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훈민정음`(1446)에서 `ㅎ`의 명칭을 `虛(허)`로 정하되 종성에서는 `ㅎ`를 쓰지 않았다. 그 후 최세진은 `훈몽자회`(1527)에서 `ㅎ`를 초성에서만 쓰는 글자라고 설명한 후 `屎(히)`로 기록했다.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1930)조차도 `ㅎ`를 종성에 쓰지 않았다.
그런데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을 기원으로 하는 한글맞춤법에서는 `ㅎ`를 `히읗`이라 칭하고 그걸 이상하게도 `히ㅤㅇㅡㄷ`이라 읽게 하며 `낳다, 좋다` 등의 종성에 쓰고 있다. 그러나 후음 `ㅎ`이 종성에서 설음 `ㄷ`이 된다는 현재의 가르침은 훈민정음의 원리를 무시한 비과학적 교육이다. 완벽했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서 꼭지 있는 동그라미(ㆁ)와 꼭지 없는 동그라미(ㅇ)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ㆁ`은 어금닛소리이며, `ㅇ`은 목구멍소리다. 이 분명한 체계가 최세진 이후 어그러지기 시작하여 현대인들은 훈민정음 언해본 `世(솅)`자를 보면 매우 당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종이) 땡땡땡"처럼 `솅[syeng]`으로 읽는 한국인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언해본 표기 `솅`의 종성 `ㅇ`은 묵음이다. 고로 `世(솅)`는 오늘날 방식과는 달리 `셰`로 읽어야 옳다. 언해본에서 종성이 `ㆁ`자로 적힌 `宗(조ㆁ)`자는 현대의 `종(宗)`과 똑같은 발음이다. 표기가 꼬여서 혼란스러울 것이다.
만약 세종께서 현대 표기의 `종`자를 보신다면 `조`로 읽으실 것이다. 목구멍소리 `ㅇ`은 종성에선 묵음이므로. 그래서 훈민정음 해례본 종성해 편 18장에서는 "ㅇ聲淡而虛, 不必用於終", 곧 "ㅇ 소리는 경미하고 텅 비어서 종성에 쓸 필요가 없다"고 명기했다. 세종께서는 그에 따라 `월인천강지곡`에선 종성에 `ㅇ`을 쓰지 않으셨다.
<사진>의 언해본에 보이는 `不(불)`자의 종성에 쓰인 목구멍소리 `ㆆ`은 `ㄹ`로 끝나는 우리의 한자음이 본래 촉급한 입성(入聲)이었음을 나타내기 위한 보완책으로 쓰인 것일 뿐, 묵음이어서 나중에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목구멍소리 `ㅎ` 또한 종성에 쓰는 것이 불필요하여 1933년 전에는 받침에 쓰인 적이 없었다.
우리말 받침의 본질은 `ㅋ`을 종성에 쓰면 `ㄱ`으로 변해버리고, `ㅍ`을 종성에 쓰면 `ㅂ`으로 변해버리듯, `ㅎ` 또한 써봤자 같은 계열의 후음 텅 빈 소리 `ㅇ`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산군의 탄압 이후 이 땅에서 해례본이 자취를 감춘 후에 시작됐다. 위와 같은 내막과 훈민정음의 이치를 살피지 못한 주시경을 시작으로 그의 제자들은 `ㅎ`자를 종성에 쓰고 싶은 욕망이 매우 강했다.
훈민정음의 중추인 `ㆍ`와 `ㆎ`를 없애버린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조차도 종성에 `ㅎ`자를 쓰지 않았고, 박승빈을 주축으로 한 조선어학연구회의 격렬한 반대에도 조선어학회는 종성 `ㅎ`자를 쓰는 것을 고집하였고, 결국 국가 교육방침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나를 낳으시고"를 발음해보자. `낳`의 발음이 `낟`이 맞다면 `낳으시고`는 `나드시고`가 돼야 하나 그렇지 않고 `나으시고`로 발음된다. 또 `낳다`는 된소리 `나따`가 아니라 `ㅎ+ㄷ^ㅌ`의 법칙에 따라 `나타`로 발음되니, 이는 `낳, 히읗`의 발음이 `낟, 히ㅤㅇㅡㄷ`이라는 이희승 등의 주장이 명백한 오류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해가 아니라 세뇌에 의해 `히ㅤㅇㅡㄷ`으로 읽고 있을 뿐이다.
무릇 목구멍소리는 목구멍에서 발원한 소리가 최종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혀나 입술 등에 의해 장애를 받아 구강 폐쇄되는 일 없이 나는 공허한 소리다. 그 개방된 `ㅎ` 소리가 폐쇄음인 `ㄷ`으로 발음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와서 종성에 `ㅎ`자를 쓰는 관습을 되돌리긴 어렵겠지만, 아이들과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세계인들에게 교육은 바르게 해야 한다. `히읗`의 발음은 `히ㅤㅇㅡㄷ`이 아니라 `히으`라고, 목구멍소리(ㅇㆆㅎ)가 종성에 쓰이면 모두 묵음이라고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뒤틀린 점들을 교정해야만 훈민정음은 균형 잡혀 그 과학성과 안정을 되찾고 "전무후무한 문자학적 사치"라는 말은 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