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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 6 보내심을 받은 사람 - 요 1: 9 사람에게 비추는 빛
2. 참 빛으로 오심 ( 요 1: 6-13 )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 6 보내심을 받은 사람 -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
본문의 ‘요한’은 예수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던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주는 자 요한’이라는 뜻이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에 대해 세 가지를 증언한다.
첫째, 세례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로써 세상에 보내졌다.
둘째, 세례 요한은 참 빛에 대해 입증하려고 왔다.
그의 사명은 참 빛을 증언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8절에서도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다시 말한다. 주의 종들은 다 참 빛을 증언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셋째, 세례 요한은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해 그 참 빛을 믿게 하려고 왔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고 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였다.
* 마 3: 5-6, 11-12 –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1-4절까지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함축적으로 서술한 저자는 여기서 잠시 1세기 초반 팔레스타인에 영적인 쇄신을 일으키며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위해 터를 닦았던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본문은 세 가지 단어를 실마리로 하여 그 인물의 특성을 보여준다.
(1) 전치사 '파라'(*,'...에게서')
1절의 전치사 '프로스'가 서로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나타낸다면, '파라'는 친근하기는 하되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나타낸다.
(2) '보내심을 받은'(*, 아페스탈메노스)
'보내다', '파송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포스텔로'(*)의 주격 단수 남성 분사로서 70인 역(LXX)에서는 메시지나 임무를 위임받아 파송될 경우에 쓰였다.
이는 주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실 때 썼던 용어이다.
* 사 6: 8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러한 사실은 이 인물이 남성이며,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리스도의 선구자였음을 나타낸다(7, 8절).
그리고 '아포스텔로'의 완료 수동형을 사용함으로써 이 인물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대로 사역했던 사람임을 보여준다.
(3) '났으니'(*,에게네토)
부정 과거형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그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존재하는 말씀과는 달리 단지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2]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앞 문자에서 한 인물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관 복음에서 '세례 요한'이라고 명시한 것과는 달리 그저 '요한'이라고만 명명한다(19, 20, 26, 28절).
* 마 3: 1 -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 막 6: 14, 25 –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 눅 7: 20 -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이는 공관 복음서 기자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에 사도 요한은 자신의 저작이므로 이를 구별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 1: 7 빛에 대한 증언 -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
1]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본 절에서는 '증언자'로서의 세례 요한의 사역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다.
'증언'(*, 마르튀리아)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증언하다'라는 뜻으로서, 요한의 사역이 예수의 사역처럼 획기적인 신기원(新紀元)을 이룬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세례 요한 자신이 스스로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23절)로 비유한 데서도 드러났다.
2]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증언자 세례 요한의 증언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빛'에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3]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될 대상들을 명시한 '모든 사람'이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들은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란 유대 군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마치 아벨이 비록 죽임을 당하였어도 오히려 믿음으로 증언한 말씀이 남아서(히 11: 4)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영접하게 하는 역활을 수행한 것처럼, 그의 증거는 시공의 범위를 점점 더 확산하여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까지 미친다고 볼 수 있다.
* 히 11: 4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4]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자기를 인하여'의 헬라어 '디 아우투'(*)라는 표현은 3절의 '그로 말미암아'(*, 디 아우투)와 같은 단어이나 각기 그 성격을 달리한다.
3절에서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창조 시의 중보적 사역을 나타낸다면,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예비하기 위한 중간 매개로서의 요한의 사역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요한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려 함에 있었다. 비록 방식에 대해서 일말의 의구심을 표했던 적이 있었다.
* 마 11: 2-3 –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요한복음에 언급된 바대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언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했던 사람이다(15, 26, 27, 29-34절. 3:28-30).
요 1: 8 증언하러 온 자 -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
1] 그는 이 빛이 아니요
6-7절에 나타난 요한의 본질적 특성과 사역을 간략하게 요약한 본 절은 전형적인 히브리적 표현 방법으로서(2절 주석 참조) 요한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定立)하고 있다.
저자 요한이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명시했던 이유는 세례 요한의 사역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그가 죽은 후 하나의 당파로 고착되어 버린 요한의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2]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특히 저자 요한이 전도와 교육을 집중했던 에베소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 행 19: 2-3 –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계시를 소유한 초대 교회로서는 요한의 제자들을 복음의 빛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였다.
요 1: 9 사람에게 비추는 빛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
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빛은 지식과 의, 또 거기서 나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리킨다. 참 빛은 하나님과 인간과 구원에 대한 참 지식이며, 완전한 의이며, 거기에서 나오는 참 기쁨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인간과 구원에 대해 바른 지식을 주지 못하며 완전한 의를 주지 못하며 참 기쁨을 주지 못하는 거짓된 빛들이 많다.
참 빛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다.
빛은 장롱이나 상자 속에 두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사물을 비추기 위해 존재한다. 태양은 온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비추기 위해 하늘 높이 달려 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과 사람과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과 완전한 의를 주시고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1] 참 빛
6-8절에 걸친 세례 요한의 소개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던 4-5절의 주제가 본 절에서부터 다시 이어지고 있다.
'참 빛'(the true light, NIV)으로 번역된 원문은 '그는 참 빛이시다'(*, 엔 토 포스 토 알레디논)이며,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공동 번역)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 '참'(*, 알레디논)은 사도 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서 '거짓에 반대되는 참'(*, 알레데스)이 아니라 '불완전을 완전케 하는 참'(Calvin)을 의미한다. 따라서 '참'(true, NIV)이란 용어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빛의 세력인 성도들()의 참된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 롬 12: 5 -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엡 5: 8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살전 5: 5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또한 참 빛이신 주님께서는 말세에 어두움의 권세를 종식(終熄)시키고 빛의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 계 21: 9-27 –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 곧 세상에 와서
'세상'의 헬라어 '코스모스'(*)는 원래 질서와 연관된 의미를 지닌 용어로써, '각 부분이 모여서 잘 구성된 것'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이 용어는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 등이 질서 있는 상태에 있을 때 사용될 수 있었다.
그 후 헬라인 들은 각각 통일된 구성체들(*, 코스모이)이 질서와 조화로써 완전한 통일체를 형성한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각각의 '코스모이'들이 '코스모스'로 되는 근본적인 규준(規準)이 바로 '로고스'(*)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러한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다. 즉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당시 헬라적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헬라어로 성경을 기록하고 복음을 전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의 개념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사용하였다.
즉 신약성경에서 '코스모스'란
(1) 구약성경에서 사용한 '하늘과 땅'과 동의어인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우주'
* 출 20: 11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롬 1: 20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 인간 역사의 현장인 '지구’
* 롬 1: 8 -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3) 타락한 '인류' 등을 가리킨다.
* 요 1: 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따라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 절의 '세상'이라는 개념을 요약한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되었지만, 인간의 타락과 함께 부패된 곳, 다시 말해서 어두움의 세력인 사탄의 권세가 지배하는 곳이다.
3]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각 사람(*, 판타안드로폰)이란 인류라는 집단 또는 어느 단체와는 무관한 개념으로서, 실존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개체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여기서 빛은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존재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비취는 빛')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따라서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각 개인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신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구약 시대에서처럼 한 민족, 한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악 된 세상에서 중생(born again,NIV)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성도들 개개인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인 교회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서로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성도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형제자매들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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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움켜쥔 행복은 씨앗이지만 나누는 행복은 꽃이고 열매라고 합니다.
오늘도 꽃피고 열매 맺는 행복한 하루 힘차게 만들어 가시길 기원 합니다.💖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귀한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