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0.7’에도 대책법안 손놓은 국회… 난임시술 지원법 공감하고도 2년 방치
“여야, 표심 영향 적은 법안엔 무관심”
2021년 11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보건복지소위 회의장. 이날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같은 해 1월 발의한 ‘난임 시술 지원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10개월 만에 소위 테이블에 올라왔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난임치료 시술비를 난임 부부의 소득 수준이나 시술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원하는 법안이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소위에서 “저출산 대책을 위해 상당히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난임 시술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도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했다. 정치 현안에 대립했던 여야가 해당 법안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낸 것. 하지만 이 법안은 이후 2년 가까이 다시 논의되지 않았다. 그사이 유사 법안만 5건이나 더 발의된 상태다.
국회가 논의를 멈춘 사이 제한 없는 난임 시술 지원은 의지와 예산이 있는 일부 지자체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대상은 중위소득 180%(올해 2인 가족 기준 세전 월 622만 원) 이하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맞벌이 부부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당의 한 의원은 “지역구 표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법안들은 처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올해 2분기(4∼6월) 합계출산율이 0.7명까지 떨어진 가운데 동아일보가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난임 시술 지원법처럼 저출생 극복과 직접 관련이 있는 7개 법률을 분석한 결과,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총 435건 개정안을 발의해 이 중 19건만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다만 통과 법안에 병합된 ‘대안반영폐기 법안’(총 52건)도 가결 법안으로 보기 때문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364건이다.
저출생 대책 법안 364건 국회서 낮잠… ‘인구특위’는 개점휴업
저출생문제 손놓은 국회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 법안 등 재정 마련책에 막혀 추가 논의 중단
인구특위 출범 열달간 회의 4번뿐
“문제 해결해야 할 의원이 호소만 해”
‘364건.’
21대 국회에서 계류 중인 저출생 극복 관련 7개 법률의 개정안 개수에서 볼 수 있듯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법안 발의 생색만 내고 정작 법안 처리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한 데 이어 올 2분기 출산율이 0.7명으로 더 떨어지면서 초유의 저출생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7개 법률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영유아보육법 △모자보건법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고용보험법 △아이돌봄지원법 △아동수당법 등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은 가장 많은 176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3건(대안 반영 폐기 15건)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입법권과 예산심사권이 있는 국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저출생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 법안 등 국회서 낮잠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달 ‘국정감사 재정·경제 주요 이슈’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육아휴직의 사각지대 문제 △낮은 육아휴직 급여 △제한적 주거지원 사업 등의 문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이들 문제를 해결할 다수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를 위해 21대 국회가 문을 연 지 3개월 만인 2020년 8월부터 국민의힘 태영호 김미애, 민주당 박광온 박용진 문진석 오영환 의원 등이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인 150만 원, 하한액인 70만 원으로는 현실적으로 소득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급여 문제 등으로 2021년 기준 육아휴직을 택한 남성 근로자가 26.3%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재정 마련 현실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이후 추가 논의가 멈춰선 상태다. 소관 상임위가 머리를 맞대 해결책이나 절충점을 찾기보단 정부의 재정 의지만 탓하며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인 것.
이 밖에도 현행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확대하는 법안,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 가능 기간을 2년 이내로 연장하는 법안, 배우자 출산휴가를 15일로 늘리는 법안 등도 논의 없이 국회에 쌓여 가고 있다.
여야는 저출생 극복이 최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8대 민생과제 중 하나로 저출생 극복을 꼽으면서 “인구 정책을 책임지고 총괄할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창설하는 문제를 여야정이 함께 고민하자”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올해 3월 ‘초저출생·인구위기대책위’를 출범시키며 “인구는 대한민국의 내일 그리고 존속 여부가 달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21대 국회 출범 직후 구성했던 당 저출생대책특위는 현재 사실상 문을 닫았고, 민주당의 당 초저출생대책위도 개점휴업 상태다.
● “인구특위 모여서 지역구 소멸 걱정만”
저출생 문제를 극복한다면서 만든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 구성 이후 이날까지 총 4차례만 회의를 열었다. 회의 시간만 따지면 12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2020년 6월 여야 의원 82명은 “정부의 저출산·인구절벽 관련 대책을 점검·심의하고 필요한 제도의 개선과 관련 정책에 대한 지원방안을 강구하자”며 인구특위 출범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렇게 문을 연 인구특위는 업무보고만 몇 차례 받다가 다음 달 말로 활동이 종료된다. 인구특위 관계자는 “입법권도, 예산심사권도 없는 특위이다 보니 당장 성과를 내기는 힘든 구조”라고 했다. 인구특위 소속의 한 의원은 “인구특위에서 뭘 한다는 방향성도 없이 어쩌다 한번 회의를 열면 모여선 지역구와 관련된 지역 소멸 얘기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호소를 듣고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데, 저출생 문제에 대해선 정부, 사회를 향해 오히려 ‘해결하자’는 호소만 하고 있다”며 “그러는 사이 인구위기는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