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식당
누군가가 차려 준 밥을 먹고 싶은 날, 그대들은 망설이지 않고 갈 식당이 있는가. 무람없이 드나들 수 있는 단골식당 한두 군데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삶이 조금 경쾌해진다는 뜻이다. 전적으로 밥을 책임져야 하는 전업주부들에게는 더 그렇다. 대충 살림을 꾸리는 B급 주부인 나로서는 비장의 무기나 마찬가지인 그런 식당이 있다. 집밥이 지겹다 싶은 날 불현듯 털고 일어나 그 집으로 간다.
밥집은 지붕만 있는 난전이다. 문도 벽도 없이 시장 한 귀퉁이가 그대로 밥집이다. 시멘트가 발려진 거친 바닥위에 스텐 소재의 육인용 식탁 여섯 개와 등받이가 없는 좁고 긴 의자, 일자로 마주보는 짧은 싱크대가 식당의 전부다. 말이 육인용이지 사실 사인용에 가깝다. 줄을 서는 손님들로 인해 부득이 끼어 앉다 보니 육인용이 된 식탁이다. 이 밥집은 아무 때나 가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여느 밥집과는 체계가 다르다. 우리들 사정에 맞춰 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밥 사정에 우리들이 맞추어야 한다. 일단은 오는 순서대로 앉아 다 같이 기다린다. 조금 기다리다보면 한꺼번에 밥이 놓인다.
식탁자리는 거의 다 찼다. 뜨끈한 숭늉 한 대접씩을 손안에 쥐고 미리 놓인 풋고추를 아삭거리며 밥이 놓이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 시간이 좋다. 이 집에서 밥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푸근하다. 장터 밥집 특유의 소박함과 꾸밈없음이 마음마저 느긋하게 한다. 오가는 사람구경과 곧 내 입으로 들어 갈 맛깔스런 보리밥 한 그릇의 기대가 기다리는 시간마저 즐겁게 한다. 몇 개의 화덕에서 밥과 된장국이 동시에 끓고 있다. 화덕은 연탄불이다. 아, 얼마 만에 보는 연탄불인가. 옛 생각이 난다. 뭉긋하니 밥 뜸 드는 냄새와 자글자글 된장 끓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겨운 하모니다. 영원한 본향의 냄새다. 온 몸으로 고향의 냄새를 맡으며 밥을 기다린다.
보리밥을 준비 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두 모녀를 바라본다. 오늘따라 거드는 아주머니가 없어 일하는 손발이 더 분주하다. 딸은 삼십대 중반, 엄마는 육십대 초반쯤이다. 딸은 가냘프고 엄마는 선이 굵다. 몸피는 달라도 둘 다 강단 있어 보인다. 장터에서 밥집을 하기에는 너무 젊은 딸은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의 무게가 스며있는 얼굴이다. 쌍꺼풀진 눈이 다부져 보이는 엄마는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내공과 이력이 엿보인다.
자글대는 된장국 간을 보면서 아주머니가 맵짠 손놀림으로 무생채를 무친다. 시원스런 칼질로 배추를 채 썰고 금방 삶은 콩나물에서 뿜어 나오는 허연 김을 휘저으며 갖은 양념으로 콩나물을 버무린다. 드디어 밥을 푼다. 구수하게 퍼져 나오는 보리밥 냄새가 우리들의 식욕을 다급하게 자극한다. 서른 개가 넘는 그릇들 위로 몇 번의 재바른 손길이 지나간다. 다년간 숙련된 감각으로 그릇 하나하나마다 같은 양의 밥을 깔축없이 담아낸다. 자칫 어느 한 가지가 빠질 법도 하건만 그네들의 솜씨는 여축이 없다. 밥 위에 나물들을 얹고 마지막으로 고추장 한 숟가락을 절도 있게 끼얹는 일련의 동작들은 몰두와 집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앞앞이 밥이 놓인다. 콩나물과 무생채가 푸짐하게 얹힌 보리밥과 짭짤한 된장국, 유난히 길고 늘씬한 풋고추가 이 집의 특제 쌈장 한 보시기와 나란히 놓인다. 오감을 자극하는 보리밥 한 상을 일단 눈으로 한 번 음미한다. 이런 보리밥을 또 어디 가서 먹을 수 있으랴. 기도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밥을 비빈다. 한 톨의 밥알도 흘리지 않으려는 알뜰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보리밥을 먹는다. 된장국도 떠먹고 풋고추도 씹는다. 풋고추의 아삭거리는 소리가 입 안 가득 미뢰를 자극한다.
‘노포’라는 말이 있다. 대를 물려 영업을 하는 오래 된 식당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백년식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유명인들이 다녀 간 흔적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우는 요즘 식당들과는 바탕이 다르다. 오로지 맛으로 승부하는, 말하자면 기타 등등은 아무것도 없고 핵심만 살아있는 식당이라고나 할까. 돈을 번다는 일차적 목적 이전에 자신이 만든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선대의 ‘그 맛’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관건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 보리밥집은 노포에 준하는 밥집이다. 대를 물려하는 집은 아니지만 대를 물릴 수 있는 집인 것은 분명하다. 보리밥집 모녀가 보여주는 밥을 만드는 방식과 태도 때문이다. 진짜배기다. 그네들은 그깟 보리밥 하나 만드는데 최선의 것들을 쏟아 붓는다. 식재료를 엄선하는 고집에는 그들만의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보리밥을 만드는 재료 중 어느 것 하나 얼렁뚱땅한 것이 있는가. 보리쌀은 언제나 햇것으로, 된장과 고추장은 직접 담은 것으로, 풋고추와 배추까지 오랜 단골농가에서 조달한다. 연탄불에 서서히 뜸들인 밥은 집 밥보다 더 고슬하다. 쌈장 하나에도 전력을 기울이지 않던가. 견과류를 부수어 넣은 쌈장은 좀 덜어오고 싶을 만큼 유혹적이다.
음식은 재료가 맛의 거의 대부분을 좌우한다. 단순한 음식일수록 기본 재료는 더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의 첫출발은 재료라는 것을 보리밥집 아주머니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네들은 기본을 알고 있는 드문 사람들 중 하나이다. 보리밥 짓는 자세가 바로 그들의 삶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손님들에게 하는 인사말에서도 그들만의 인생관이 드러난다. 아주머니의 인사법은 더도 덜도 아닌 중용이다. 호들갑스럽지도 불손하지도 않다. 최선을 다한 자의 만족과 여유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스며있다. 받으면서도 떨떠름한, 백화점 직원의 90도 각도의 절인사와는 그 내용이 틀리다.
변함없는 열정과 솜씨로 보리밥을 만들고 있는 두 모녀가 새삼 감탄스럽고 고맙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일사불란 손발이 맞는 모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일에 완전히 몰두된 모습은 하나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돈을 향한 큰 욕심 없이 일 자체에서 재미를 찾고 자신의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밥집 모녀. 그네들이야말로 갈모산방이다. 기본과 토대가 실종된 어지럽고 황량한 이 시대에 단비같이 귀한 모습이다.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알뜰히 먹고 난 뒤 밥값을 낸다. 천원 지폐 네 장이 송구스럽다. ‘잘 먹었습니다’ 이 인사에는 오늘 내가 한 말 중 가장 묵직한 진정성이 담겨있다. (오늘의 수필 3호)
약력/
2016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2016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2016계간 수필세계 봄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