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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세계의 여러 신흥국들이 지난 수십 년간 경험한 도시 인구의 전례 없는 폭증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2050년에는 도시 거주민의 수가 현재 수준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이러한 도시 인구 증가분의 90%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UN Habitat, 2018). 그러나 다수의 개발도상국은 인프라 개발 및 산업화 그리고 인구집중에 따른 부정적 외부효과를 통제할 수 있는 공공역량이 부족하여 도시 인구 폭증 문제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이는 향후 개발도상국의 정책적 도전요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은 1991년 소련식 사회주의 중앙통제체제 붕괴 이후 급속한 도시화 및 지역개발 불균형 문제를 겪은 흥미로운 사례이다. 높은 의존관계를 유지해 왔던 기존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과의 관계가 단절된 데다가 자체적 역량 또한 부족했던 중앙아시아 5개국은,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목표 상충·예산 부족·공공기관 역량 미비라는 결정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여기서 이들 국가들이 참고할 수 있는 대표적 모범사례 중 하나가 바로 한국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과 유사한 도시화 과정을 밟은 한국은 전후(戰後)의 다양한 도전요소를 극복하고 도시 재개발 전략을 활용해 지역발전 불균형 및 단일 도시 편중 문제를 해소하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본고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유사한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지역개발 및 재개발 경험으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를 중심 주제로 논의하고자 한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도시 개발 문제
도시 재개발은 물리적 환경 개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경제·환경적 문제를 해소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도시계획의 한 방식이다. 이러한 구상에 포함되는 내용에는 주택 및 상업시설 개발, 주상복합단지 구성, 일자리 혹은 여타 서비스 및 시설 신규 제공 등이 있으며, 시행 기간이나 범위가 일반적 사례보다 크게 확대된 대규모 구상의 사례도 존재한다(UN Habitat, 2022). 또한 물리적 여건 개선이라는 전통적 의미에서 벗어난 사회·경제·환경·상업적 측면에서의 공간 활성화도 넓은 의미의 도시 재개발 개념에 포함된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를 띠는 도시 재개발 구상은 기존에 활용도가 저조했던 자산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기회요소를 분배함으로써 도시 지역의 번영과 삶의 질을 제고한다는 목표를 공통 핵심요소로 하며, 종종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2차 대전 이후 다수의 서방 선진국에서는 경제활동의 중심이 도시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구도심이 실업, 공공 서비스 질 하락, 주택·도로·공공지 관리 부실로 황폐화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는데, 그 결과 도심 거주민들이 여타 경제지구가 만들어내는 기회에서 배제되면서 이들의 도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전쟁 이후 인구 폭증을 경험한 북미·유럽의 여러 중앙·지방정부는 주요 도시의 낙후 지구 재건을 위한 재개발 구상을 중점 의제로 추진했다(Wagner et al., 1995).
개발도상국의 도시계획 및 경제성장 문제는 선진국의 유사 문제와 상이하다. 이러한 차이점의 구체적 사례 중 하나는 개발도상국의 촌락 및 교외 거주민들이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소수의 대도시로 이주하는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다. 동 현상은 제도적 역량과 투자, 전문기술의 부족을 겪은 개발도상국에서 경제활동이 일부 도시에 집중되는 발전 편중현상이 발생하면서 여타 지역이 생산성, 일자리, 인프라 수준 등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되는 경제적 불균형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과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1) 사이에 존재하는 도시개발 문제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특정 지역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방식의 단순한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실증적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형태의 사업은 효과가 불확실하며 당초 기대했던 목표 달성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Collins and Shester, 2013; Gibbons, 2018). 한 연구진에 따르면 지방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전략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사업활동이나 원칙 수립이 아닌,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친 수정을 통해 현지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Fitzgerald and Leigh, 2002, p. 7).
중앙아시아 5개국의 도시화 패턴 및 도시계획 현황
1991년까지 중앙아시아 소재 도시들은 단일 산업에 특화된 구조로 자국 경제보다 여타 소련 공화국 소재 도시 및 산업과 긴밀한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다른 공화국과의 연결고리를 상실한 다수의 구(舊)소련 국가들은 중앙계획경제 체제에서 탈피해 새로운 국가개발 방식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중앙아시아 5개국은 독립 이후 지금까지 도시 인구의 절대적 수와 상대적 비중 모두 증가하는 도시화 현상을 경험했는데, 특히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도시 인구 수는 급증했다(<그림 1> 참조). 이들 2개국과 투르크메니스탄의 도시 거주 인구 비중은 총 인구의 50%를 넘는다(<그림 2> 참조).
<그림 1> 중앙아시아 5개국의 도시인구 추이(단위: 100만 명)
자료: 세계은행(World Bank, 2020)
<그림 2> 중앙아시아 5개국의 총인구 대비 도시인구 비율(단위: %)
자료: 세계은행(World Bank, 2020)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 나타나는 도시 인구의 성장 과정과 배경은 국가마다 상이하나, 아래에서 설명하는 도전요소는 5개국 모두가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다.
- 광활한 영토를 지닌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각 도시가 지역간 네트워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수송 및 통신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 전체 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촌락 지역 일자리는 부족해지면서 이촌향도(離村向都) 경향이 심화되어 중·대도시에 더욱 많은 부담이 가해진다.
- 구소련 시절에 건설된 도시 인프라가 당초 예상보다 많 은 인구에 의해 소비되면서 사용연한이 한계에 달했고, 대규모 개보수를 위한 투자 소요가 발생했다.
- 사막화 및 녹지 훼손에 따른 도시 지역 대기오염과 폭염이 공중보건 및 환경 문제로 이어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도시계획 및 재개발 사례
한국도 전후(戰後) 급속한 도시화로 수도 서울로 투자와 인구가 집중되며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유사한 문제를 경험한 바 있는데, 한국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지역 간 개발격차와 소수 도시로의 인구 집중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적절히 해소한 선례로 중앙아시아 신흥국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전후(戰後)부터 지금까지 서울은 도로, 고속도로, 지하철, 고속열차(KTX 등), 항구, 공항 등 광범위한 핵심 수송 인프라 설치로 촉진된 도시화·산업화를 바탕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서울에는 하층민 거주구역이 점차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한 상업지구에 잠식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에너지 수요 폭증, 폐기물 처리, 교통, 주택, 도시 인프라, 거버넌스 과부하와 같은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도시 성장 관리계획은 1960년대에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부터 2000년대까지 서울의 도시개발은 거주민 중심성보다 재건축 등 유형자산 개선에 초점을 두는 성향을 보였다.
한편 한국이 경제적 고도성장을 경험한 1960~1990년대에는 한강 유역에 대규모 토목공사 사업이 다수 진행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먼저 1,000만 명 이상의 식수원으로 쓰이는 한강 유역을 정비해 유해 폐기물을 수거했고, 보다 최근에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하천 유역 개발이라는 직접적 개발효과와 주변 지역의 매력도 향상이라는 간접적 개발효과를 동시에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화에서 촉발된 문제가 점차 심화되자 한국은 2000년대부터 스마트시티 모델을 시험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해당 도시개발의 신경향은 거주민과의 대화나 시민 참여 확대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두는 인간중심적 접근법을 채택했다. 그 결과 서울의 도시 재개발 사업은 모든 이해관계자와 거주민의 참여를 독려하고 이들의 복리와 자립을 지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존의 공동체 및 문화자산 보존, 지속가능성 고려, 사회적 취약계층 강제이주 방지 등을 특징으로 한다(Oh, 2017). 이러한 도시계획 과정에서는 서울시청도 입안, 시행, 모니터링 전반에 걸쳐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다.
2003년 한국 정부는 도시 인구 증가 및 도시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IT기술을 도시 인프라에 적용하는 유비쿼터스 도시(Ubiquitous City) 모델을 수립했고, 2007년에는 IT를 인간생활 및 환경분야에도 확대해 적용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타났다. 2017년에는 해당 구상의 명칭이 스마트시티로 변경되었는데, 법령상 스마트시티는 통신네트워크, 지적 인프라, 도시 통합관리센터라는 요소를 지닌 도시로 정의된다(ADB, 2019).
한국에서는 스마트시티 전략이 전국에 도입되어 각지에서 신도시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서울 근교에 위치한 판교 신도시는 기업·상업 활동 중심지구로 기능하고 있으며, 특히 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벤처기업과 상주 근로자, 기술기업을 유치했다. 한국형 도시개발의 다른 사례로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통합수송체계를 갖춘 세종시, 그리고 중국과 거리가 가까운 서해안을 간척해 축제, 의료센터, 문화 관광 시설 등을 유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친환경 새만금 스마트시티 사업을 들 수 있다. 이 중 새만금 사업에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거주체계, 빅데이터 기반 수자원 관리체계, 그리고 주변 환경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스마트 폴(smart pole)이나 조명 설치 등 여러 신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ADB, 2019).
결론: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한국형 도시 개발에서 배울 점
도시 및 지역개발 분야 연구에 따르면 한국이 지역균형적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음의 요소가 존재한다(Youl, 2021).
- 도시계획에서의 체계적 협력: 정부, 시민단체, 학교, 민간부문 대표가 도시 재개발 과정에 모두 참여
- 예산 및 거버넌스 차원의 중앙집중 현상 단계적 완화
- 단일 도시에 국한된 발전을 방지하기 위한 지역별 허브로서의 혁신도시 개발
- 물리적 장소보다는 거주민에 초점을 두는 인간중심적 접근법 채택
- 양질의 계획과정 및 효과적인 시행·모니터링 관리
- 도시 재개발 사업에 통합형 IT기술을 적용하는 스마트형 개발
- 계획 단계에서부터 폐기물 처리, 대기 질, 녹지공간 확보 등 지속가능 요소 고려
지금까지 설명한 한국의 도시 재개발 경험은 한국과 판이하게 다른 사회·경제·정치·지리적 맥락을 지닌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5개국도 한국의 발전 경험을 참고하여 ▲도시 재개발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핵심 대표사업 추진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 ▲정책 계획·시행 과정에서의 관할권 중복 회피 및 개별 소관기관의 명확한 역할 규정 ▲기술적 역량 또는 전문적 식견을 갖춘 이해관계자의 개발사업 참여 및 지식이전·교육 기여 보장 ▲장기적 비전과 단기적 행동계획의 상보적 조화 등의 바람직한 특성을 갖춘 도시 개발 구상을 수립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 전환 경제가 직했던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 한국식 개발 모델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스마트 도시 계획 분야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이 기대되는데,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도시 개발을 지원하고 부정적 결과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적 역량을 향상시켜 왔다는 측면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스마트 도시 개발을 위한 ICT 솔루션 통합, 전자정부 개발, 계획 결정에 대한 민간 부문 및 주민 참여, 스마트 개발 재원 마련을 위한 스타트업 및 민간 부문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정부와의 협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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