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광풍’ 한국, 노벨의학상은 왜 못받나
세계 최고라는 임상의학, 연구 성과는 저조
‘반도체 4배’ 의료산업 키울 의과학자 절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들이 받는다는 소식을 들으며 의과학의 힘을 절감한다. 수상자인 커리코 커털린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는 mRNA 기술로 코로나 위기에서 인류를 구해내고 새로운 의료 시장까지 개척했다.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 모더나가 코로나 백신으로 이미 떼돈을 벌었는데 이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암 백신까지 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인 의학 연구와 상용화는 의사들이 주도한다. 이른바 의과학자들이다. 노벨상 첫 수상자가 나온 1901년부터 올해까지 생리의학상 수상자 227명 가운데 올해 수상자인 와이스먼 교수를 포함해 절반이 넘는 119명이 의사 출신이다. 글로벌 10대 바이오기업 CTO(최고기술책임자)의 70%가 의과학자라고 한다.
한국은 상위 1%의 수재들이 의사가 되지만 의과학계에선 존재감이 없다. 당장 돈이 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임상의학만 하려 들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국내 의과학자는 1300명으로 전체 활동 의사의 1.2% 수준이다. 미국에선 매년 의대 졸업생의 3.7%인 1700명이 의과학자의 길을 가는데 국내 40개 의대에서 같은 진로를 택하는 이는 30명에 불과하다. 학교당 1명도 안 되는 숫자다.
절대 숫자가 적으니 연구 성과가 초라하다. 한국연구재단은 2019년 노벨상에 근접한 국내 과학자 17명을 선정한 적이 있다. 생리의학 분야 학자로는 5명을 꼽았는데 이 중 의사는 방영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유일했다. 2010∼2020년 주요국의 피인용 상위 1% 논문의 국가별 점유율을 집계한 결과 임상의학은 17위로 전국의 의대 정원 다 채우고 남은 학생들이 간다는 재료과학(3위), 화학(6위), 공학(12위)보다 순위가 낮았다.
미국 비영리 학술사이트 리서치닷컴이 전 세계 의과학자들의 연구 영향력과 수상 경력 등을 지수화한 ‘2023 최고의 의과학자’ 순위는 충격적이다. 국내 1위는 앞서 언급한 방 교수였는데 세계 순위는 3315위다. 일본의 1위는 면역학의 석학인 아키라 시즈오 오사카대 교수로 세계 순위는 7위다. 한국의 1위 학자보다 앞선 일본 학자가 63명이나 된다. 반도체 시장(4400억 달러·약 600조 원)의 4배 규모인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1조7600억 달러)에서 한국 점유율이 2%밖에 안 되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2020년 기준).
우리도 임상의학 기초의학 이학 공학을 아우르는 의과학자를 매년 150명은 키워내야 한다는 얘기가 몇 년 전부터 나왔다. 그런데 의료계는 연구 중심 의대를 선정해 밀어 달라고 하고, KAIST 등은 새로운 의전원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논의가 멈춰 서 있는 상태다. 의전원을 설립하려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해 의료계 반발이 더욱 크다. 의대는 임상경험이 풍부한 대신 시야가 좁고, KAIST는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나 임상경험이 없다. 어느 쪽이 주도하든 의학과 공학을 융합해야 새로운 활로가 생긴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제는 결론을 내줘야 한다. 의과학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임상 쪽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돈 걱정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이다.
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에 이어 박태환 키즈들이 한국 스포츠의 새 기록을 쓰는 모습을 보며 롤모델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롤모델을 꼭 국내에서만 찾아야 할까. mRNA 연구로 백신과 치료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올해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좇아 소수의 병을 고치기보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고 바이오산업계의 삼성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은 젊은이들이 한국 의과학의 황금시대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