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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성령의 법 편.
―주제본문 ; <롬8;1.2> ―
+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生命(생명)의 聖靈(성령)의 法(법)이
罪(죄)와 死亡(사망)의 法(법)에서 너를 解放(해방)하였음이라.+
- 신앙의 구도(信仰의 構圖) -
신앙수행의 전모(全貌)는 두 가지로써“사수(死守)와 배격(排擊)”입니다.
1). 사수(死守)
사수는 곧 주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호(聖號)를 위하여 내 목숨까지 바쳐서 지켜내는 것이 사수요.
2). 배격(排擊)
배격이라 함은 십계명을 비롯한 구 율법이 폐지된 사실을 믿고, 그 후 舊律法(구율법)이 신앙(복음)안으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물리치는 것이 곧 배격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하나님의 新誡命(신계명)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딛3:9.10> 그러나 그대는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律法(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시오. 이런 것은 무익하고 헛된 것입니다. 분열을 일삼는 사람은 한두 번 경고한 후에 물리치시오.(배격 : 물리침.)
신앙은 생명(生命)과 사망(死亡)이 양립해 있는 형국으로써, 생명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생명이요, 반대로 사망은 십계명을 비롯한 구율법이 사망인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율법을 범한 代價로 십자가 처형을 받아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고 그 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 이름을 힘입어 그분의 생명으로 다시 출생하여야 비로소 중생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십계명을 붙좇는 자들을 옛사람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에서 주님의 생명으로 조성된 새사람들입니다.
성호사수 편(聖號死守 篇)
성호사수란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실행을 계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은 기본이요, 이에 더 나아가 이 실행 면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고수하는 것을 두고 성호사수라 하는 것입니다.
<히10:9> +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첫 것이라고 하심은 十誡命(십계명)을 포함한 구 율법을 두고 하신 말씀이며, 둘째 것이라 함은 곧 교회에다가 내려주신 하나님의 새로운 新 誡命(신 계명)을 두고 이르신 말씀인 것입니다.
<히7:18.19> + 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아버지께 더 가까이 가는 수단은 아래 기록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첫 계명을 폐하시고 두 번째로 교회에다가 세워주신 새 계명은 바로 아래성구입니다.
<요일3:23>
+ 그(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위의 계명은 하나님이 교회에다 내려주신 하나님의 새 계명입니다만, 사단들이 우리그리스도인들의 눈과 귀를 막아 이를 보고 듣고 깨닫지를 못 하도록 방해하는 계명이 바로 위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위의<요일3:23>에 기록된 계명을 꼭 잡은 채로 계시록에 임해야 큰 실수를 줄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해를 입은 여자와 십사만 사천 글 참조)
생명의 성령의 법에 대한 이해. 위의 성구 즉<요일3:23>말씀이 곧 십계명을 비롯한 구 율법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새 계명으로 채택된 사실에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새로 주신 계명이야말로 교회생활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맞춤형誡命(계명)이 아니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주님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타당하며 합리적인 명령(계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를 요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실천에 앞서 반듯이 주의 이름을 힘차게 부르짖는 실행 면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실행 면이 결여된 사랑은 곧 불교인들과 또는 여호와의증인들, 그리고 기타 동네 계 모임들도 뜨거운 사랑이 만연하기 때문에 저들의 사랑과는 전적으로 차별된 사랑을 나타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사랑을 실천할 그때 비로소 내義는 사장되고 오직 주님의 이름과 義만 확장될 것입니다. 모든 매사에 앞서 제일먼저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행위가 선행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신(새)계명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아들 성자의 이름이 계명으로 등재된 것이 특이한 점이며,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믿으라는 것이 독특한 계명임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구 계명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셨으며 또 그 이름을 저주내지 모욕(독)하는 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는 무서운 명령들을 보아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眞(진)계명은, 예수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또 그 이름으로 영원불멸의 생명을 얻는 법(계명)입니다.
<행10:43> +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요20:31>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그 이름은 죄 사함과 생명을 얻어내는 힘이요 원천입니다. 이것이 곧 생명의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신앙의 構成要素(구성요소)는 方向과 分量입니다.
신앙이라 함은 믿고 바라는 것으로써 신앙의 방향을 가리키는 푯대가 바르지 못할 때는 이단에 처하는 법입니다. 그 다음이 바로 그에 따른 분량이며, 이 분량이라는 것은 내 功力 즉 行爲를 말함이요, 그 행위라는 것은 생명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행위에는 사망의 행위와, 생명(건축)의 행위가 있음을 알고 있어야할 것입니다.
신앙의 방향성에 있어서 바른 푯대를 찾는 것은 매우 쉬운 것이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상은 대개가 이 방향성에서 실패하여 빗나간 교회들이 태반인 것들입니다.
신앙의 방향입니다. 신앙의 [푯대]는 주의 이름[예수]이며, 신앙의 [분량]은 곧 생활가운데서 발생하는 모난 일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이겨내는 것은 기본이요, 이를 넘어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에 이르기까지가 곧 하나님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최상의 방향과 분량입니다.
공력보장은 내 신앙의 방향이 바르게 놓일 때 내 공력은 보장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보다도 방향성에 무게를 두지 못하면 이단에 빠지며 설령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혼돈된 복음(진리)을 안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정작 장본인들은 모른다는 것이 신앙계의 제일 큰 병폐인 것입니다. 아니!!, 정치든 그 외의 어떠한 것이든지 세상만사는 다 그러한 것입니다. 너. 나할 것 없이 자기 눈에 들보는 못 보는 것이 인생들의 맹점이요 병폐인 것입니다.
수많은 교파와 신흥교단들이 왜곡된 방향과 보장성이 희박한 착각의 공력을 가지고 만족을 누리며 유유자적한 신앙생활을 누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암울할 뿐입니다.
성경을 성령에 의지하여 깊이 상고하지 않은 채 유급자들의 주석으로 내속에서 역사하실 성령을 대체함으로 하여금, 주님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자기수준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이 병폐인 것입니다.
우리는 유급자가 아닌 형제로 족할 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유급자가 배제된 형제들만이 있을 때 상호견제와 그리고 보다 월등한 입체적인 주 예수그리스도를 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인체제는 편협과 독선과 그리고 사람과 유물들이 우상화로 치우칠 공산이 매우 크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드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어떻게 믿는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일까!!....
* 소속감? * 주일성수? * 주의 종 섬김? * 직분승급? * 신앙경력? * 헌금?(십일조) * 전도? 열심??....
아닙니다. 이런 유(類)는 믿음의 결과로 빗어진 부차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이제, 주님의 일대기를 숙지하고 그것을 믿는 것이 정도일까? 다시 말하자면, 주님이 하신 사역인 십자가와 부활 등등을 믿는 것이 신앙의 정답일까요??
그것도 실은 믿음의 정답은 아닌 것입니다. 이는 다만 믿음의 공식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거처가야 할 필수과정에 불과할 뿐입니다. 공식을 답으로 알고 있으면 편벽되고 혼돈된 구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 이에 바른 직답은 곧 주님의 이름을 믿는 것이 바른 믿음이요, 그의 이름을 믿고 부르짖을 그때 그것이 믿음의 증표요 그것이 신앙의 정도요 그것이 正道의 正答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公式과 答을 區分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이것만 이라도 염두에 두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상당한 오차를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래 聖句(성구)는 신앙의 방향과 분량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베푸신 은혜의 말씀입니다.
<행21:13>
+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사도바울처럼 좀 더 具體的(구체적)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무엇을 믿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가 답이라면 이는 너무나 포괄적이요 막연한 대답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막연한 지식의 복음이 이단의 진원지가 되는 것이요, 이 시점에서 발단되어 이단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 연유는, 즉 성경 신자들이라면 누구나가 다 “우리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부르는 자들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게재의 目的입니다. 이름을 논하여 게재하는 이유가 바로 개인이나 또는 단체적인 모임(조직)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정체성과 지향점을 추구하여 구축하는 반면, 이를 드높이 揭揚(게양)함과 동시에 넓고 멀리 宣傳함에 있고 또 그 이름으로 하여금 신앙의 구심점과 자긍심을 고취하려는데 그 목적을 둔 것입니다.
이단들이 결속력이 강한 이유는, 비록 빗나간 진리복음일지언정 확고한 신앙의 구심점을 마음속깊이 심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단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저들과는 달리 오직 예수이름을 전제로 한 결속이라야 만이 이것이 탄탄한 모임(교회)이요 이것이 건강한 신앙이요, 이것이 보장성이 확고한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이름을 爲始하여 교통(신언)이 소통될 때 이는 곧 말이 하나가 될 것이요, 말이 같을 때 비로소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므로 分裂分爭(분열분쟁)이 최소화 될 것입니다.
<고전1:10>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우리는 일차적으로 다 같은 말을 해 내야할 것입니다. 바벨탑의 와해는 각자의 말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요, 그 원인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사람의 이름을 높이 게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무신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창11;1~9참조>
말세에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다 성전이라는 미명아래 벽돌을 쌓을 것이며 이 건축물은 세상에서 가장 주목(제일 높음)받는 건물(일명성전)이 될 것이고, 그곳에는 말이 각기 다른 세계의 모든 각국민족들이 몰려들 것이며 그들은 그 성전에다 짐승 같은 사람 즉 666을 앉혀놓고 그者의 이름을 드높일 것입니다. <살후2;4><계13> <사2> (광명지자 종말론] 글 참조요)
信仰의 正道란, 우리는 求道者가 아니요, 儼然(엄연)한 得道者들입니다. 우리는 十字架의 道를 이미 열어놓고 大路를 闊步(활보)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자들이 아니라, 이겨놓고 싸우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오직 승리의 길을 갈뿐입니다.
<골2:15> +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승리는 이미 2000년 전에 주님이 이뤄놓으셨습니다.
폐단의 요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놓치거나 이름에 대한 지식이 저조하고 빈약하면, 그 자리에 바로 사람의 이름, 즉 (교황의 아름과 각 교단의 창시자들의 이름들과 이단교주들의 이름들, 그리고 대형교회의 지도자들의 이름들)과 또는 교파와 그리고 교파의 교리들과 율법들이 그 이름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3: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전7:23> +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현재 교파 권에서 유급자들이 신자들을 종처럼 부리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빌3:5> +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위에서 본 바대로 그것들은 육체의 것들로써 이러한 해로운 배설물들이 성령의 이름을 대신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 이름 안으로 올인(All in)할 그때가 이것이 유일무이한 영안에 하나인 것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17:21>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골3:3>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 아멘, 주~ 예수여~~~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입니다.~~~~)))
시급한 당면과제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당면과제는, 시급하게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에서 과연 죽을 만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찾아나서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언저리만 맴돌고 있음을 아셔야할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갑니다.-지신호전(知信號傳)-
=알고 믿고 부르고 전하자- 알아야 믿어지는 것이며, 믿어지면 성호를 부르짖게 되고, 성호를 부르짖을 때 그리스도는 전파(확장)되는 법입니다.
<롬10:13.14>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믿음의 근본은 즉 예수 그 이름이 신앙의 근본인 것입니다. 초 신자가 무엇을 들어야 믿음이 생길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입니다.
이름의 본분 ;이름은 나를 代辨(대변)하는 또 다른 나가 되는 것입니다.
▷ 이름은 자기의 권세 능력 명예 등등의 모든 것을 함축한 기호입니다.
▷ 이름(name)은 靈(spirit)의 分類記號(class sign)인 것입니다
이름의 본질; 그분은 말씀이신고로 이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요6:6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20:31>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주의 이름은 곧 그분자신이시며 그분의 本質은 바로 말씀이신고로 말씀과 이름은 곧 생명이요 그 셋은 본질에서 하나이니 이는 동의어인 것입니다.
이름의 임자(주인)들 ; 예수라는 이름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 공유하시는 이름입니다.
성자의 이름; 예수
<눅1:31> +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여기서 예수라는 이름이 성자의 이름이라는 해명은 재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부의 이름; 예수
<요5:43> +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
<요12:13> +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17;11> +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표준새번역>
예수라는 이름은 성부께서 자신의 이름을 성자에게
下賜(附與)하신 이름입니다.
<요17;11> + 거룩하신 아버지, 저에게 주신 당신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신세계역 부분절취)
성부의 관심사항입니다. 우리는 성자께서 성부의 말씀을 전하고 그의 일을 성취하시고 그의 뜻을 펴신 것 까지만 숙지하고 있을 뿐 정작 성부의 중요한 핵심 사안은 놓치고 있는 것이 현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요17:6> + 나는 아버지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나에게 주신 그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 보였나이다....+ 이하생략
<요17:26> + 또한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 알게 하였으며, 또 밝히 알게 하리니 ....+이하생략.[한킹인용]
성자는 성부의 존함을 나타내시고 또한 밝히 알게 하셨으나, 그러나 우리는 이 사역을 스치듯 지나쳐 버리고 말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창41:41~43> +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상기 성구에서 본 것같이 성부의 거룩하신 대종 성자예수께서도 요셉처럼 자신을 보내신 이 곧 성부의 이름으로 모든 聖業을 成就하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라는 이름이 오로지 성자의 이름으로만 국한(局限)되었다면 그의 사역은 성자 그 자신의 사역에 그쳤을 것입니다.
<요10:25>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그렇습니다.!! 성자예수께서는 성부의 인장반지를 끼고 성령의 수례로 下降하사 천상천하를 순회총리(巡廻總理)하셨던 것입니다.
<마1:18>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으로의 下降)
<마4:1>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聖靈)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이하생략....+
마귀에게 시험을 마차신후,
<마4:23.24> +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자, 간질하는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위에서 보신 바처럼 주님은 자기 땅 자기백성들을 순회치리(巡廻치治理)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이름; 예수. 성령의 이름이 존재한다는 암시적 성경근거.
<마28: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여기서 주목을 요합니다. 위 성구에서 중요한 점은 곧, 位는 複數요, 이름은 單數임을 놓쳐서는 않될 것입니다
위 성구 속에 기재된 [성령의 이름]이라는 문자는 보혜사 성령도 이름이 있다는 뜻의 문장이요, 그 보혜사성령의 이름도 역시 예수입니다.
<요14:26> +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략
위의 성구에서 본바와 같이 성령도 성자의 이름을 취하여 보내진바 되셨으며, 성자는 성부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받았고 성령은 성자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진바 되었던 것입니다.
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은 곧 “예수”이십니다.
聖三位 同名의 사례들.
<행2:38> +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참조; <행8:16> <행10:48> <행19:5>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과는 달리 오직 성자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거행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성삼위는 일체이기 때문에 이름이 하나라 그러한 것입니다.
* 이름이 없는 영은 곧 雜靈(잡영)이요, 저렴한 영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각각으로 되어져 있다면 이는 삼신이 되기 때 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 예수라는 성호는 삼위께서 공용으로 함께 사용하는 존함이라 그러한 것 입니다.
이름의 의미
예수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마1:21>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라고하면 통상 위<마1:21>의 구절만 알고 말들을 하고 있으나, 실은 아래 구절<사9:6>도 깊이 묵상하고 수용해야할 대목입니다.
<사9:6>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 주~~ 예수여~~~))) 라고 그렇게 부르짖는 것은 곧, ((( 영존하는 아버지여~~~))) 라고 불러 외장치는 의미와 진배없음을 우리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이름 속에 隱藏(은장)된 비밀한 언약들.
-이름의 기능과 성분들-
주의 이름은; 성경66권이 함축된 말씀입니다.
<계19:13> +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고로, 하나님의 말씀은 곧 주님의 이름이 되시는 것입니다. 아래 성구는 참으로 깊이 묵상해야할 대목입니다.
<요1;1~14> [참조요, 장문관계로 본문기재생략]
위의 성구를 요악하면, 그가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다가, 그다음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지금은 이름으로 대체해 계시므로 하여금,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그분을 영접함이요, 그분을 영접함은 곧 성경말씀의 실제를 접한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유는 바로 성경66권 전체가 다 그분의 성분으로 조성된 靈書라서 그러한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곧 그분자신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예수자신께서는 즉 성경66권 전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요1: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주의 이름은; 죄를 씻어내는 권세요 기능입니다.
<행10:43> +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
주의 이름이 누락된 구원론, 이는 참으로 한심한 구원론인 것입니다. 구원에 한 하여 전문으로 자처하는 저들의 결과가 매우 궁금할 따름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이 나가는 등등의 기타 이적의 사건들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주의 이름은; 생명을 부여하는 기능입니다.
주의 이름은 그분이요 그분 자체가 생명이신고로,
<요20:31>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生命)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주의 이름은; 휴거를 받을 수 있는 요체의 기능입니다.
<행2:17~22> +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중간생략....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말세에는 666짐승의 이름으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목숨과 맞바꿔야만하기 때문에 휴거가 되는 것입니다. (휴거 편. 말세론 참조요)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권세입니다.
그 권세의 이름은 바로 우리를 중생케 하는 기능이 되는 것입니다.
<요1:12,13>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주 예수의 傳記를 믿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짖으면 그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일러 곧 [중생]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중생이후로는 성장의 과정을 밟아 장성한 분량까지 다다라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출생)은 순간이요. 성장(성화)은 이에 비하면, 개인적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그러나 다소의 기간을 요한다고 보아야 옳은 말일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의외로 많은 이들이 중생과 성장(성화)을 혼돈 하는 例가 허다하여 非常識(비상식)적인 소리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함을 봅니다. 이는 중생의 복음이 부실하기 때문에 그로인하여 일어난 오류일 것입니다.
중생은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만이 되는 것이며, 이들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직통으로 출생된 자들인 것입니다. 중생은 그 누구나 또는 그 어떤 것이라도 개입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1:13>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중생에는 그 어떠한 것도 토를 달지 못 하는 법이요, 중생은 오직 예수 그 이름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천부의 영권(靈權)이요, 주권(主權)이라 그러한 것입니다.
주의 이름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식케 하는 기능입니다.
<갈4:9> +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여기서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대하여는 누구나가 자신들이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잘 아신바 되셨느냐는 반문에는 緘口無言(함구무언)내지는 誤答(오답)을 제시하는 경우가 전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이름에 대한 지식이 全無함을 보여주는 단적 증거인 셈이라 그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작 본인들을 잘 알지 못하시는데, 자신은 하나님을 잘 안다고 떠드는 것은, 이것이 곧 맞사랑이 아닌 짝사랑임을 우리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딤후2:19~21> +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위의 성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편협하나마 이름논의 흐름을 따라 간단히 줄여 이르자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그분에게 아신바 되었고, 그들이 불의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집에서 귀히 쓰임 받는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맞 사랑이요, 이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 아멘, 주~ 예수여~~~저를 귀히 쓰시옵소서~~)))
주의 이름은; 재물이 풍부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지상에서는 은혜가 풍성할 것이며. 또한 그의 왕국에서 영원한 생명은 물론이요, 재물도 풍부할 것입니다.
<10:12>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윗글의 실감을 얻으려면,
▼ 아래 씨 뿌리는 비유 글을 읽어보면 보다 더 밝아질 것입니다.
주의 이름은; 천국문의 열쇠입니다.
주의 이름은 씨 뿌리는 비유 중에서 씨의 정답이 되시며,
씨의 해답이 바로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마태] [마가] [누가] 이렇게 3복음서에 기록되어져있으며, 이 비유를 풀어가려면, 먼저 씨가 무엇이냐를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요, 밭에 대한 논의는 2차로 두는 것이 수순입니다. 이유인 즉 옥토는 가라지를 심어도 잘 자라기 때문에 좋은 씨를 찾는 것이 급선무인 것입니다.
아래성구는 우리가 풀어야하는 세(3)과제입니다.
1.) <눅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2.) <마13:38>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3.) <막4:20>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 ※ 저자 글 “씨 뿌리는 비유”글 참조 ※ ※
주의 이름은;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마22:14>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위 성구도 이단들의 전용물로써 자위의 도구요, 또 이탈방지용으로 사용하는 성구입니다. 자기네들은 택함 받은 자들이고, 그 외는 청함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택함 받았다는 성경적 근거는 무엇이냐고 다그치면, 이도 역시 유구무언이요, 개중에 용감한 자는 오답을 제시할 뿐입니다.
<행9:15> +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렇습니다! 그 이름을 알고 믿고 부르고 전하는 자들이 곧 택함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주의 이름은; 신판의 결과를 알리는 판결문입니다.
<요3:18> +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주의 이름은; 14만 4천인의 반열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환난을 통과하면 흰옷 입은 자들이요, 이에 더 나아가 주의 이름을 부르다 순교를 하면 이들은 곧 14만 4천인의 수에 가입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14만4천글 참조)
주의 이름은; 천상에서 해를 입은 여자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천계의 해를 입은 한 여자들입니다.(해를 입은 한 여자 글 참조)
이름논의 大團圓(대단원)*********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계명이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제정된 왕국의 國憲입니다.
<요일3:23> + 그(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병폐들 주의 이름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처지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면, 타인들로부터 주술적이다, 단전호흡식이다. 남녀호랭갱교식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법입니다. 오, 주~예수여~~를 연발로 반복하여 정신집중을 꾀하려는 것은 주술적이요, 또한 심호흡을 깊이 한 다음 숨을 내쉬며, 오~~~를 길게 하고, 주~~ 예수여~~~~를 부르며 느낌을 주의하려는 것들은 단전호흡식으로 매도당할 우려가 큰 것입니다.
문제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부르다가, 진리 찾아 이동하게 되면 동시에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실행면도 중단하는 그것이 바로 큰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를 것인가. 지식을 갖춘 우리들은 비난을 의식치 말고 믿음으로 부르면 될 것입니다. 정해진 율이 없는 만큼, 그때의 분위기에 맞게 부르면 될 것입니다. 때로는 어린아이같이, 때로는 신하가 임금님을 부르는 것처럼 때에 따라 다소 믿음을 실어 무겁고 엄숙하게 부르던지, 때론 갈급히 부르짖던 지간에 다만 우리는 서로가 헤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실행은 중단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깊이 깨닫고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짖을 때 내 자아가 물러나며, 이 때에 내 영이 주안으로 깊숙이 묻혀 安穩(안온)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이는 주의 이름에 대한 지식이 결여됨이요, 또한 분위기에 편승되어 부르는 것이라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의 각오.
▶ 우리는 에베소교회처럼 그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디며 게으르지 말아 야할 것이고 <계2;3>
▶ 우리는 버가모교회와 같이 그 이름을 굳세게 잡고 안디바처럼 순교의 마당까지 가야할 것이며 <계2;13>
▶ 우리는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어떠한 환란이 닥쳐도 그 이름을 배반치 말아야할 것입니다. <계3;8>
맺는말입니다. 주의 이름에 대하여 여기까지 대략적으로 살펴본바 사도바울의 신앙 고백처럼 우리도 그의 고백을 되 뇌어야할 것입니다.
+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이나 또는 세상종말 시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써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대응법도 준비해야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도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을 부르짖는 것뿐입니다.
<행7:59.60> + 그들이 스테판을 돌로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말하기를
"주 예수여, 나의 영을 받아 주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이 말을 하고 잠드니라.+
▲위 성구는 개인적인 종말에 대한 대응법이요,
▼아래 성구는 세상종말에 대한 대응법이 되는 것입니다.
<행2:20.21> + 그 위대하고 찬란한 주의 날이 오기 전에 해가 흑암으로, 달이 피로 변하리라.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한킹>
우리는 다만 종말 앞에서 오직 주의 이름을 부르짖어 아뢰는 것 외는 다 사족일 뿐입니다.
((( 아멘, 주~ 예수여~~)))
((( 지극히 높고 아름다운 그 이름 홀로 찬송 받으시옵소서.~~~)))
<딤후2:22>
+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를 각오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주위만 맴돌 뿐이요, 자아도취에 빠진 맹신자에 불과할 뿐임을 자각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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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위 게시물의 제목은 '생명의 성령의 법'인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바뀐듯 합니다.
아무튼, 공감하는 글도 일부 있습니다. 그리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로마서 7장 6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 입니다 .다만 귀한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 경망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내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중국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위. 호함파라고 하는것 같던데 그쪽 모임은 아닌지 여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