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했다.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 획책으로부터 그가 체포된 새해 1월 15일까지 44일간을 말한다. 결과가 다행이라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심한 내란통을 앓았다. 전국민이 아프다.
하지만 이제 변곡점을 지났다.
윤석열씨는 내란 우두머리로 기소되어 재판받을 것이 분명하다. 검찰 수사에서 김용현 전 장관 및 주요 임무 종사자들을 통해 사건의 진상은 거의 확인됐다. 윤석열씨 본인의 확인만 거치면 기소와 유죄 판결은 시간문제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변론준비절차에서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의 본질은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가 헌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쟁점을 명확하게 했다. 판단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쟁점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월말 또는 3월 초에 넉넉히 인용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내란이 진압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국가는 윤석열로 인해 피멍이 들었다. 윤석열의 내란은 모든 것을 후퇴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에는 파시즘의 씨앗이 뿌려졌다.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떠돌던 그 세력이 국회 원내정당 안으로 스며들었다. 계엄 지지를 외치며 민주주의적 헌법질서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극단주의 세력은 기복 종교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충성하며 망언과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극우정치의 머신으로 진화하고 있다. 위태위태하게 명멸하던 극단주의 정치의 씨앗은, 우리 사회 심장에 뿌리를 내리고 암으로 자라났다.
가뜩이나 윤석열씨 집권 2년반 동안 추락하고 있던 경제는 내란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이 겹쳐져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내상을 입었다. 감세로 역대급 재정적자를 내고 있던 정부 재정은, 비상계엄 와중에 짜여진 비정상적 예산으로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삼성전자마저 휘청거리는 경쟁력 위기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우리 경제를 더욱 불안한 눈으로 보게 만들어 놓았다. 투자 유치도 거래처 발굴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우리는 무너진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두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다시는 윤석열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이 망친 경제를 끌어올려야 한다.
첫째, 다시는 윤석열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제도는 총칼을 휘두르려는 의도를 가진 권력자 앞에 너무나 취약하다. 그런 권력자를 끌어내리고 수사하는 시스템도 허약하기 짝이 없다. 그 과정에서 국가를 누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느냐도 부실하게 정리되어 있다.
무엇보다 헌법과 법률을 개정해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을 더 강력하게 제약해야 한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 혼자의 결단이 아니라 입법부인 국회가 사전 승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파면사유가 생겨 직무정지됐을 때 그 파면사유에 복무했을 가능성이 높은 기존 국무위원들이 권한대행을 맡는 시스템은 논리적 오류가 있다. 권한대행을 국회의장이 맡도록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수처와 검찰과 경찰로 나뉘어 있는 수사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검찰을 기소전문기관으로 바꾸는 근본적 검찰개혁안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윤석열이 망친 경제를 끌어올려야 한다. 재정은 열악해지고 산업경쟁력은 취약해지는 우리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까지 앞둔 지금, 폭풍 앞에 서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편관세를 매기겠다는 폭탄발언을 한 데 이어,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가져오겠다고 선언하면서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우리 경제 번영의 이유가 된 자유무역질서가 흔들리고 있으며,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가지 않으면, 엄청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환경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체포되어 곧 파면될 대통령은 감옥에 갇혀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의 권한을 대행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사상 최약체 행정부 수반이다. 여야 정당들은 대선 준비에 돌입할 것이다. 4월말 5월초로 보이는 대선까지가 당장 걱정이다.
그 몇 달 동안,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을 향해 달려가며 북한은 스몰딜을 준비하고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로봇과 자율주행차를 놓고 일전을 겨루며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순위가 바뀌는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이 시간 동안, 나는 입법부와 우원식 국회의장의 역할을 주목한다. 현 시점에서 국회는 가장 정통성 (legitimacy)을 갖고 있으며, 지역구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점에서 역동적이며 (dynamic)이며 국회 상임위 활동과 입법조사처, 예산처 등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능력있는 (capable) 기관이다. 더구나 국회의장은 대선에서도 자유롭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제자문회의’를 구성하고 최상목 권한대행이 그 회의 결과를 집행하도록 해 이 기간 동안의 국가 운영을 해나갈 것을 제안한다. 최상목 대행이 계엄 선포 직후 만든 ‘F4 회의’의 확대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원식 의장을 중심으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이헌재 전 부총리, 조윤제 전 주미대사 등 경제 전문가들로 회의를 구성하자. 필요하면 이 기구의 외교안보 버전도 설치하자. 번갈아 정권을 담당하면서 진보쪽에도 이론과 현실을 겸비한 시니어들이 많다.
각 기관의 지원으로 충분한 실무진을 꾸려 현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신속하게 자문의견이 정리되도록 만들자. 이 회의가 몇 달 동안 한국의 외교와 경제 정책의 중심을 잡고 방향을 제시하며, 여기서 정해진 방향을 최상목 대행이 집행하며 전환과정을 관리해 보면 어떨까?
사회는 몸과 같아서,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복원된다. 하지만 복원이 완전한 회복은 아니다. 발병 전에 취약하던 곳은 치료 뒤에도 더 취약한 상태가 된다. 망가지기 전에 곪아 있던 곳은 복원된 뒤에 더 심각해진다. 나라를 40년 전으로 돌린 윤석열의 내란은 구속과 파면으로 진압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더 어려운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여전히 희망은 있다. ‘혜리포터’님이 전하는 워싱턴포스트의 ‘윤석열 체포’ 기사 댓글 하나를 읽어 보자.
“와, 저것 좀 보세요! 헌법과 법률에 충실한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을 존경합니다!!”
이 시간을 잘 관리해 또 하나의 변곡점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 우리는 세계적으로도 모범이 될 만한 수준 높은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