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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무엇인가?
창 1: 28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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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라는 사람은 미국의 전설적인 부자입니다. 당시 그의 재산을 오늘의 가치로 환산해 보면, 현재 최고의 부자라 할 수 있는 빌게이츠보다 세배나 많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철저한 신앙생활 덕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라는 책을 보면 록펠러가 실천한 철저한 신앙생활은 세 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 철저한 성수주일, 그리고 담임목사에 대한 충성입니다. 교회 내부에서 볼 때 이 사람은 ‘좋은 교인’(good churchman)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록펠러에게는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잔혹한 독점 자본가’의 모습입니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책을 보면 록펠러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1870년대 스탠더드석유회사를 창설해 입법부를 매수하고, 철도업자들과의 비밀거래로 운임할인을 받고, 뇌물과 사보타지 공세를 펴 경쟁사들을 무력화시킨 끝에, 정유업 물동량의 90~98%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거대기업의 독점은 결과적으로 가격의 인위적 상승, 경쟁의 차단, 그리고 임금의 형편없는 저하를 초래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리고 스탠더드석유회사는 미국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이 되었다.”
교회 밖에서 볼 때 이 사람은 ‘나쁜 기업가’(bad businessman)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록펠러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좋은 교인이었고, 교회 밖에서는 나쁜 사업가였던 것입니다. 과연 이 사람을 ‘좋은 신자’(good christian)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주변에 록펠러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문제를 일으켜서 매스컴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가운데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교회에서는 좋은 평을 받지만 세상에서는 비난을 받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왜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처럼 일터에서도 인정받으며 일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일에 대해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들 뿐 아니라 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에 대해 같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오해를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일은 두 종류가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일에는 주의 일과 세상일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직접 관계된 일이 주의 일이고, 하나님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이 세상일이라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목회, 선교, 그리고 교회 봉사 같은 것은 주의 일이고, 직업으로 하는 일이나 세상에서 하는 일들은 세상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일의 가치에 차이가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주의 일은 귀하지만, 세상일은 그다지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일은 열심히 돈 벌어서 주의 일에 기여할 때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의 일에 마음을 쏟습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을까요? 창 21:22을 보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 3:23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말씀에서 주의 일과 세상일의 구분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께 하듯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당신이 집에서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이 마치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가치가 있다.... 수도사가 수도원에서 금욕생활을 하며 금식하고 기도하는 일은 위대한 반면, 주부가 요리를 하고 집안에서 청소하는 일은 보잘 것 없는 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일이라도 그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간주되며 수도사들이 금욕하는 생활보다도 더 귀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일과 세상일을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하는 일과 세상에서 하는 일의 귀천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하든지 세상에서 하든지 주의 이름을 하면 모두 주의 일이고, 또 그것들 모두를 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일에 대한 오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경이 말씀하는 일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일을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을까요?
1. 일은 복이다
성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 1:3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일하신 뒤 그 일의 열매를 보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즐기셨고, 그 열매를 기뻐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일은 하나님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창 1:28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시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뒤에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의 내용이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번성의 복입니다. 다른 하나는 땅을 정복하게 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일의 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창 1:22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복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복은 번성의 복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만 일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면서 맛보셨던 그 기쁨을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일의 복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창 3: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사람이 타락하여 범죄한 후 또 다른 형태의 일이 주어진 것입니다. 바로 먹고살기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결코 기쁘지 않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저주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일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을 주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을 주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하며 기쁨을 얻고 일을 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일하며 고통을 느끼며 일을 저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자 다비 레이(Darby K. Ray)라는 분이 주목할 만한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바로 [일, 축복인가 저주인가]라는 책입니다. 이 분은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은 일을 축복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은 요 10:10 말씀을 그 근거로 제시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삶을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삶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하는 모든 일을 복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복으로 바꾸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선 일을 복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그 일을 통해 복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최근에 재미있는 이름의 모임에 대해 소개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T.G.I.M.’이란 이름의 모임입니다. Thank God It’s Monday를 줄여서 만든 이름입니다.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이 이름은 의도적으로 ‘T.G.I.F.’라는 말과 대조시키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Thank God It’s Friday, 그러니까 주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뜻과 대조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주말을 기다리는 이유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일이 고통이요 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주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월요일을 기다리자고 하는 것은 일을 기쁨이요 일할 수 있음을 복으로 여기자는 것입니다. 이 모임은 함께 모여 일과 영성을 성경적으로 묵상하면서 일을 복으로 여기며 살려고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쪽입니까? TGIF입니까? TGIM입니까? 물론 한 주 동안 일하느라 수고했기 때문에 재충전을 위해 쉬는 일은 중요하고 쉼의 달콤함도 큰 기쁨이긴 합니다. 그래서 TGIF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불평하며 TGIF를 말한다면 문제입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마치고 TGIM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이 주는 기쁨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일할 수 있음이 복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함 속에서 TGIF를 TGIM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일의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일은 소명이다.
소명이라는 말은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맡아서 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소명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떠올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 4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마 4:19-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부였던 두 사람을 사도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어부의 일을 포기하고 사도의 길로 나섰다는 것입니다.
자칫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소명은 세상 일을 포기하고 주의 일을 위해 나서는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실제로 목회자들이 소명 받았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리고 선교사들도 소명 받았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장사하는 분들이 소명 받았다는 말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직장인들이나 공무원 같은 분들이 소명 받았다는 말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직업은 밥벌이라는 오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사하는 것, 직장에 다니는 것, 그리고 일터에서 일하는 것은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직업은 밥벌이로 하는 것이고, 여기서 돈 많이 벌어서 주를 위해 쓸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창 1:28 후반부를 보겠습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사람에게 위임하셔서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소명이요, 바로 이것이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복인 것입니다.
창 2:15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 주신 소명이요, 이것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소명으로 일을 주셨습니다. 그 일은 경작하는 것이고 지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노동이요 일입니다. 결코 목회사역이나 선교사역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고,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고, 이것을 유통시키고, 사람들의 삶의 환경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 그 모든 일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직업을 ‘천직’이라는 뜻의 ‘vocation’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 자체로 부르심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밥벌이’를 뜻하는 ‘job’이 아니라 ‘천직’이라는 뜻의 ‘vocation’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뒤 달라지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면 밥벌이로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과 소명으로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밥벌이로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목적이 돈을 버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면 언제든지 하는 일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일은 수고일 뿐이지, 기쁨도 없고 그 안에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다음으로 소명으로 일하는 사람은 목적이 다릅니다. 그 일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일하면서 기쁨을 누리게 되고 보람도 찾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명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일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합니다. 예술에 종사하는 분들은 음악, 문학, 미술, 디자인, 영화 등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는 부르심을 느낍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사업을 번창하게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부를 창출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더불어 잘 살게 하라는 부르심을 느낍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전문인으로 일하라는 부르심과 직장을 화목한 일터로 만들라는 부르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부르심에 헌신합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차원 높은 기쁨을 누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일하니 너희도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과 보람을 느끼도록 주신 복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단순히 이 일은 밥벌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터에서 일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을 새롭게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일이 복이고, 또한 일이 사명이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