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렇게 말했더라면
몰리 하우스 지음 | 박슬라 역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상처받은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상처받지 않고 살기 어려운 만큼 상처를 주지 않고 살기도 어렵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하고, 인간관계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쉽게 어긋나곤 한다. 35년간 남녀노소 수백 명의 고민을 상담하며 하버드대학교 등에서 관계와 행복에 대한 임상심리 연구를 진행해온 심리학자 몰리 하우스 박사가 관계와 소통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좋은 사과(Good Apology)’ 대화법을 소개한다.
‘좋은 사과’는 단순히 잘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고 타인과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는 성숙한 관계 맺기의 과정이다. 저자는 사과를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사과하기를 어려워하는지를 생물학적ㆍ문화적ㆍ사회적으로 분석한 다음, 진정한 사과와 화해의 과정을 4단계로 나눠 각 단계에서의 구체적인 소통 방법을 안내한다.
절친한 친구와 잠시 연락을 끊었던 한 여성은 이내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예전처럼 지내려 했지만, 친구는 받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사과해도 친구가 마음을 열지 않자 그녀는 몰리 하우스 박사와 함께 다시 처음부터 ‘좋은 사과’의 단계를 밟기로 했다. 이번에 그녀는 친구에게 사과하는 대신 물어보았다. “내가 연락을 끊었을 때 네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어?” 친구는 그녀의 연락 두절이 어릴 적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던 트라우마를 건드렸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야 진심으로 친구의 마음에 공감하며 다시 대화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있는 남편과 재혼한 어느 여성은 자신이 그들을 모두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남편은 수치심과 무력감을 느끼며 나약한 태도로 “정말 미안하다”, “힘들어하는 걸 보니 내 마음도 속상하다”라고 몇 번이고 사과했다.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과로와 “미안해”의 상태만 반복되었다. 결국 남편은 다시 처음부터 ‘좋은 사과’를 하기로 했다. 감정적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대신 아내가 힘든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기 시작했고, 마침내 육아와 생업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단순히 잘못한 부분만을 가지고 “미안해”라고 말하거나 감정적으로 공감하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고 설명하며, 생채기 난 부분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관계에서 틀어진 부분을 실질적으로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밖에도 외도한 연인, 형제자매 사이에서 늘 뒷전으로 취급당해온 여자, 결혼식 전날에 있었던 일 이후로 4년 동안 어긋나 있었던 부부, 재혼한 아내의 아이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남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무너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 상담실을 찾아오고, 저자는 용기를 낸 사람들과 마주 앉아 까다롭고 무거운 과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감정적으로 튀어나오는 말하기 실수나 잘못된 대응 방식을 짚어주고,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가장 진실하고 효과적인 표현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똑같은 “미안하다(I’m sorry)”라는 말을 하더라도 같은 사과는 아니다. 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상원 법사위원장 시절, 대법관 후보 클래런스 토머스의 인사청문회를 주관했다. 당시 토머스의 전 직장 동료였던 아니타 힐은 토머스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했지만, 바이든은 청문회에서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할 여성 증인 채택을 거부했고, 현장에서 그녀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며 모욕했다. 그는 28년간 사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다가 2020년 미국 대선에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서 “힐이 겪어야 했던 일에 대해 유감이다(I’m sorry)”라고 말했다.
반면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수십 년 전 캐나다 정부가 LGBTQ2 시민들에게 저지른 억압 행위에 대해 사죄하면서 국가를 의인화하여 “미안하다(I’m sorry)”라고 표현했다. 그 후 생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재정적 보상과 법률 개정을 약속하고 실천했다. “미안해”라는 말에 진심을 담기 위해서는 표현법을 세심하게 고르고, 추후에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저자는 이처럼 유명 인사의 공개 사과를 비롯하여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 사법적인 절차 등 사회나 조직에서의 사과와 의사소통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 밖에 관계에서 중요한 ‘심리적 안전감’ 형성하기, 탁월한 조직의 소통법인 ‘완전한 솔직함’, 내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선택적 무주의’와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죄책감’ 등 수십 년간 수집해온 자료를 소개하면서 사과의 의미를 넓고 깊게 다룬다.
왜 우리는 관계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사과하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사과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실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주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라도 상대의 예민한 지점을 건드렸다면 큰 상처가 된다. 내 행동이나 말하기 습관에 문제가 있었거나, 내 감정에만 집중하느라 상대 입장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과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워낙 가까운 사이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 여겨서 흐지부지 넘어가기도 한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 같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는 더 곪고 덧쌓여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이 되어간다. 저자는 수백 명이 넘는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개인이 입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사람들 못지않게 본인의 실수와 잘못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내담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과는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나의 결점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인생관은 물론 성격까지 개선될 수 있다”라고 하는 저자는, ‘좋은 사과’를 통해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과 심리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으며, 실수나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알게 되고,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힘이 생기면서 죄책감과 수치심을 덜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상호 간의 사과 행위에는 강력한 정서적 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과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
저자는 수십 년의 상담치료 경험과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정리한 ‘4단계 사과 모델’을 제시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무조건 경청하며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1단계), 명확하고 진솔한 언어로 후회와 반성을 전달한 후(2단계),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이나 문제 해결을 통해 관계를 바로잡고(3단계), 추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분명한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다(4단계). 관계 맺기에 서툴러 힘들어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담담히 돌아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줄곧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가이드를 따라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저자 몰리 하우스(Molly Howes)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임상전문의 과정을 수료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임상심리학 박사, 하버드 커뮤니티 헬스 플랜의 박사 후 연구 과정을 수료한 임상심리학자이자 칼럼니스트다. ‘우울증이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 ‘부모의 암이 아이의 심리적 행복에 미치는 영향’, ‘1차 의료에서 정신건강 장애의 발생 및 확산’ 등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미국심리학회(APA)등 전문 단체를 위한 컨퍼런스에서 여러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뉴욕 타임스》의 인기 칼럼 코너인 ‘모던 러브’, 《보스턴 글로브 매거진》,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의 〈모닝 에디션〉 등에 논픽션을 게재했고, 발표했던 칼럼이 『미국 최고의 에세이Best American Essays』에 ‘주목할 만한 에세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몰리 하우스 박사는 35년 동안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의 환자를 폭넓게 상담하며 부부·연인·가족·친구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심리치료를 진행해온, 임상심리학 분야의 베테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