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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662
■ 2부 장강의 영웅들 (318)
제10권 오월춘추
제 40장 오자서(伍子胥)의 죽음 (3)
오왕 부차(夫差)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손성(公孫聖)은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꿈을 풀이해 나갔다."두 개의 가마솥에 불을 지폈는데도 안에 담긴 음식물이
익지 않았다는 것은 왕께서 싸움에 패해 도망다니며 화식(火食)을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
"다음으로 검은 개 두마리가 남북을 향해 짖었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은 빛은 음(陰)을 상징하는 것이며, 남북은 제(齊)나라를 비롯한 북방과 남쪽의 월(越)나라를
말합니다. 즉 음(陰)이 음 속으로 달려가니, 왕께서는 북(北)을 도모하다 남(南)으로부터
화(禍)를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때쯤 해서는 부차(夫差)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삽 두 개가 궁전 담에 꽂혀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함인가?"
"그것은 장차 월나라의 두 신하가 우리 오(吳)나라로 쳐들어와서 사직(社稷)을 파헤친다는
뜻입니다. 물이 전당 안으로 흘러든 것은 장차 파도에 휩쓸려 모든 방이 텅 빈다는 뜻입니다."
"또한 방 안에서 대장장이 쇠망치 소리가 들리는 것은 모든 궁녀들이 사로잡혀 탄식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동나무가 비스듬히 서 있는 것은 오동나무로 명기
(冥器, 죽은 사람 곁에 묻는 기물)를 만들어 순장(殉葬)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해야 하는가?""화(禍)를 면하는 길은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제(齊)나라를 치는 일을 중지하시고 간교한 말로 왕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간신들을
모두 궁에서 몰아내십시오. 그러면 오(吳)나라가 편안해지고 왕께서도 목숨을 부지하실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태재 백비(伯嚭)도 있었다. 그는 공손성(公孫聖)이 말하는 간신이 자기임을 눈치채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벼락 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요망한 말을 지껄이느냐. 너 같은 놈은 지금
당장 능지처참(陵遲處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손성(公孫聖)은 추호도 겁내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백비를 향해 꾸짖었다.
"그대는 높은 벼슬에 앉아 있으면서 나라에 충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찌하여 아첨하는 말만
일삼느냐? 후일 월(越)나라가 쳐들어와 우리 나라를 멸망시키면 네 목은 성할 줄 아느냐!"
"저...저...저놈이......!"
그렇지 않아도 공손성의 해몽에 기분이 무척 상해 있던 부차(夫差)는 더 이상 노기를 참을 수 없었다.
"저 무식한 백성놈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저렇듯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놈을 죽이지 않으면
누굴 죽이랴! 무사들은 무얼 하고 있느냐. 당장 저놈을 끌어내어 목을 베어라!"
공손성(公孫聖)이 끌려나가며 외쳐댔다."하늘이시여, 나의 죽음을 굽어 살피시라.
나는 바른말을 하다가 죽는다만, 땅속에 묻히기를 거부하겠노라. 바라건대 나의 시체를
양산(陽山) 밑에 놔두어라. 내 기필코 나의 해몽이 사실임을 증명해 보이겠노라!"
무사들은 단칼에 공손성의 목을 쳐 죽였다.부차(夫差)가 싸늘하게 명했다.
"좋다. 저놈 말대로 시체를 땅에 묻을 필요 없다. 양산 기슭에 던져놓아라. 들개들이 송장을
뜯어먹을 것이요, 들불이 그 뼈를 태울 것이며, 바람은 그 그림자를 지울 것이다.
그자가 어찌 나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겠는가?"오왕 부차(夫差)는 오기가 생겼다.
모든 대부와 장수에게 명을 내렸다.- 내 친히 중군을 거느리고 제(齊)나라를 정벌하리라!
그러고는 백비를 부장으로 삼고, 서문소(胥門巢)를 상군 대장으로, 공자 고조(姑曹)를
하군 대장으로, 그리고 전여(展如)를 우군 대장으로 임명했다.
BC 484년(오왕 부차 12년) 여름, 마침내 부차(夫差)는 10만 대군과 월나라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산동을 향해 호호탕탕 진격해나갔다.
그때까지도 제나라 장수 국서(國書)는 문수가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오나라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영채를 뜯어 남쪽 국경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임치에 있는 진상(陳常)이 동생 진역을 보내 새로운 명령을 시달했다.
- 오군은 이미 박(博) 땅과 영(贏) 땅을 통과하는 중이라 하오.
국서(國書)는 중군대장이 되고, 고무비(高無丕)는 상군 대장, 종누(宗樓)는 하군 대장이 되어
사수하시오. 이번 싸움은 우리 제(齊)나라의 흥망이 걸렸으니 북소리만 울릴 뿐 금(金)은 치지 마시오.
북은 진격의 신호요, 금은 퇴각의 신호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후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국서(國書)는 빠르게 움직였다.그러나 오군의 진격은 더 빨랐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
박(博) 땅과 영(贏) 땅을 함락시킨 후 애릉(艾陵)을 바라보고 북상하고 있었다.
애릉이라면 지금의 산동성 내무현 동남쪽 땅으로 제나라 영토 한복판이었다.
"오군의 진격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국서(國書)는 대경실색하여 얼른 애릉으로 달려갔다.
결국 제군과 오군은 애릉(艾陵) 땅에서 마주쳤다.
오군의 선봉부대는 서문소가 이끄는 상군(上軍)이었다.
제군의 중군 대장 국서는 장수 공손하(公孫夏)와 진상의 동생인 진역, 공손휘 등을 내보내
오군의 선봉부대를 섬멸케 했다.
제군(齊軍)의 결의는 대단했다. 장수 공손하(公孫夏)는 출격하기에 앞서 부하들에게 명했다.
- 모든 군사는 장례식 때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진군하라.진역(陳逆) 역시 수하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 죽으면 입 안에 넣는 구슬을 각자 지참하라.
이는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비장한 결심이었다.
공손휘(公孫揮)는 공손휘대로 제군의 사기를 높였다.- 군사들은 긴 밧줄을 준비하라.
오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깎기 때문에 상투가 없다. 목을 베면 밧줄로 그들의 머리를 옭아매야 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제(齊)나라 병사들은 벌써부터 대승을 거두기라도 한 듯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런 제군의 결의와 각오에 오군 선봉대장 서문소(胥門巢)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안간힘을 다해 싸웠으나 목숨을 내걸고 물밀듯 밀려드는 제군의 공격을 도저히 막아낼 길이 없었다.
"제군의 북소리가 마치 우렛소리 같구나."
서문소(胥門巢)는 겁에 질려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결국 첫번째 싸움에서는 제나라 군사가 오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했다.
서문소는 패장병을 거느리고 오왕 부차에게로 돌아갔다.
부차(夫差)가 대로하여 목을 치려 하자 서문소(胥門巢)가 얼른 말했다."이번 싸움은 제나라 군사의
실정을 몰라서 진 것입니다. 다시 나가 싸워 이기지 못하면 그때는 군법을 달게 받겠습니다."
태재 백비도 옆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권하는 바람에 부차(夫差)는 서문소를 용서했다.
그 날 저녁 노(魯)나라 장수 숙손주구(叔孫州仇)가 군사를 이끌고 와 오군과 합세했다.
오왕 부차(夫差)는 숙손주구를 위로하며 앞길을 인도하게 했다.
다음날 제군과 오.노.월 연합군은 다시 애릉 들판에서 결전을 벌였다.
오.노.월 연합군은 주변 지리에 밝은 숙손주구의 군대를 제1진으로 배치하고, 전여(展如)를
제2진으로, 공자 고조(姑曹)를 제3진에 배치했다.
그리고 전날 패한 서문소에게 월군 3천 명을 내주어 적을 유인하게 했다.
오왕 부차와 태재 백비, 그리고 월군 대장 제계영(諸稽郢)은 높은 언덕에 올라가 전세를 살피다가
상황에 따라 군사를 움직이기로 했다.제군(齊軍)은 전날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자신에 찬 눈빛으로 오.노.월 연합군 진영을 노려보았다.
오.노.월 연합군 진영에서 한 장수가 수십 대의 병차를 이끌고 앞으로 달려나오고 있었다.
새로이 월군을 지휘하게 된 서문소(胥門巢)였다.
제군 대장 국서(國書)가 공손휘를 돌아보며 명했다.
"저놈은 전날 우리에게 패해 쫓겨간 장수다. 이번에는 저놈을 사로잡도록 하시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공손휘(公孫揮)가 창을 휘두르며 병차를 몰아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기세가 매우 흉포했다.서문소(胥門巢)는 공손휘를 맞아 몇 번 칼을 휘두르다가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음인지 병차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손휘는 놓칠세라 서문소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그 패주는 제군을 유인하기 위한 서문소의 계책이었다.5리쯤 달렸을 때였다.
별안간 일성 포향이 울리더니 오른편 구릉 뒤편에서 한떼의 군마가 달려나와 공손휘의 앞을
가로막았다.서문소(胥門巢)도 말머리를 돌려 협공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차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공손휘(公孫揮)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제군 대장 국서(國書)는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장수 공손하(公孫夏)는 나가 공손휘를 도우라!"
공손하(公孫夏)가 바람처럼 달려 오.노.월 연합군을 헤집기 시작했다.싸움은 팽팽했다.
663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663
■ 2부 장강의 영웅들 (319)
제10권 오월춘추
제 40장 오자서(伍子胥)의 죽음 (4)
이번에는 오군 쪽에서 또 한 떼의 군사를 출전시켰다.
제2진에 포진하고 있던 전여(展如)가 달려나와 공손하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전세는 오.노.월 연합군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었다.국서(國書)는 다소 초조했다.
이대로 나가다간 패배가 분명했다. 좌우에 대기하고 있던 고무비(高無丕)와 종누(宗樓)를
돌아보며 외쳐댔다."그대들은 전군을 이끌고 나가 오군을 섬멸하라!"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을 신호로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제군(齊軍)이 일제히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오군 진영에서는 공자 고조(姑曹)가 출격했다.
마침내 양측 군대는 전군이 동원되어 한덩어리로 엉키게 되었다.
높은 언덕에 올라 싸움을 바라보던 오왕 부차(夫差)는 오군이 점차 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제(齊)나라 군사들이 마치 살기를 포기한 듯 달려드는반면, 오(吳)나라 군사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부차(夫差)는 입술을 깨물며 태재 백비에게 하령했다.
"그대는 중군 1만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움을 도우라."
말을 마친 부차는 친히 징채를 쥐고 옆에 놓인 금(金)을 힘차게 두드렸다.
그런데 이 금 소리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원래 금(金)은 후퇴의 신호였다.
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순간, 제(齊)나라 군사들은 제각기 생각했다.
- 우리에게는 앞으로 나가는 것만 있을 뿐 후퇴 명령을 내릴 리가 없다. 아마 오(吳)나라 군사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나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던 제(齊)나라 군사들은 오군이 퇴각할 것이라 예상하자 다소 여유가 생겼다.
긴장을 늦추고 긴 숨을 쉬었다.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오(吳)나라 군대는 북방과 달리 금(金)소리로 돌격 신호를 삼고 있었던 것이다.
제(齊)나라 군사들이 잠시 공세를 늦추는 사이 백비의 1만 군사가 벼락같이 싸움터로 덮쳐들었다.
고전하던 오군 병사들도 부차(夫差)가 친히 두드리는 금(金) 소리를 듣자 힘을 내어
일제히 돌격전을 벌여댔다.눈 깜짝할 사이 전세는 역전되었다.
오군(吳軍)은 용기백배했고, 제군(齊軍)은 어지러움에 빠졌다."흩어지지 마라!"
국서(國書)가 악을 써댔으나 이미 전열이 무너진 제군을 제어하기는 힘들었다.
제(齊)나라 군사는 엎어지고 자빠지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승기를 잡은 오(吳)나라 장수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제군을 조여나갔다. 제군을 셋으로 갈라놓은 후 교묘하게 포위했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제군의 열세였다.제군 장수 여구명(閭丘明)이 국서를 향해 다급히 말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전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수께선 속히 옷을 바꿔입고 달아나십시오.
일단 퇴각한 후 다시 싸울 계책을 세우는 것이 상책입니다."국서(國書)가 탄식했다.
"우리 10만 군사가 졸지에 패했으니, 내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주공을 대하리오!"
국서는 말을 마치자 긴 창을 휘두르며 오군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끝내 국서는 무명 병졸들의 칼을 맞고 쓰러져 죽었다.
여구명(閭丘明)은 수풀 속에 숨어 있다가 노나라 장수 숙손주구에게 사로잡혔다.
공손하(公孫夏)는 오군 장수 전여에게 포위당한 끝에 병차에서 떨어져 밧줄에 꽁꽁 묶이었다.
공손휘(公孫揮)는 서문소의 칼을 맞고 죽었다.
종누(宗樓)는 공자 고조의 활을 맞아 숨이 끊어졌다.
- 오.노.월 연합군 대승!제나라 장수 중 살아 돌아간 자는 고무비(高無丕)와 진역(陳逆)뿐이었다.
그 외의 장수와 군졸들은 대부분 죽거나 사로잡혔다.제나라 병차 8백 승(乘)도 고스란히 오나라
전리품이 되었다.임치성에 있던 제간공(齊簡公)은 제나라 군사가 대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대경실색했다. 반면, 오나라 군대의 손으로 정적들을 대거 제거한 재상 진상(陳常)은 속으로 기뻐했다.
'이제 나를 견제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제간공에게 간(諫)하여 많은 황금과 보물을 바치게 한 후 오왕 부차에게 화평을 청했다.
- 앞으로 제(齊)나라는 이웃나라와 싸우지 않고 두터운 친선을 맺겠습니다.
오왕 부차(夫差)는 제나라의 요청을 수락하고 개선가를 부르며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 해 가을의 일이었다.오성으로 돌아온 부차(夫差)는 기고만장했다.
그는 특히 제나라 정벌을 반대한 오자서에게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고 싶었다.
일부러 오자서(伍子胥)를 불러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보라, 지난날 그대는 나에게 제(齊)나라를 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듯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그대는 지난날의 그대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가?"
오자서(伍子胥)는 부차의 오만함과 옹졸함에 화가 치밀었으나 눌러 참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하늘이 사람이나 나라를 망칠 때에는 먼저 조그만 기쁨을 주고, 그런 후에 큰 근심을 내리는 법입니다.
이번에 왕께서 제(齊)나라에 승리한 것은 작은 기쁨에 불과합니다. 신은 장차 닥쳐올 큰 근심이
두렵기만 합니다."오자서(伍子胥)가 잘못을 시인하고 굴복하기를 바랐던 부차(夫差)는
오히려 그가 자신을 질책하자 흥겨운 기분이 싹 가셨다.
"내가 한동안 그대를보지 않아 마음이 상쾌했는데, 이제 그대를 보니 마음이 다시 어지럽구나!"
그는 오자서의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휭하니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부차(夫差)의 눈에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한 곳만을 응시했다.그런 그의 얼굴은 흡사 얼빠진 사람 같았다.잠시 후 그는 외쳤다.
"이상한 일이다!"백비(伯嚭)를 비롯한 모든 신하가 물었다."왕께서는 무슨 일이십니까?"
"방금 전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네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고 서 있다가 불현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또 기둥 옆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북쪽을 향하여 섰던 자가 남쪽을 향하고
서 있던 자를 칼로 쳐서 죽였다. 그대들은 이것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신들은 보지 못했습니다.""괴이하도다. 내가 헛것을 보았단 말인가?"
부차(夫差)가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오자서가 불쑥 끼여들었다.
"그것은 하늘이 왕에게 조심하고 삼가하라는 계시입니다.""그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사람 넷이 등을 기대고 섰다가 사방으로 흩어진 것은 오(吳)나라가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징조입니다. 또 북쪽을 향하고 있던 사람이 남쪽을 향하고 있던 사람을 쳐죽였다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반역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신하가 임금을 죽일 징조입니다."
"왕께서는 매사 조심하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뿐 아니라
왕의 신상에도 해가 닥칠 것입니다."부차(夫差)는 입만 열었다 하면 자신을 비방하는
소리를 해대는 오자서(伍子胥)가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대는 나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렇듯 상서롭지 못한 말만 지껄이는가?
나는 이제 그대 얼굴만 봐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오자서가 뭐라 대답하려는데 태재 백비(伯嚭)가 재빨리 아뢰었다.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것은 좋은 길조입니다. 천하 모든 나라가 사방에서 오(吳)나라로 달려와
왕에게 조례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왕께서는 주(周)왕실을 대신해서 천하를
다스릴 것입니다."부차(夫差)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얼굴빛을 풀었다.
"경(卿)의 말을 들으니 답답하던 가슴이 일시에 풀어지는 듯하구나. 오자서는 이제 늙어 망령이
들었나보다. 나는 그의 말에 괘념치 않을 것이다."오자서(伍子胥)는 이미 남은 생애에 미련이 없었다.
그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태재 백비(伯嚭)를 비꼬았다.자신의 할 일을 다하겠다는 작정이었다.
"아아, 슬프도다. 충신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간신들은 제 세상을 만난 양 마구 떠들어대는구나.
이러고서야 어찌 오(吳)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장차 이 나라 종묘사직(宗廟社稷)은
폐허가 되고 이 궁궐 또한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부차(夫差)는 다시 벌컥 화를 내었다.
"저 늙은 것이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지금까지 선왕에게 끼친 공로를 생각하여 죽이지 않고
참아왔다만, 이제는 더 이상 놔둘 수 없다. 차후로 오자서(伍子胥)는
결코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마라!""신에게 충성과 신의가 없었다면 이미 선왕께서도
저를 신하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께서 신을 보고 싶어하지 않아도 신(臣)은 이 나라를 위해
왕 앞에 계속 모습을 나타내겠습니다."부차와 오자서 간에 생긴 골은 더더욱 깊어갔다.
66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