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김문억
머언 수평에서 누가 반짝거리며 오고 있다
한 장씩 거듭해서 제 몸을 벗겨내다가
못 떨친 욕망을 틀어 물보라로 오고 있다
슬픈 날개를 달고 임이 오시나 보다
날 수 없는 날개를 달고 물 위를 걸어오나 보다
오다가 무슨 사연으로 되돌아 걸어갔나 보다
밀물과 썰물로 교차하는 이 악장이
침몰한 달빛을 끌고 다니며 깎고 있다
만월을 다 부수어서 모래알로 쌓고 있다.
내가 끌고 온 바다/김문억
물기 없는 바람만 바삭거리는 이 겨울에
맛없고 심심했던 까닭모를 황량함이
불현 듯 바다를 끌어올려 파도 속에 눕는 나
텅 비었던 장 안 가득 차오르는 한바다를
번쩍 들어 올려 갯비린내를 마신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바다 물이 차오른다
짓눌리어 옥죄었던 숨을 크게 쉬어 본다
가열찬 물소리가 혈관을 타고 올라올 때
일어선 근육들이 엉겨 줄다리기 하는 바다
힘차게 으르렁대며 뛰어오는 바다 속으로
곤고한 내 피곤이 지워지며 누울 때
파도를 흉내 내며 나는 깃을 치고 있었네.
섬/김문억
완강한 시간 속으로 난파한 내 사랑은
물결에 유배되어 섬으로 떠 있습니다
파도는 갈퀴를 세워 뱃길을 다 지웠습니다
부도난 백기를 들고 뭍에서 나왔습니다
떨군 고개 위로 낮별이 찔려오던 그 날
물길은 하늘에 올라 상한 가슴 울었습니다
향수로 앉아 있기엔 의지가 없습니다
연안으로 달려오다가 우뚝 서서 망연자실 우뚝 서서
길 없는 물 위에 떠서 물장구만 쳤습니다
밧줄을 풀지 않는 그대 뱃전으로
파도는 엎어져서 애터지게 때리지만
서투른 사랑공부는 옷을 벗지 못 합니다.
김문억 연가 집<너 어디 있니 지금1991박우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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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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