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희망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아마 유일한 선물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본다.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 있을 때만 찬란한 것이 아닐까? 이루어짐 같은 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동경(憧憬)의 지속 속에서 나는 내 생명의 연소(燃燒)를 보고 그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만으로 메워진 삶을 내년에도 설계하려는 것이다. 동경과 기대(期待)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서).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는 날벌레의 생태를 관찰하던 중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날벌레들은 공중에서 떼를 지어 날지만, 분명한 방향이나 목적지가 없이 그냥 맴돌고 있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빙빙 돌고 있는 날벌레들 밑에 먹을 것을 가져다놓으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돌기만 하다가 죽어버리더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삶이 이와 같다. 동경과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날벌레의 움직임과 다를 바 없다. “희망은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파괴할 수 없는 고유한 선물이다. 희망은 죽음을 반박하는 논리이며, 미래를 발명하는 천재성이고, 우리를 신(神)에게 가까이 데려가는 모든 것이다.”<리젤 뮬러(Lisel Mueller)>.
그러면 우리의 동경과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5장 8절에서 “마음이 청결(淸潔)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하여 이를 알려 주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동경과 희망이 주는 행복은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여서 위선(僞善)이 없고 겉과 속이 같은 데에서 찾아온다. 우리의 이 행복은 진리를 경외하고 사모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겉으로 나타나 꾸밈이 없을 때에 찾아든다. 우리의 이 행복은 위선적인 내 마음이 들킬까 두려워 할 것이 전혀 없을 때 찾아드는 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떳떳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을 우리의 희망으로 삼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9절에서 “우리가 이 육체의 집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하여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후에 말하기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賞)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린도전서 9장 24절)”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상이 주어지니 그것은 하나님의 즐거움이 참여하는 것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태복음 25장 21절).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가 되면 인생은 잠간 보이다 사라지는 아침안개와 같음을 더욱 실감나게 느낀다. 공자는 ‘나이 칠십에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하였는데 그만은 못할 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성인(聖人)에 가까워지기를 바라보고 살자! 뭇 사람들의 허황된 말들에 치우치지 말고 진리만을 바라보고 무소의 뿔처럼 살아가자. 나의 생명과 기쁨은 오직 나의 내면세계의 영적, 인격적 성장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다만 인격을 믿을 뿐이다.”<존 메케인(John McCain)>.
2023. 7.22.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