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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2. 연중 제15주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13,1-23
같은 농부가, 같은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열매는 땅에 따라 갈립니다.
씨앗이 부족해서도, 농부가 인색해서도 아닙니다.
씨앗을 받아들이는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풀이해 주십니다.
씨는 말씀이고, 땅은 그 말씀을 대하는 우리 마음입니다.
성 예로니모는
평생 성경을 우리말로 옮기고 풀이하는 데 바친 교부로,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에게 말씀은
스쳐 듣고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받아 곱씹고 새겨야 할 ‘씨앗’이었습니다.
예로니모는 묻습니다.
나는 어떤 땅인가?
길가는
말씀이 들어설 틈도 없이 단단히 굳은 마음입니다.
돌밭은
처음엔 반기지만 뿌리가 얕아
작은 시련에도 곧 말라 버리는 마음입니다.
가시덤불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우거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리는 마음입니다.
이 세 땅의 공통점은
받은 씨앗을 ‘아끼지 못하고’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낌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땅이 된다는 것은
타고난 비옥함이 아니라,
말씀을 소중히 여겨 정성껏 가꾸는 ‘선택’입니다.
굳은 마음을 갈아엎고,
얕은 돌을 골라내며,
가시덤불 같은 걱정과 탐욕을 베어 내는 일 ―
그 꾸준한 아낌이 마음을 좋은 땅으로 바꿉니다.
주님께서는 그 결실을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라 하십니다.
소중히 품은 한 알의 말씀이
이토록 넉넉한 열매가 됩니다.
아낌은 인색함이 아니라,
작은 것을 귀히 여겨 큰 열매로 키우는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땅인가?
나는 말씀을 스쳐 듣고 흘려보내지는 않는가?
내 안의 어떤 ‘가시덤불’이 말씀의 숨을 막고 있는가?
나는 받은 말씀을 소중히 아껴 뿌리내리게 하는가?
주님,
제 마음을 좋은 땅으로 일구어 주소서.
굳은 길과 얕은 돌과 우거진 가시덤불을 걷어 내시어,
당신 말씀의 씨앗을 소중히 품게 하시고,
백 배의 열매로 자라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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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2. 연중 제15주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미국에서 성당이나 본당이 통폐합되는 것을 영어로 ‘머지(Merger)’라고 합니다. 코네티컷 교구도 많은 본당이 통폐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오클랜드 교구도 그런 과정에서 한인 공동체가 자리를 옮겨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민 공동체는 사제가 있을 때는 미사와 성사를 중심으로 활기를 얻지만, 사제가 없으면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두 달에 한 번 엘파소 한인 공동체를 방문합니다. 그곳에는 한국인 사제가 없습니다. 교우들은 주일에는 영어 미사에 참례하고, 매주 화요일에는 사제관에 모여 기도 모임을 합니다. 대부분은 70세가 훌쩍 넘으신 어르신들이지만, 젊은 두 가정도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고백성사, 강의, 미사를 하였고, 5월에는 고백성사와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비록 작은 공동체이지만, 저는 그곳에서 따뜻한 신앙의 마음을 봅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오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주고, 미사에 참례한 모든 분이 고백성사를 보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여러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교우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께서 전국의 공소를 다니며 고백성사와 미사를 봉헌하셨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신앙은 큰 건물이나 많은 숫자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려는 정성, 공동체를 지키려는 사랑이 있을 때 신앙은 살아 있습니다.
엘파소 방문 중에 한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제님에게는 딸이 세 명 있습니다. 큰딸은 4년 전에 보스턴 대학에 입학했고, 이제 곧 졸업한다고 합니다. 둘째 딸은 이번에 휴스턴의 라이스 대학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막내딸은 4년 후에 뉴욕의 NYU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형제님은 자녀들이 좋은 길을 걸어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이 매일 저녁 함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엘파소 방문 때도 세 딸이 함께했고, 두 딸은 미사 복사를 했습니다. 형제님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사는 가정의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공부하면 미국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형제님의 두 딸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비게이션을 생각했습니다. 목적지를 정확하게 입력하면 자동차는 길을 찾아갑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도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줍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적지를 하느님께 두면, 때로는 흔들리고 돌아가더라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가정은 ‘신앙’이라는 목적지를 분명히 정했기에 희망과 사랑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씨 뿌리는 사람, 씨, 그리고 토양입니다. 씨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은 능력과 재능을 말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장애가 있는 사람, 지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 유전적인 어려움을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씨앗이 있습니다. 토양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은 환경을 말할 것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 부유한 집에 태어난 사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부모가 늘 다투는 집에서 자란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은 분명히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먼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씨는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토양이 있어도 씨가 뿌려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씨 뿌리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마음에 믿음의 씨앗을 뿌립니다. 사제는 교우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립니다. 교우들은 서로에게 위로와 사랑의 씨앗을 뿌립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도 씨앗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도 씨앗입니다.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리는 씨앗이 됩니다. 따뜻한 격려는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상처 주는 말, 판단하는 말, 험담하는 말도 씨앗이 됩니다. 그것은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공동체를 갈라놓고, 신앙의 싹을 말라 버리게 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일부러 나쁜 토양에 씨를 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좋은 씨앗을 뿌리기보다 분노와 이기심의 씨앗을 뿌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은 좋은 씨앗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도 좋은 밭이 되어야 합니다. 길바닥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들어도 곧 잊어버립니다. 돌밭 같은 마음은 잠시 기뻐하지만, 시련이 오면 쉽게 포기합니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은 세상의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좋은 땅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인내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땅은 처음부터 완성된 땅이 아닙니다. 농부의 수고로 만들어지는 땅입니다.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기도의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미사의 은총으로 물을 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한 사랑과 배려로 흙을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교만과 욕심의 돌을 골라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잡초를 뽑아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가 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길에도 고난은 있습니다. 엘파소 공동체처럼 사제가 없어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매일 함께 기도하며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져도 기도 모임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키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척박한 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이 깊이 뿌리내린 좋은 땅입니다. 세상은 숫자와 규모를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마음의 밭을 보십니다. 세상은 조건과 환경을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믿음의 결심을 보십니다. 우리도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본당에서,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좋은 말을 뿌리고, 사랑을 뿌리고, 용서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싹을 틔우시고, 꽃을 피우시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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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2. 연중 제15주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연중 15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말씀이 있는 존재 이유’와 ‘말씀의 권능’에 대해 밝혀줍니다. 곧 ‘말씀이 왜 있는지’와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밝혀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리는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이는 말씀의 존재 이유가 ‘이루기 위함’이며, ‘말씀이 이루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우리가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협조할 소명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제2독서>에서는 이러한 ‘말씀의 실현’을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열매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3)
<복음>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의 실현’인 열매 맺기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마태 13,10)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3,11)
이 말씀은 먼저, “하늘나라”가 신비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하늘나라”는 인간 스스로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이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신비가 허락되지 않은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은혜를 베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의 은혜에 응답하지 않은 까닭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하늘나라를 가르쳐 주셨고, 똑같이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받아들이는 이는 가진 것을 더 받아 넉넉해지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들이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차별대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그렇게 결정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13)
그러나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둠이 초래한 결과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마태 13,15; 이사 6,10)
그렇다면, 주님께서 그들이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고쳐주지 않으려고 하신 것이라는 말씀일까요?
그러나 이 문장을 주의 깊게 보면, 주어가 “그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그들이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고침을 받게 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가 자신들의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를 <요한복음> 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오늘, 우리는 복음을 들으면서, 이처럼 ‘완고한 마음’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를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들여다 볼 일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받아들인 제자들에게는 행복이 선언됩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결론처럼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러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 13,23)
‘좋은 땅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땅을 지배하지 않고, 뿌려진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밭에서 일할 줄을 알며,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과 함께 땅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땅을 윽박지르지 않고, 매만지며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씨앗을 품은 농심’을 지닌 사람, 뿌려진 씨와 함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소명을 짊어진 사람, 무엇보다 먼저, 자신 안에 그분의 씨앗, 그분의 사랑이 뿌려졌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좋은 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마태 13,23)
주님!
좋은 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좋은 땅일수록 뿌린 씨앗만이 아니라 뿌리지 않은 잡초도 잘 자라기에
시련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열매를 맺는데 당연히 있기 마련인 죽음의 길에서 도망치지 않고,
어떤 처지에서도 방관자로 살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기꺼이 죽어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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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2. 연중 제15주일.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그 씨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미사와 기도로써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밭이 길바닥이나 돌밭, 또는 가시덤불과 같다면 말씀의 씨는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사그라들고 맙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사로잡혀 말씀을 깊이 새기지 못하거나 환난과 박해 앞에 흔들릴 때 우리는 복음의 증거자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밭에 뿌려지는 씨는 그 자체로 ‘좋은 씨’입니다. 이 씨가 제 생명력을 마음껏 드러내게 하려면 먼저 우리의 땅을 잘 일구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의 씨를 잘 키워 내어 저마다 삶에서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하여 창조주 하느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귀로 듣고 그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눈으로 확인하며 몸소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아직 이 신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 기쁨을 전하는 일입니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풍성하게 수확하지는 못하더라도 씨가 지닌 생명의 가능성을 믿어야만 다시 밭을 갈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고 씨의 생명력을 믿으며 오늘도 다시 호미를 듭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의심의 돌덩어리와 불신의 가시덤불을 걷어 내고, 말씀의 씨가 우리 삶에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날마다 정성껏 노력해야 합니다.
그 씨를 끝까지 믿고 돌보며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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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2. 연중 제15주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여러분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습니까?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호명환 번역)
진복팔단은 우리 삶의 우선 순위의 순서를 새롭게 정렬하도록 초대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진복팔단: 제1주간
여러분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까?
2026년 7월 11일 토요일
프란치스칸 수녀 패트리샤 조던(Sr. Patricia Jordan)은 우리의 마음이 변모되게 하는 길로서 진복팔단을 관상하라고 초대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발견하는 여정의 좋은 출발점은 진복팔단입니다. 진복팔단의 한 가지 해석은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치유와 인격의 통합(wholeness)을 향한 여정에서 여러분이 맞닥뜨릴 선택과 도전의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진복팔단은 우리의 인간적 본능이나 감정, 사고와 의지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역량에 따라 새롭게 정렬하고 재구성하도록 초대합니다. 성경적 언어로 이것은 "메타노이아", 곧 회심이라는 고통스러운 여정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여정은 자기중심적 사랑에서 무조건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먼저 다가오시는 은총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 삶 속에서 다양한 '광야 체험'을 거치 마음의 여정은, 우리가 그 과정에 충실히 참여할 때 하느님의 모상과 닮음을 회복시켜 줍니다. 당신 마음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잘못된 사랑과 삶의 관념을 벗겨내고 허물어뜨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진복팔단을 묵상하십시오….
진복팔단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여러분 마음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상처와 깨어짐의 영역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각 진복팔단을 따로 묵상해 보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할 때, 진복팔단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거짓 자아가 만족시키려 애쓰는 잘못된 안전의 상징, 권력, 그리고 자존심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마음입니다.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뵈올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진복팔단에서 말씀하신 '마음의 깨끗함'은, 애정과 지성, 그리고 의지가 하나로 통합되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을 전제합니다.
References
Patricia Jordan, An Affair of the Heart: A Biblical and Franciscan Journey (Gracewing, 2008), 52–53.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Minh Trí, untitled (detail), 2022,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잎 위에 맺힌 빗방울처럼, 진복팔은 하느님의 나라를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 방울씩 이루어 가는 처방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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