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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포일낙(季布一諾)
계포가 한 번 한 약속이라는 뜻으로, 초나라의 계포는 한 번 승낙한 일이면 꼭 실행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음에서 비롯하여 틀림없이 승낙함을 말한다.
季 : 계절 계(子/5)
布 : 베 포(巾/2)
一 : 한 일(一/0)
諾 : 허락할 낙(言/9)
(유의어)
계포일낙(季布一諾)
계찰계검(季札繫劍)
계찰괘검(季札掛劍)
계포일락(季布一諾)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일낙천금(一諾千金)
출전 :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
마음속의 언약까지 굳게 지킨다는 계찰(季札)의 계찰괘검(季札掛劍)만큼, 계포(季布)라는 초(楚)나라 무장의 이름이 들어간 이 성어도 약속의 가치를 말해주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장부의 한 말이 천금같이 무겁다는 우리 속담도 있듯이 계포(季布)의 승낙을 받는 것이 일백 근의 황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한 말에서 왔다.
계포(季布)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두고 각축하는 초한(楚漢) 전쟁 때 양쪽에서 모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이 강했고 한번 약속을 하면 끝까지 지키는 사람으로 평이 났다. 처음 항우의 장수로 출전해 여러 차례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계포(季布)는 쫓기는 신세가 됐다. 천금의 상금을 걸고 계포(季布)의 목을 노렸지만 사람들은 신망을 받았던 그를 숨겨줬다. 주가(朱家)라는 협객은 유방의 측근에 손을 써 계포(季布)를 사면되게 했을 뿐 아니라 더하여 벼슬을 얻게 했다. 적지에 있게 되었어도 그는 시비가 명확하고 성심을 흐리지 않아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당시 초나라 사람으로 조구(曹丘)라는 사람이 뛰어난 변설로 실력자와 어울리고 있었다. 왕의 외숙인 두장군(竇長君)에게도 뻔질나게 드나들자 계포(季布)는 조구(曹丘)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편지를 보냈다.
이 말을 듣고 조구(曹丘)가 도리어 소개장을 갖고 계포를 만나러 왔다. "초나라 사람들의 말에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승낙을 얻는 것이 더 낫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 득황금백근 불여득계포일낙)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동향인데 돌아다니며 당신의 이름을 천하에 날리게 할 수 있는데 어찌 멀리 하십니까?"하고 말했다.
계포는 조구를 받아들이고 그 후 각국에 선전을 하여 더욱 명성을 높이게 됐다. 사기(史記) 계포난포(季布欒布)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계포일낙(季布一諾)
중국 초(楚)나라 장수인 계포의 한 번 승낙은 백금(百金)을 얻기보다 더 소중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에, 초(楚)나라 사람 계포는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이 강해 한번 좋다 라고 약속한 이상에는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이런 계포가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천하를 걸고 싸울 때 항우의 장수로서 출전해 몇 차례 유방을 괴롭혔는데,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계포의 목에 천금(千金)의 현상금이 걸려 쫓기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고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고조(高祖) 유방에 천거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는 사면과 동시에 낭중(郎中)이라는 벼슬을 얻었고 다음의 혜제(惠帝) 때에는 중랑장(中郎將)에 올랐다. 그는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도 의로운 일에 힘썼으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신임과 존경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흉노(匈奴)의 선우(單于)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여태후(呂太后)에게 깔보는 투의 편지를 조정에 보내온 일이 있었다. 이에 진노한 여태후는 흉노 징벌을 위한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먼저 상장(上將) 번쾌(樊噲)가 나서며, "저에게 10만 병력을 주십시오. 소신이 오랑캐들을 깨끗하게 쓸어 버리겠습니다"라고 큰소리쳤다.
당시는 무슨 일이나 여씨(呂氏) 일문이 아니고는 꿈쩍도 못하던 때이다. 신하들은 여씨 일문의 딸을 맞아서 여태후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번쾌에게 잘 보이려고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때였다. "번쾌의 목을 자르십시오" 하며 감히 나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계포였다.
계포는 "한고조께서도 40만 군대를 거느리고 정벌에 나섰다가 평성(平城)에서 그들에게 포위당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10만으로 흉노를 응징하겠다는 것은 망발입니다.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오랑캐와 시비를 벌이고 있을 때 진승(陳誠) 등이 그 허점을 노리고 일어났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에게서 입은 상처는 오늘까지도 아물지 않았거늘 번쾌는 이것도 모르고 위에 아첨하기 위해 천하의 동란(動亂)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포의 강한 신념에 찬 목소리에 좌우 신하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계포의 목숨도 이제는 끝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태후는 즉시 폐회를 명하였고 그후 다시는 흉노 징벌을 입에 담지 않았다. 여태후는 계포의 신의(信義)를 믿고 이 사건을 덮어두었던 것이다.
초(楚)나라의 조구(曹丘)는 변설가(辯舌家)이며 권세와 금전욕이 강한 사람으로 경제(景帝)의 외숙 뻘 되는 두장군(竇長君)의 식객(食客)으로 있었다. 계포는 두장군(竇長君)에게 "조구는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이라고 듣고 있으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때 여행에서 돌아온 조구가 두장군에게 계포에게 보낼 소개장을 써달라고 부탁하러 왔다. 두장군은 계포가 보낸 편지를 보이며, "계포는 자네를 싫어하니 가지 말게" 하고 말했다.
그러나 조구는 억지로 소개장을 써 달라서 계포를 찾아가,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백냥을 얻는 것은 계포의 한마디 승낙을 받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得黃金百 斤不如得 季布一諾)?" 하며 계포를 칭찬했다 한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계포일낙(季布一諾)을 간단하게 줄여 계낙(季諾)이라고도 했으며 또는 금낙(金諾)이라고도 하여 틀림없이 알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또 당대(唐代) 위징(魏徵)의 술회시(述懷詩)에, 계포는 한 약속을 거듭하는 일이 없고, 후영(候瀛)은 약속한 한 마디의 말을 중히 여긴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에 해당할 것이다.
약속은 실천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 행동의 준칙, 원칙이기도 하다. 약속은 내세우는 것보다 충실한 이행이 중요하다. 빈말에 그치면 불신을 자초하고, 불이행이 반복되면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게 된다. 위선자로 전락하고 만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 만한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고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약속은 미학(美學)이다.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계포일낙(季布一諾)은 지금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세상은 꼬이게 마련이다.
계포일낙(季布一諾)
초나라의 조구가 계포에게 '황금 백 냥을 얻는 것은 계포의 한마디 승낙을 받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로 계포가 약속을 잘 지키고 신의로웠음을 칭찬한 것이 바로 '계포일낙(季布一諾)'의 유래다.
이 약속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고 인간으로 하늘 아래에 존재할 수 있도록 유지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한다. 약속은 자기의 생활 유지에 도움을 줌은 물론 자기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운전자의 상호간 약속은 각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동차가 직진을 하면서 좌측 깜빡이를 넣는다면, 우측통행이 시행되는 나라에서 좌측통행으로 운전을 하거나 파란 신호에 출발하지 않고 빨간 신호에 출발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그러므로 약속은 인간 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동시에 안전을 보장해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초심으로서의 약속 또한 그렇다. 이 약속은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일 수도 있고 공약으로 자리할 수도 있다.
결혼은 배우자에게 신의를 지키며 자식을 잘 기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약속이요, 교사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초심을 가지고 교단에 선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예전에 했던 나이팅게일의 선서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환자를 내 몸처럼 돌봐주고 잘 치료하겠다는 다짐의 표시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며 헌법이나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드리는 선서는 일국의 백성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다.
그런데 초심의 약속을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면 어찌 될까. 결혼한 부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거나 일가족이 동반자살까지 하고, 사업가가 열심히 회사를 운영하여 이익을 창출하기보다 개인의 이익을 챙기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다. 또 명망 있는 정치가가 뒷돈의 유혹에 넘어가 옥중에서 한탄하며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왕왕 본다.
그러므로 약속은 초심을 지키는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약속은 내가 한 말을 책임지는 것이다. 뱉은 말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역시 사기에는 약속과 연관되는 '미생지신'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내용인즉,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사람이 마을 하류에 있는 다리 밑에서 은밀히 여인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단다. 그런데 기다리는 여인 대신 비가 오는 데도 오직 약속을 지키고자 요지부동하다가 다릿발을 붙들고 익사한데서 비롯된 고사다.
남아일언 중천금을 보여주는 사례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죽 당시 사람들이 신의를 우습게 알았으면 이런 고사가 살아 있을까만 그래도 미생은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은 졌다.
우리가 약속을 소홀히 여긴다면 사회에 원칙이 사라지게 된다. 원칙이 힘을 잃는 사회에서는 규범이나 법까지도 구속력을 잃게 되므로 먼저 약속의 소중함을 살피고 살아야 할 것이다.
계포일락(季布一諾)
의협심과 자존심이 강한 계포가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후에 이 말은 위정자가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글자의 뜻은 '계포(季布)가 한번 한 약속'이라는 뜻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에 전하는 말로 의협심과 자존심이 강한 계포가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후에 이 말은 위정자가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1. 위정자의 지켜지지 않는 말만 난무하는 시대
약속을 지키는 일은 신뢰의 근원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가 약속을 지키는 일은 국민에 대한 존경과 책임의 표현이다. 만약 정치 지도자가 이전에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민은 그런 정치 지도자를 외면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때는 그가 한 말을 스스로 지키지 않거나 스스로 폐기하여 그 말과는 정반대의 언행을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한 약속과 말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런 위정자들은 전혀 부끄러움을 가지지 못하고 버젓이 말장난처럼 둘러대며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에 대한 강성 지지자들이 그런 것에 관계하지 않고 무조건 지지하는 왜곡된 정치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법이 수없이 공포되어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많고, 국민이 알지도 못하는 법도 많다. 수많은 의혹이 있어도 규명되지 않고 의혹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나라의 고위층과 정치 지도자들이 스스로 한 말을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뒤집고 식언(食言)하는 경우도 많다.
야당 대표는 스스로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해 놓고 막상 자기가 체포동의안의 대상이 되자 그 뒤에 숨었다. 그리고 여러 야당의 의원들이 그 불체포 특권을 이용하여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그런 민주당은 그들이 앞장서서 불체포 특권을 폐기하겠다고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말들은 모두 시궁창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최근에 국민 여론이 좋지 않자 또 야당 대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지켜질까?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악용하는 사례는 민주당을 넘어 국민의 힘을 포함한 전반적인 문제점이다. 그러니 정치 개혁을 이루고 정치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어렵다.
한 나라의 개혁과 풍속 정화의 성공은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과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와 직결된다. 그것은 공약의 실천과 관계되며 특히 국회의원은 자기들이 입법한 법을 앞장서서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 특권 뒤에 숨어 법을 어기며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위에서부터 고위직에서부터 법을 지키지 않고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니 법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그러니 풍속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각종 범죄는 점점 늘어난다.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들에게 들은 말이다. 제소자들의 대부분이 자기들이 벌을 받는 것을 지은 죄에 대한 당연한 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죄에 비해 심한 처벌을 받고 있으며 억울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이 벌을 받는 것은 돈과 백이 없어 변호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탓이며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로는 감옥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한다는 것이다. 법 적용의 공평함에 대한 강한 불만이며 우리 사회의 불공정에 대한 항거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고위층과 정치 지도자들, 돈 있는 사람들은 처벌을 덜 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법과 법 적용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 것을 대변해 준다. 우리나라에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 법 적용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이유,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자기들이 한 말을 지키지 않고 이전에 한 말을 스스로 뒤엎는 일을 별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어디에 있을까?
위정자들 특히 정치인들의 지켜지지 않는 말이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인들의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며 나라의 기강도 국가가 약속을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말이다. 이즈음에 중국 한나라 초기 계포의 고사인 계포일락(季布一諾)을 돌이켜 본다.
2. 계포일락(季布一諾)의 유래와 의미
진나라 말기 초(楚)의 항우와 한(漢)의 유방이 천하를 걸고 각축전을 벌일 때였다. 이때 의협심이 많고 기개가 높았던 계포(季布)는 항우 수하의 장수였다. 그는 항우의 장수로 출전하여 수차례나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는 초기에는 승승장구하여 천하를 손에 쥘 것 같았으나, 날이 갈수록 성격에 포악해지고 독단적이었던 지라 장수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민심을 잃어 갔다.
반면에 유방은 민심을 얻고 유능한 장수들이 늘어나 기세가 높아갔다. 결과는 유방이 항우를 꺾고 승리하여 한나라를 세웠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초한 전쟁 시절 자기를 집요하게 괴롭힌 계포를 죽이기 위해 계포를 잡아 오는 자에게 천금의 현상금을 걸었다. 계포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계포를 아는 사람들은 계포를 신고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었다.
백성들의 여론은 유방이 계포를 용서하여야 하며 관리로 등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돌았고, 계포를 한 고조(高祖) 유방에게 천거하는 지사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유방은 고심 끝에 계포를 사면하고 등용하여 낭중(郎中)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계포는 정직과 올곧은 자세로 관직 생활을 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고조의 뒤를 이은 혜제(惠帝) 때에는 중랑장(中郎將)에 올랐다.
궁정 안의 정치판에는 권모술수가 난무했다. 그러나 계포는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주장하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줏대를 지켰으며 매사에 정성을 다했다. 계포의 이러한 모습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런 계포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흉노(匈奴)의 추장 선우(單于)가 당시 황실의 최고 권력자인 여태후(呂太后)를 업신여기고 깔보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어전회의가 열렸다. 진노한 여태후가 말했다. "이 괘씸한 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제일 먼저 상장군(上將軍) 번쾌(樊噲)가 나서서 자신만만하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저에게 10만 병력을 주십시오. 제가 오랑캐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습니다."
당시는 여씨 문중이 실권을 쥐고 있었던 터였다. 더욱이 번쾌는 여씨 문중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여태후의 총애와 신임을 받고 있었다. 하여 여태후의 비위를 맞추고 그 눈치만 살피던 아첨하는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오"하고 번쾌를 치켜세우며 맞장구를 쳤다.
그때였다. "번쾌의 목을 베어야 하오!" 크게 소리치며 나선 사람은 바로 계포였다. 아첨배들은 어리둥절했다. 계포는 말을 이었다. "고조황제께서도 4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정벌에 나섰다가 평성(平城)에서 그들에게 포위를 당하여 고초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번쾌가 고작 10만 대군으로 그들을 모조리 무찌르겠다고 나서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를 바보로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옛날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오랑캐들을 무찌르겠다고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쏟아 국력을 낭비하였기 때문에 진승(陳勝) 등이 그 허점을 노리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시점에 흉노를 치겠다고 나서는 것은 새로운 동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10만 대군으로 흉노를 정벌하겠다고 나서는 번쾌와 그에 동참하는 이들은 모두 그런 동란을 재촉하는 아첨배들이니 그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계포의 결의와 신념에 찬 목소리에 좌중은 새파랗게 질렸다. 좌중의 신하들은 내심으로는 '이제 계포의 목숨도 끝장났구나'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후는 화를 내지 않았다. "모두 물러가시오." 즉시 여태후는 폐회를 선언했다. 그후 여태후는 두 번 다시 흉노정벌을 입에서 꺼내지 않았다.
그 무렵이었다. 조구(曺丘)라는 초나라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변설가로 유명했으며, 권세와 금전욕이 강했다. 그리하여 조정 내에 세력을 가진 환관(宦官)인 조담(趙談)이란 자의 비위를 맞추어 내통하고 후원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景帝)의 외숙뻘 되는 두장군(竇長君)의 집에도 자주 출입하여 두장군의 식객이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계포는 두장군에게 "조구는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는 사람이니 믿을 수 없습니다.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때 여행에서 돌아온 조구가 두장군을 찾아와 계포를 찾아갈 것이니 소개장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두장군은 "계 장군은 자네를 좋아하지 않네, 안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라고 하면서 계포의 편지를 내보였다.
그래도 조구는 계포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소개장을 써 달라며 졸랐다. 두장군은 마지못해 소개장을 써 주었다. 소개장을 받은 조구는 즉시 계포에게 편지를 보내 방문의 의사를 밝혔다. 조구의 편지를 받은 계포는 "네 놈이 나를 찾아오겠다고? 어디 두고 보자. 내 혼줄을 내 주겠다." 계포는 화가 나서 벼르고 있었다.
조구는 마침내 두장군의 소개장을 들고 계포를 찾아갔다. 그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한 마디 승낙을 얻는 것이 더 값지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고 하며 다니는데 이제는 그것이 속담처럼 되어 퍼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연유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본래 같은 고향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장군의 소문을 천하에 퍼뜨리고 다니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장군의 명성은 초나라와 양(梁)나라에만 퍼져 있는데 내가 각처를 돌아다니면서 장군의 소문을 퍼트리면 장군의 명성은 천하에 알려질 것입니다."
계포는 그 말을 듣고 내심 기뻐하면서 "내 그대를 받아들이겠소" 하고는 조구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손님처럼 귀한 대접을 하였다. 조구는 계포의 집에 몇 달 동안 머물다가 떠났다. 그후 계포의 명성은 천하에 알려졌고 후세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계포가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는 의미로 계포일락(季布一諾)이라 하였으며 이를 줄여 계락(季諾) 혹은 금낙(金諾)이라고 하였다.
그후 당나라의 위징(魏徵)은 "계포는 한 번 한 약속을 거듭하는 일이 없고, 후영은 약속 한마디의 말을 중하게 여긴다(季布無二諾 候瀛重一 言)"고 술회시(述懷詩)를 썼다. 유사한 말로 일낙천금(一諾千金)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계찰괘검(季札掛劍) 계찰계검(季札繫劍) 등이 있다.
3. 풍성한 열 마디보다 지켜지는 한 마디가 나라 기강을 세운다.
지금도 정치인들의 말은 풍성하다. 가는 곳마다 풍성하게 약속하고 자기들의 업적을 내세운다. 그 풍성한 말들은 말을 더 만들어 내고 여야 간은 풍성한 말로 싸움만 한다. 그러다 보니 말은 지켜지지 않고 말장난이 되어 버리고 말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않고 비아냥거리면서 또 그들을 찍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고 정쟁만 폭증하며 풍속이 어지러워지고 있다.
조선 시대 당쟁이 그랬고 구한말 서구 열강이 침탈해 올 때도 그랬다. 지켜지고 실천되지 않는 말만 풍성한 정치 사회는 문제만 양산하고 분열만 초래되어 풍속이 사나워진다. 어쩌면 우리나라 국민이 정치적으로 팬덤화되어 다투고 서로 이간질하는 것도 지켜지지 않는 풍성한 말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풍성한 말이 아니라 지켜지는 한마디의 말이다. 정치인들은 한마디 말을 책임 있게 하여야 하며 내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한다. 우린 그런 정치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 이전의 중국 고대 진(秦)나라는 풍속이 사납고 법이 지켜지지 않았다. 조정에서 법을 공포하여도 지키려는 사람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콧방귀만 뀌고 다녔다. 이유는 조정 관리들조차 풍속 교정의 필요성은 역설했지만 스스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도 지키지 않았다.
진나라 효공 때 이런 진나라를 개혁하고자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었다, 이에 위(衛)나라 서공자(庶公子) 출신의 상앙이 지원하여 효공에게 여러 차례 유세하여 진나라 좌서장(左庶長-진나라의 관직으로 재상 다음의 자리)에 발탁되어 전반적인 국정 개혁을 도맡았다. 이에 상앙은 진나라의 법을 엄격하게 강화하여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상앙은 처음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 놓고 바로 공포하지 않고 기다렸다. 섣불리 공포해 봐야 사람들이 믿고 지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먼저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상앙은 궁리 끝에 세 길이 넘는 나무를 남문 옆에 세워두고 ‘이 나무를 북문에 옮겨 심는 자에게는 상금 10금을 주겠다’고 포고했다. 그러나 누구도 믿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상금을 50금으로 올려 포고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나타나 혼자 힘으로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심었다.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 50금을 주어 진나라에서 공포하는 새로운 법은 거짓이 없음을 증명해 주었다. 백성들은 하나둘씩 새로운 법을 지키기 시작했다. 상앙이 새로 공포하는 법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반드시 신상필벌로 다스렸다. 그것은 진나라를 개혁하여 강성한 나라로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 (사마천 사기 상군 열전)
기강이 문란하였던 진나라를 개혁하여 7웅의 우두머리로 우뚝 서한 한 것은 상앙의 강력한 개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하는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뒷날 지나치게 엄한 법의 폐단은 컸다. 어쨌든 상앙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에서 한번 한 약속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믿음의 구축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치적인 말과 약속은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하면서 한번 한 말과 약속은 꼭 지켜진다는 믿음이 국민에게 주어져야 한다. 국민의 일상생활에서도 약속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은 약속에 관한 한 아직 수준이 미약한 것 같다. 그것이 정치인들의 식언을 방치하고 난무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모른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말을 신중하게 하여야 하며 한번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정치인과 정당을 만드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정치인, 말을 함부로 하는 정치인, 행동이 바르지 못한 정치인, 자기들이 천명한 말을 뒤집어엎는 정치인 들은 퇴출해야 한다. 그래야 바른 정치인들이 제자리에 선다.
이를 위해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말과 행동이 지켜지지 않는 정치인, 말과 행동이 바르지 못한 정치인과 정당은 응징할 수 있는 국민의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은 민주 질서를 바로잡는 길이기도 하다. 계포일락(季布一諾)의 고사를 보면서 정치일언중천금(政治一言重千金)을 생각해 본다.
계포일낙(季布一諾)
계포(季布)가 한 번 한 약속이란 뜻이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이른다. '사나이의 한 마디 말은 천금보다 무겁다'는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과 비슷한 의미다. '한번 한 약속은 천금과 같다'는 일락천금(一諾千金)과 같은 뜻이다. 출처는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이다.
진(秦)나라 말기, 초(楚)나라 사람 계포는 의협심과 책임감이 유달리 강해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켰다. 하루는 친구와 강을 헤엄쳐서 건너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되자 비바람이 몰아치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포는 약속 장소에 나갔다. 친구가 비바람이 잠잠할 때를 기다렸다가 뒤늦게 약속 장소에 달려가 보니 계포는 비에 흠뻑 젖은 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처럼 계포는 아무리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목숨을 걸고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이런 그를 두고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일낙을 얻는 것만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라고 했다.
계포는 유방(劉邦)과 항우(項羽)가 천하를 다툴 때 항우 휘하로 들어가 유방을 몹시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자 유방은 계포의 목에 천금의 현상금을 걸면서 그를 숨겨주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하겠다고 엄명을 내렸다. 계포는 수배자가 되어 쫓기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를 고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방의 친구인 하후영이 그를 천거했다. 계포는 하후영의 주선으로 유방을 알현했고 사면되어 낭중(郎中)이 되었다. 혜제(惠帝) 때에는 중랑장(中郞將)에 올랐다. 계포는 조정에서도 의로움을 지키고 잘못을 곧게 지적함으로써 존경을 받았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미덕(美德)이다. 그러나 세상 살다보면 약속을 해놓고도 부득히 지키지 못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상황에 따라 지키지 못하는 약속들이 많다. 그래서 약속을 이행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옛말에 '파이 껍질과 약속은 깨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도 있드시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약속은 앞으로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함을 이른다. 인간이 뭇 동물들과 다른 점이 지능, 감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약속을 간과할 수 없다. 약속은 올바름과 그릇됨까지 연결되면서 인간의 생활 중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심지어 국가 간에도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당위성의 존재이며 이를 어긴 자는 배반이라는 이름으로 응징의 대상이요, 영원히 함께할 존재가 못 되는 원수지간이 된다.
동양에서는 이를 믿음[信]으로 표기해 왔다. 고려말(高麗末) 조선초(朝鮮初) 문신(文臣) 권근(權近)이 자신의 셋째 아들 길천군(吉川君) 권규(權?)에게준 명문 네 가지(公, 勤, 實, 信) 중에서, 信에 대하여는 신즉불망지지이성 견수기의 무자변경(信則不妄持之以誠 堅守其意 毋自變更)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곧 '미더우면 경망하지 않나니 유지하기를 성심으로 하여 그 뜻을 굳게 지키고 멋대로 변경하지 말라.'
이러한 교훈으로 이어진 조선은 500여 년을 잘 지켜온 것이다. 반면 아부를 좋아하고, 아첨의 말을 신봉하는 정권은 반드시 일찍 멸망함도 함께 깨우쳐야 할 것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판에 온갖 현란한 내용의 약속들이 춤을 추고 있다. 정치인의 약속은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거꾸로 큰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어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고사를 떠올려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의 서글픈 단면이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정치는 사기(詐欺)다. 해당 후보가 신의가 있는 사람인지 국민들은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
▶️ 季(계절 계)는 ❶회의문자로 禾(화)는 벼, 보리 따위의 곡식, 子(자)는 아이의 의미로, 季(계)는 벼 따위가 늦되다, 키가 작다, 젊다의 뜻이 있다. 형제(兄弟)를 나이의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 한다. 또 계절(季節)을 이른 쪽에서 孟(맹), 仲(중), 季(계)로 나눈다. ❷회의문자로 季자는 ‘계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季자는 禾(벼 화)자와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어린아이를 그린 것이다. 季자는 이렇게 ‘아이’를 그린 子자에 禾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벼를 뜻했었다. 그러나 후에 ‘계절’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季(계)는 성(姓)의 하나로 ①계절(季節) ②끝, 마지막 ③막내 ④철(석 달) ⑤말년(末年), 말세(末世) ⑥젊다, 어리다 ⑦쇠미(衰微)해지다(쇠잔하고 미약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를 날씨에 따라 나눈 그 한 철을 계절(季節), 1년에 네 번 정기적으로 철마다 간행함을 계간(季刊), 계간으로 펴내는 회보 따위를 계보(季報), 상대자를 높이어 그의 아우를 이르는 말을 계씨(季氏), 사내 동생을 계방(季方), 아버지의 막내 아우로 막내 삼촌을 계부(季父), 계부의 아내를 계모(季母), 맨 끝으로 난 아들로 막내 아들을 계자(季子), 맨 나중에 낳은 딸로 막내 딸을 계녀(季女), 아우의 아내로 제수를 계수(季嫂), 새끼 손가락이나 새끼 발가락을 계지(季指), 손아래 누이의 남편을 이르는 말을 계매(季妹), 일년 가운데 마지막 달을 계월(季月), 어떤 시대나 세기를 셋으로 나누었을 때 맨 끝 무렵을 계엽(季葉), 겨울의 계절로 겨울철을 동계(冬季), 여름의 계절로 여름철을 하계(夏季), 많은 동생들을 군계(群季), 한 철의 반이나 한 해의 반을 반계(半季), 나이가 젊고 세상 물정에 어두움을 혼계(昏季), 계포가 한 번 한 약속이라는 뜻으로 초나라의 계포는 한 번 승낙한 일이면 꼭 실행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음에서 비롯하여 틀림없이 승낙함을 뜻함을 계포일낙(季布一諾),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히 여김을 계찰괘검(季札掛劍), 계씨와 맹씨 사이에 해당하는 대우를 하라는 뜻으로 상대편을 보아서 적절하게 접대하라는 말을 계맹지간(季孟之間), 형제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을 백중숙계(伯仲叔季) 등에 쓰인다.
▶️ 布(베 포/펼 포, 보시 보)는 ❶형성문자로 佈(포)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수건 건(巾; 옷감, 헝겊)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父(부; 한 집안 전체를 거느리는 가장을 뜻함, 포)로 이루어졌다. 넓게 편 천이나 천을 넓게 펴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布자는 '베'나 '펴다', '베풀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布자는 又(또 우)자와 巾(수건 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布자는 본래 '삼베'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래서 금문에 나온 布자는 몽둥이로 천을 두드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갈포(葛布)나 마포(麻布)와 같은 의류용 직물을 다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삼이나 칡덩굴로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布자는 직물을 다듬는 모습으로 그려져 '베'를 뜻했다. 그러나 후에 삼을 넓게 펴서 다듬는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펴다'나 '베풀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布(포, 보)는 ①베(가늘고 설핀 베) ②돈 ③조세(租稅) ④펴다 ⑤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⑥벌이다 ⑦걸쳐놓다 ⑧드러내다 ⑨벌여놓다 ⑩분포하다 ⑪전파되다, 번지어 퍼지다 ⑫씨를 뿌리다 그리고 ⓐ보시(布施: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보) 따위의 뜻이 있다. 뜻을 가진 한자는 나눌 반(頒)이다. 용례로는 자비심으로 남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을 포시(布施), 일의 장래를 위하여 미리 손을 씀을 포석(布石), 전쟁이나 경기를 하기 위하여 진을 침을 포진(布陣), 일반에게 널리 알림을 포고(布告), 종교를 널리 폄을 포교(布敎), 벼슬이 없는 선비를 포의(布衣), 품평회나 상점의 창안에 물건을 진열하여 늘어 놓음을 포진(布陳), 베와 무명을 포목(布木), 베나 무명 등으로 만든 휘장을 포장(布帳), 일반에게 널리 알림을 공포(公布), 두루 나눠 줌을 배포(配布), 세상에 널리 펴 알림을 선포(宣布), 벼슬이 없는 선비와 서민의 교제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지위를 떠나고 이익 따위도 바라지 않는 교제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포의지교(布衣之交), 벼슬이 없는 가난한 선비를 일컫는 말을 포의한사(布衣寒士), 포의는 서민의 옷으로 비천한 신분을 두고 이르는 말을 포의지위(布衣之位), 계포가 한 번 한 약속이라는 뜻으로 초나라의 계포는 한 번 승낙한 일이면 꼭 실행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음에서 비롯하여 틀림없이 승낙함을 뜻하는 말을 계포일낙(季布一諾), 양포가 외출할 때는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를 맞아 검은 옷으로 갈아 입고 돌아왔는데 양포의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짖었다는 뜻에서 겉모습이 변한 것을 보고 속까지 변해버렸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양포지구(楊布之狗), 별처럼 펼쳐져 있고, 구름처럼 퍼져 있다는 뜻으로 사물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성라운포(星羅雲布), 별같이 벌여 있고 바둑돌처럼 늘어 놓였다는 뜻으로 물건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성라기포(星羅碁布),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침을 일컫는 말을 제구포신(除舊布新) 등에 쓰인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諾(허락할 낙/락)은 ❶형성문자로 诺(낙/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동의하여 대답할 때의 소리 若(약, 락)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낙이라고 대답하여 허가하여 준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諾자는 ‘승낙하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諾자는 言(말씀 언)자와 若(같을 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若자는 양손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는 여자를 그린 것으로 ‘같다’나 ‘만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금문에서는 若자가 ‘온순하다’나 ‘순종하다’, ‘허락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니까 若자는 순종적인 여자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若자가 ‘같다’나 ‘만약’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여기에 言자를 더한 諾자가 ‘허락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諾(낙/락)은 ①허락(許諾)하다, 승낙(承諾)하다 ②대답(對答)하다 ③동의(同意)하다 ④따르다, 순종(順從)하다 ⑤허락(許諾) ⑥승낙(承諾) ⑦허가(許可)의 서명(署名)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이다. 용례로는 예 예 하면서 오로지 남의 말대로 순종하여 응낙함을 낙낙(諾諾), 허락함과 허락하지 않음을 낙부(諾否), 계약의 신청에 승낙함을 낙약(諾約), 제3자를 위한 계약에서 제3자에 대하여 채무를 지는 계약 당사자를 낙약자(諾約者), 승낙하는 말을 낙언(諾言), 노르웨이(Norway)를 낙위(諾威), 응낙을 낙유(諾唯), 승낙하는 뜻을 낙의(諾意), 응낙하여 좇음을 낙종(諾從), 청하고 바라는 바를 들어 줌을 허락(許諾), 요구를 받아들여 승낙함을 수락(受諾), 쾌히 승낙함을 쾌락(快諾), 청하는 바를 들어 줌을 승낙(承諾), 3수락의 원말로 요구를 받아들여 승낙함을 수낙(受諾), 감동하여 승낙함을 감낙(感諾), 달갑게 여기어 승낙함을 감낙(甘諾),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함을 연낙(然諾), 정식이 아니고 우선하는 승낙을 내낙(內諾), 승낙하지 아니함을 불낙(不諾), 말 없이 은연 중에 승낙의 뜻을 나타냄을 묵낙(黙諾), 승낙만 하고 실행하지 아니함을 숙낙(宿諾), 당사자 사이에 뜻이 서로 맞아야만 이루어지는 매매나 고용 따위의 계약을 낙성계약(諾成契約), 계포가 한 번 한 약속이라는 뜻으로 초나라의 계포는 한 번 승낙한 일이면 꼭 실행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음에서 비롯하여 틀림없이 승낙함을 뜻함을 계포일낙(季布一諾), 사전에 승낙을 받지 않고 일을 끝낸 뒤에 받는 승낙함을 사후승낙(事後承諾), 한 번 승낙하면 그것이 천금과 같다는 뜻으로 약속을 반드시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일낙천금(一諾千金), 무슨 일에나 승낙을 잘 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적어 약속을 어기기 쉽다는 말을 경낙과신(輕諾寡信), 일이 선악이나 시비에 상관없이 남의 의견에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따름 곧 남의 말에 맹종함을 이르는 말을 유유낙낙(唯唯諾諾), 한 사람이 소리내어 외치면 여러 사람이 이에 따름을 일호백낙(一呼百諾)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