 걷다 보니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톰 형이 특유의 널부러진 자세로 벤치에 앉아 있다가 한참 뒤 몸을 일으켰다. 구파발역에서 집결해 8772번 버스로 이동한 7명에, 먼저 와 있던 아톰 형, 뒤이은 버스로 당도한 희망과용기 회장 형과 꿈푸리까지 모두 10명이 바수구리 형님의 환송을 받게 됐다.
큰 형님은 얼음 커피와 얼음 식혜를 다섯 개씩에다 벌써부터 더워지는 몸을 식히라고 아이스크림 바 10여개를 사주셨다. 아이스크림 바가 꿀맛이었다.
산성 입구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셨고, 본인을 넣어 셀피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아뿔싸, 한 사람을 지워버리셨다. 너무 자연스럽게 제외돼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셨다.
장면 3. 무조건 기다렸다. 오전 10시 40분쯤 산성입구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출발했는데 산성입구 근처 표지판 앞에서 갑론을박부터 벌였다. 숲 그늘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길을 걷다 나중에 원효봉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길을 택할 것인가? 바로 계단으로 올라붙는 원효암 길을 택할 것이냐였다.
또 하나 쟁점 사안은 우리가 가려고 하는 효자리 계곡 탕의 물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바수구리 형님은 물이 말랐다고 했는데 회장은 끝까지 물이 있을지 모른다고 미련을 버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영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숨구멍을 비롯해 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열린 것 같다고. 원효봉까지 1.8km인데 서너 차례 쉬었나 보다. 난 두 번째 쉬고 원효암을 지나 곧바로 전망 포인트까지 갔다. 산행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나 오전 11시 40분이었다. 한참을 쉬었더니 꿈푸리와 오랜 만에 정기산행에 나선 멍게 전 총무가 나타났다. 낮 12시 전후였다.
이어 원효봉에 올라 한참을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렸던 것 같다. 회장이 팥빙수 둘을 준비해 와 다섯씩 나눠 먹었다. 어제밤 형수가 동빙고동 가서 사와 싸준 것이라 그럴까, 이가 시려 넘기기가 힘들었지만 정말 달달했다. 역시 간만에 산행에 합류, 무려 아침 7시 30분 공주발 고속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달려온 법상이 내가 먹던 일회용 숟가락으로 퍼 먹고 내게 다시 퍼 먹으라고 해 깜짝 놀랐다. 사실 원효봉 위에서야 그의 파르르 깎아지른 머리를 보고, 이 더위에 웬 스님이 올라오시나 했는데 알고 보니 법상이었다. 그런데 팥빙수 퍼먹는 그의 몸집이며 하는 짓을 보니 금복주 병 그림의 그이, 달마 도사를 떠올리게 했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가지 않고 계룡산 자락을 떠나 북쪽 서울 이곳에 왔을까? 선후배들 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답이 되나?
난 산행 틈틈이 눌러둔 궁금증을 살포시 열어 보였다. 아직도 공부할 게 남아 있느냐고? 그랬더니 자기도 계룡산에서 공부하면 모시는 신령님이 이제 그만하라고 할줄 알았는데 이제는 제주에 영험한 곳이 있어 오는 21일경 땅 보러 간다고 했다. 음, 부동산 공부를 했군, 싶었다.
일행이 30분쯤 정상 플래카드 펼침 사진을 찍은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시였다. 김밥 10개를 샀는데 알탕하며 먹자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김밥의 절반을 버리게 만든 패착이었다.
아무튼 다음은 인수봉과 백운대, 노적봉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이들 봉우리를 드러낸 반면, 온갖 현란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준 남정네는 정작 봉우리들을 살짝 가려지게 촬영한 점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북문으로 내려서 숲길로 다시 접어들었는데 회장과 대장인 내가 방심한 탓일까? 후미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아 그 사단이 벌어졌다. 피플러버 고문이 허기진다며 뭘 먹겠다고 한 것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감자바우 형님이 수술 여파로 호흡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 멍게가 곁에 있어 맡기고, 조금이라도 빨리 알탕에 뛰어들 욕심에 발길을 서둘렀던 것이었다. 바수구리 형님이 친절하게 알려주셨는데 귀담아 듣지 않은 탓도 컸다.
효자비 표지판으로부터 800m쯤 내려와 둘레길 합쳐진 곳에 도착하니 2시가 거진 돼 있었다.
그 때부터 3시 30분쯤까지 무려 90분을 일행은 혼돈, 혼돈의 연속이었다. 우리 회원들은 평소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알리는 데 익숙하지 않고 너럭바위, 계곡 안쪽 같은 특정되지 않는 정보만을 얘기하는 버릇이 있고,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다 한몫 더하는 것이 누구나 결정하고 용인한다는 것이다. 산행과 관련해서는 일단 회장과 대장의 판단을 믿고 따라주는 것이 좋은데 북한산처럼 편안한 산에서는 마음이 흐트러지기 쉬운 데다 대충대충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는 것이다.
해서 후미에 있는 이들은 정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앞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이동할 것인지를 알려주어야 전체 일행이 혼돈을 피할 수 있다.
지금에야 뒤늦게 알았는데 중간에 후미를 찾으려고 올라왔던 회장은 다시 내려가 청담골 알탕을 혼자만 즐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회장은 한 팀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고 폭포 물줄기는 미미했지만 다 함께 왔으면 먹고 쉬고 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하는데 여러 모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튼 모두들 교훈으로 되새겼으면 한다. 물론 회장과 대장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며 이 점에서 소홀한 점이 있었다는 얘기를 회장도 내 대신 했는데 나도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알탕을 할만한 여건이 아니란 점을 파악했을 때 빨리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하고 이를 전파했어야 했는데 더위 탓인지, 짜증 탓인지 능동적으로 해내지 못했던 점을 반성한다.
여튼 연신내역으로 이동, 오후 5시 30분부터 호프집에서 애프터를 가졌다. 아무래도 계룡산에서 방금 하산하신 법상의 현란한 얘기가 테이블 위에서 주로 오갔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1주년이 마침 오늘(18일)인데 그는 당시 3국 정상이 합의한 내용 가운데 알려지지 않은 밀약이 있었다며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운동권 인사 A가 B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겼다는 얘기도 흥미로웠다. 아울러 앞에 애기한 제주도 땅 보러가는 사연도 관심을 끌었다.
그나저나 가족과의 약속이 있어 자리를 뜬 회장이 일행에게 예고한 대로 산악회 창립 20주년 행사에 대해 처서(22일)가 지난 뒤 공지할 생각이다. 새로운 장소가 떠올라 접촉해보고 그 결과를 말씀드릴 예정이다. 왜 처서가 지난 뒤? 그야 소슬한 바람이 그때 쯤 일지 않을까 싶어서다.
멀리 계룡산 자락을 아침 일찍 출발해 산행과 애프터에 함께 하고 밤 9시 공주행 버스로 귀환하느라 힘들었을 법상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간만에 함께 한 멍게 전 총무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첫댓글 빠른 산행기, 잘 읽었고, 감사..무더워 산행 힘들었지만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몸을 한번 리셋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