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목원으로 떠나온 뒤에 어머니는 눈에 띄게 늙어갔다. 어머니는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긴장을 잃어갔다. 어머니는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않았고,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밤중이건 새벽이건, 시간을 가리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 얘, 자니? 잠이 와? 나는 잠이 안 온다.
- 엄마, 지금 한 시야. 전화 끊고 주무세요.
- 잠이 안 오는데 어떻게 자니? 너네 아버지는 잘까? 그 안에서도 잠이 올까?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머리를 꺼냈다. 잠이 안 온다는 것이 전화를 걸어오는 사유였다. 아버지가 출감하면 함께 살지 않겠다는 결정도 새벽의 난데없는 전화로 알렸다.
- 얘, 너네 아버지 나오면, 그만 갈라서야겠어. 그 인간이 그 안에 있으니까, 안 봐서 서로 편하잖아. 그걸 확실히 알았어.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안 봐서 서로 편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증오하거나 혐오한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우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세상의 후미진 밑바닥을 긁어서 돈을 벌어오던 아버지의 삶이 어머니에게 주는 하중으로부터 얼마쯤은 벗어날 수 있어서 가볍고 편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출감한 후에도 수감되어 있는 동안의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출감해서 법률적 형기가 끝난 후에도 격리의 형식으로 심리적 형기를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의 이해가 틀리지 않을 것이다.
■ 작가_ 김훈 – 1948년 서울애서 태어났으며, 오랫동안 신문기자를 지냈음. 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선택과 옹호』, 『풍경과 상처』, 여행산문집 『자전거 여행』 등이 있음.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