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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가야 할 푯대를 찾았습니까?
참고말씀: 시90:10; 단12:3; 마10:41,42; 요1:46; 9:16; 15:1,5,7; 행8:1; 20:24; 고전9:24; 딤후4:7,8; 히11:6; 12:1
읽을말씀: 빌3:14,15; 고전9:26
주제말씀: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첫째, 달려가야 할 푯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고전9:26 상)
성경은 본문을 포함해서 우리의 인생(人生)을 종종 무엇에 비유하곤 합니까? ‘달리기’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고전9:26 상) /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하) /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하)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왜 그런 것입니까?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고 쏜 살 같이 지나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생각해보십시오. 세월(歲月)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데, 우리가 걸어서 어느 세월에 그것을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달리고 또 달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달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속도(速度)나 지구력(持久力)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방향(方向)일 것입니다. 정반대(正反對)로 달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면 그 동안의 수고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달리기에 앞서서 무엇부터 확인해야 합니까? 우리가 달려가야 할 방향입니다. ‘푯대부터 확인해야’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줄일 수 있으며, 시간과 정력 낭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푯대를 향하여...”(빌3:14 상)
그러나 인생의 푯대도 없이 달리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런 방향도 설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달려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고전9:26 상)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상을 받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상만 받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때로는 인생을 아예 송두리째 망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달리니깐 나도 달리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이니깐 나도 같이 하다보면, 아프리카 물소 떼의 경우처럼, 잘못된 신호 하나가 모두가 다함께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출23:2)
참고로, 아프리카물소(Syncerus caffer)는 아프리카들소, 아프리카버팔로, 버팔로 등으로 불리는데 어깨높이 1.5~1.8m에 500~800kg에 이르는 거구로, 800마리가 넘는 큰 떼를 지어 다니며, 자그마치 시속 50km이 넘는 무서운 속도로 내달립니다. 이런 거구들이 갑자기 뒤엉키면 어찌 되겠습니까? 불 보듯 훤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원컨대 아무런 방향도 설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원컨대 이제라도 각자가 달려가야 할 분명한 푯대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직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고전9:26 상)
둘째, 인생의 푯대를 찾으려면 세 가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달려갈 인생의 푯대를 찾을 수 있습니까? 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으로써 입니다.“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빌3:14 상) 오직 예수님 안에 있을 때만 인생의 푯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슨 비유를 통해 잘 설명될 수 있습니까? 참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입니다. 즉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인데,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15:1)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5 상) 열매를 맺으려면 필수적으로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듯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그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하) 우리도 자신의 푯대를 찾고 또 이루어가려면 예수님 안에 꼭 붙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말씀생활에 충실할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인생의 푯대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닫고, 말씀생활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배우는 것과 지키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② 하나님께서 상(賞) 주시는 분임을 깨닫고,“...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 이 상을 보면서 달려감으로써 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하)
어째서입니까? 본문에서 푯대와 상이 거의 동일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어떤 점에서 동일시된 것입니까? 그의 달음질 끝에는 푯대만 있지 않고 상(賞)도 함께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습니까? 푯대가 바울이 달려가야 할 방향(方向)이라면, 상은 그가 달려가야 하는 목적(目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목적이 올바르면 무엇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까? 방향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달려가야 할 목적부터 분명히 할 수 있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푯대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지금 우리는 어떤 상을 좇아서 달려가고 있습니까? 선지자의 상이나 의인의 상, 제자의 상입니까?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1,42)
아니면 의의 면류관이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되는 상입니까?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4:8 상)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원컨대 하나님께서 상(賞) 주시는 분임을 깨닫고, 구체적인 상 주심을 기대하면서 달려가다가 인생의 푯대 역시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③ 생각을 넓게 가짐으로써 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3:15)
여기서 ‘온전히 이룬 자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최선을 다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여기서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는 구절은 1차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혹 성도들 중에 바울과 견해를 달리하는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열어 진리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이를 조금 더 확대하면, 어떤 의미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까?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다 넓게 바라보기 시작함으로써 자신의 푯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까?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은 우리가 자신의 인생 푯대를 찾는데 상당부분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 상) /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요9:16 상) /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행8:1 상)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경직되게 만들고, 또한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푯대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달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빌3:15 중)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생각의 폭이 점차 넓혀가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다 큰 그림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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