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공선옥의 글인데,
2002년 월간지 말 신년호에 실린 소설같은 거다.
좀 길수도 있는데 모은 모아 두 공주 생각하며 한번 읽어봐라.
"약도 안사믄, 그러믄 뭐여. 나 잡아갈라고?"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① 약장수 지복덕 할매의 겨우살이
공선옥 소설가
언젠가 소설가 공선옥이 그랬다.
없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품위'를 찾아
소설로 말하고 싶다고.
공선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노잣돈 몇 푼 쥐어주지도 못하고선 『말』지가 등 떠밀었다.
길을 나서라고.
설핏하니 동짓달 짧은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이라는 노래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그런 노래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할매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걷고 또 걷는다.
차를 타지 왜 걷느냐 물으면, 무식한 물음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
걸어야 물건을 팔 수 있는 할매는 행상이다.
도붓짐 등에 메고 구름에 달가듯이 길을 가는 할매의 성은 지가요,
이름은 복덕.
몇 살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임술생 개띠란다.
"내 이름을 나도 잊어불고 있었네.
가만 있거라, 그러니께 성이 지가여, 이름이 복덕이구.
지복에 살고 지덕에 죽으라는 이름이지 뭐.
그런디 뭣 할라고 넘의 이름을 묻소?
나 잡아갈라고?"
땅은 강원도땅, 때는 세한(歲寒)이다.
가리왕산 정상쪽엔 오전나절이 지나도록 하얗게 핀 서리꽃이
지지 않았다.
할매의 여정을 좇는 길은 멀고 아득하다.
중국의 현대 작가 위화가 쓴 소설 중에
『18세에 집을 떠나 먼길을 가다』라는 작품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18 세에 길을 떠났지만
나는 40 이 돼서야 길을 떠난다.
임술생이라니 할매 나이 올해 80.
서른셋에 집을 떠나 줄곧 천지사방을 돌아다녔다 한다.
황간으로 해서, 영동으로 해서, 청도로 해서, 밀양으로 해서….
이번 여정은 괴산으로 해서 금산으로 해서 제천으로 해서 정선.
삼척땅에 들어선 지는 이틀째란다.
깊고 깊은 강원도땅이다.
나는 40 해를 사는 동안 잠시잠깐 서울 산 것 빼고는
줄곧 전라도땅을 떠난 적이 없다.
하여 강원도땅은 내게 멀고도 아득하다.
그야말로 낯설고 물설다.
나는 왜 40 이 되어서 집을 떠나 길을 나섰나.
그것도 아이 셋을 둔 어미인 내가 집을 나선다는 건
남겨진 아이들한테는 크나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왜 굳이 이 먼길을 떠나왔는가.
떠나왔는가.
나는 나 없는 동안 아이들이 먹을 국과 밥을 한 솥단지 '삶아 놓고'
집을 나섰다.
엄마가 '집구석'에만 갇혀 있으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고,
그러면 엄마 글을 아무도 사보지 않게 되고,
그러면 엄마는 다시 공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로
아이들을 '협박'했다.
내 아이들은 어미가 다시 공장에 가야 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다.
둘째 아이가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면 엄마,
거기 갔다 오면 엄마가 글도 더 잘 쓰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대?"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아이는 무조건, '거기'라고 했다.
잠시의 이별 앞에서 아이들과 나는 비장했다.
새벽에 집을 나서며 현관문 앞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가방 속에 쑤셔 넣어가지고 왔지만
나는 아직 그 신문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이 될지 알 수 없는 이 여정에서
내가 신문을 볼 겨를이나 기회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저만치 밀쳐두고 집을 나왔듯이,
신문에 나오는 세상사야 며칠 저만치 밀쳐둔다 해도
세상은 세상대로 돌아갈 것이고
나는 나대로 숨쉬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남겨진 아이들이다.
모가지 빼고 어미 기다릴 내 새끼들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떠나서 줄곧 아이들을 생각했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도 더 아이들을 생각했다.
이곳에서 내가 떠난 전라도 여수땅을,
내 아이들이 목이 빠지게 어미를 기다리고 있을 그 땅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전라도를 가려면 나는 다시 서울로 가는 길을 잡아야 하리라.
서울로의 우회.
때로는 우회하는 길이 지름길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지 복에 살고 지 덕에 죽으라
도붓장수 지복덕 할머니를 따라가는 것이
애초의 내 여정의 목적은 아니었다.
단지 우연이었을 뿐이다.
길을 떠나니 길 위에서의 한 생애를 만난 것일 뿐.
우연이라고 했지만 또 그것은 필연일 수도 있겠다.
길 위에서는 길 위에서의 생애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니.
그 흔한 휴대폰 하나가 없는 나는
공중전화가 눈에 띌 때마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이 일곤 했다.
강박증은 길을 나선 이후 내내 완강하게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가 전화기 앞으로 갈 때마다 할매는 말했다.
"서방한테 전화하누?"
나는 그냥 웃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영감님은 어찌 됐으며 자녀가 얼마나 되느냐고.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다.
서방이며 자식들 얘기는 애시당초 할 것이 없다는 몸짓이란 걸
나는 안다.
삼척 미로 어디쯤에서 물었던 물음이었는데,
그리고 물을 당시에는 분명히 손사래 하나로 대답을 대신했던 할매가
삼척땅, 노곡 상반천 마을 입구쯤에서 뜬금없이 혼잣말처럼 그랬다.
새끼가 여섯 마리였제.
"강아지 새끼가요?"
내 반문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할매가 대뜸 그랬다.
"사람 새끼, 내 새끼들 말여!"
할매의 여섯 새끼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한번 집을 나서면 열흘이고 보름이고
지고 나온 물건을 엔간히 팔아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 그 새끼들,
제비새끼들마냥 어미가 구해온 먹이 앞으로
일제히 고개들을 뻬올렸다고.
할매도 집 나올 때,
새끼들 먹이 한 솥단지씩 삶아놓고 나왔을까.
아니, 한 솥단지씩 삶을 만한 건덕지라도 있었을까.
새끼들을 다 어떡하고 집을 나왔드냐고 물으니,
"가서 봉께 여섯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비었드만. 죽었어, 막랭이"
솥단지 한가득 삶을거나 있었드냐고는 물을 필요도 없겠다.
당연히 왜 죽었드냐고 물을 필요도 없으리라.
나는 묵묵히 할매 뒤를 따랐다.
강원도의 집들은, 그리고 강원도 사람들은 겨울맞이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람이 먹을 양식을 갈무리하고 짐승의 먹이도 갈무리하고
사방을 둘러서 집단속을 하고
그러고 나면 이곳 강원도땅에 눈이 내릴 것이다.
한번 내리면 사방이 막혀 옴짝달싹도 못할 눈이 내릴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강원도에 눈은 오지 않고
가실걷이가 끝난 빈 밭에 까치와 까마귀떼가 새카맣게 내려앉는다.
눈이 오면 저 새들은 또 어찌사나.
저 새들에게도 먼 길 떠난 어미가 있을까.
그 어미 올 동안 새끼들은 얼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얼지 말고 죽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어미가 올 때까지 잘 견디어 예수님처럼 부활하거라.'
여섯 살 먹은 셋째가 느닷없이 그랬다.
피곤해서 가만히 엎드려 있는 내게 와서 "예수님처럼 부활하거라"라고.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유치원보다 값이 싸서 보낸 선교원에서
아이가 배워온 말을 내 말과 함께 섞어서
나는 되지도 않는 주문을 한번 외웠다.
아직 해는 떨어지지 않았다.
해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눈도 아직 오지 않고 있다.
그러니 할매의 걸음걸이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해 떨어지기 전에 오늘밤의 유숙지를 정해야 하며
눈 오기 전에 지니고 나온 물건을 팔아야 한다.
해 떨어지기 전에 유숙할 집을 찾아야 오늘 하루의 생존이 보장되고
눈 오기 전에 물건을 팔아야 한겨울 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니.
이곳 강원도 사람들이 눈 오기 전에 철저하게 겨울준비를 하지 않으면
한겨울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처럼.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이 생존을 향한 본능적인 대처방식이란
기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풍경에 다름 아니다.
돈이 생기면 맨 먼저 땔감과 양식부터 들여놓고 나서야
안심을 하는 내 못말릴 '없는 사람 근성'이란 그러니까,
의식주의 문제로 생존에의 위협을
한번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전근대적인 모습에 다름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상은 늘, 동시적이지만 비동시적이다.
동시대 속에서 빈자와 부자는 늘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처울고, 처먹고, 처싸고… 그러다 처죽는다
할매가 내심 오늘밤의 유숙지로 정한 집은 문이 잠겨 있었다.
우체통에 김봉순이란 이름이 씌여 있다.
나이가 할매와 얼추 비슷한 이 집 주인 김봉순씨는
변소걸음을 하다 넘어져서 지금 춘천 아들네집에 가 있다 한다.
이제 어쩌시려우?
내가 할매식으로, 할매 목소리를 흉내내 물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할매가 화를 버럭냈다.
할매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아는 안다.
내가 아직 할매약을 하나도 안 팔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자꾸 나를 따라다니누? 나 잡아갈라고 그려?"
나 잡아갈라고 그러냐는 소리는 사실 처음 할매를 만났을 때부터,
그리고 내내 할매 뒤를 따라다니면서 들었던 소리다.
할매는 약장수다.
아내는 김장 준비로 남편은 짐승들 먹이 준비로 분주한
상반천마을 문무웅씨(60) 집 토방에다 펼쳐 놓은 할매의 재산들.
막 버무린 속김치에다 소주 한잔을 얻어먹고 난 할매가
또 내게 약 좀 사란다.
나는 또 약 안 사요, 그러고. 어김없이 할매 입에서 나오는 소리.
"약도 안 사믄, 그러믄 뭐여. 나 잡아가려고?"
무안해 하는 내게 또 할매는 나 잡아가려고,
뒤끝에 내 눈치를 보며 슬며시 웃는다.
할매가 파는 '이부 프로펜'이며 '카덱신'이며 '뇌신'이 무슨 약인지
나는 안다.
세상 떠난 내 어머니가 노상 상비해 두었던 소염진통제들.
할매의 비장의 카드, '영사'는 좀 생소하다.
얼핏 봐서는 무슨 쇳조각 같기도 한 영사의 복용법을
할미는 문무웅씨의 아내 최순녀씨(61)에게 설명한다.
그 복용법 또한 내게는 낯설다.
복용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단 영사 한 조각을 가루낸다.
붉은 팥을 새카맣게 볶는다.
볶은 팥에 더운 소주 두 홉을 영사가루와 함께 부어서
딱 30분 뒤에 먹으면 바람 들어 수족 저리는 데 직방이란다.
망설이는 최순녀씨에게 할미는 거쳐온 수많은 집들에서 했던 것처럼,
억지로 사란 소리는 안 한다고 한다.
최순녀씨가 약을 사주지는 못해도
저녁에 잘 데 없으면 와서 자고 가라는 말로
약 사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대신한다.
잘 데 없으면 오라는 그 말도 할미를 붙잡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할미는 다시 짐을 챙겨지고 걷는다.
최순녀씨가 그랬다. 저 할마씨는 비호처럼 다닌다고.
정말 할매는 비호처럼, 아니 바람처럼 걷는다.
걸으면서 또 뜬금없이 그런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소리로.
"애기들이 땅에 툭 떨어지면 왜 우는고 허니,
이 고생스런 세상 어찌 사누, 허고 처울지.
어허, 뭐든지 맘대로는 안 되는고나."
가슴이 탁 멎는다.
세상이란 땅에 떨어진 그 순간부터
목숨 달린 것들의 생존을 향한 사투는 시작되어,
'처울고' '처먹고' '처싸고' '처몸부림치고'… 그러다 '처죽는'다.
그렇게 처울던 할미의 새끼들 중 셋이
어미를 뒤에 두고 앞장서 처죽어버렸다.
자식의 죽음이 야속한 어미는 모질게도 말한다.
배 아파 낳아노니 그 공도 모르고 처죽어버렸다고.
그러다가 슬그머니, '팔자지 뭐' 결론처럼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체념인가.
체념은 할매에게 거의 본능에 가깝다.
떠난 서방과 자식들을 체념했듯이
물건 안 팔아주는 사람 앞에서 애달캐달하지 않는 것.
그것은 철칙이다.
해는 설핏하니 기우는데 이제 또 할매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나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이제 어쩔 거냐고.
어쩌긴 어째, 저 집이서 자제.
할매가 들어서는 집은 역시 혼자 사는 신순남씨(76) 집이다.
세상에 절대로 공것은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는 할매가
신순남 할머니집 부엌 아궁이에 마치 제집인 양 능숙하게 불을 지핀다.
나는 하릴없이 부뚜막에 앉는다.
잘하면 할매덕에 이 집에서 하룻밤을 의탁할 수 있으려나.
기대는 이내 깨졌다.
"약도 안 팔아주는 사람이 뭣 할라고 여가 있어?
집이는 영업집으로 가제.
아까 그 집이 영업집이여."
민박을 하는 문무웅씨 집을 이르는 것이다.
"할머니, 내일은 어디로 가실 거예요?"
"나? 내일 일은 나도 모르제. 근덕으로나 갈까."
"집에는 언제 가요?"
"기둘릴 새끼들도 없는 집, 가면 뭣 헐 것이여."
"할머니, 그런데 근덕이 어디예요?
"바다!"
근덕이 바다란다.
내일 근덕으로 가면 바다를 볼 수 있을까.
그러면 그 바닷가에서 다시 할매를 만날 수나 있을라나.
내 아이들은 지금 남쪽 바닷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할매는 가지고 나온 물건을 엔간히 팔아야 집에 갈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무얼 팔러 나왔나.
팔 것이 없으니 거두어라도 가야 할 텐데.
그러면 나는 엔간히 거두어야 집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일단 나도 할매의 행선지인 그곳, 근덕,
바다가 있다는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날은 곧 어두어 올 텐데 근덕 가는 차는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산불감시하는 사내가 하루치의 산불감시를 무사히 끝내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가 입은 붉은 조끼가 기우는 햇살에 더욱 붉어 보였다.
제 187 호 2002 년 1 월호 디지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