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항쟁을 이끌었던 한 386세대는 촛불시위대가 미국대사관 앞에 도착하자 탄성을 질렀다. 세종로, 미국대사관 앞은 성역이었다. 대한민국정부는 단 한번도 시위대에게 이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마치 대한민국 심장부를 지키듯 국민들에게 최루탄을 쏘며 미국 대사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오늘. 2002년 12월 7일 저녁 8시 17분.
미선 양 과 효순 양 추모식에 참석한 10대 청소년에서 칠순 노인까지의 2만 시민의 힘은 미국 대사관 앞을 함락시켰다. 그 자리에서 2만의 인파는 미선 양과 효순 양을 추모하며 주권회복의 의지를 다지며 힘차게 '아리랑'을 불러 재꼈다.
▲12월 6일 오후 6시에 시작된 촛불추모식은 밤 9시 30분경 끝났다. 2만 여 명이 모인 이날 집회는 미국 대사관까지 진격했으며 이들은 12월 14일 오후 3시 시청앞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했다.
9시 37분경 세종로에 모였던 시민단체 회원, 대학생 등은 각각 자신들의 깃발 아래 모여 정리집회 및 소감을 전달하고 휴지를 주우며 흩어졌다.
범대위 대표자들을 비롯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열린 광장에서 1주일째 철야노숙농성을 진행중인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을 방문한 뒤 서로 격려의 덕담을 주고받았다.
저녁 6시 10분경 촛불시위 행렬은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있었다.
추모식에 참석한 범대위 대표단은 효순 양과 미선 양의 부모님들과 함께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 쪽으로 행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와 경찰에 둘러싸여 교보문고에서 세종로 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추모행렬은 종로 쪽에서 출발한 인파를 비롯 교보문고 앞쪽과 동아일보 앞쪽에 밀집해 있었다.
추모행렬은 촛불을 들고 "효순이와 미선이를 살려내라" "한미SOFA 개정하라" "부시 대통령은 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아침이슬' 등을 불렀다.
▲심미선 양의 아버지 심수보 씨(왼쪽)와 신효순 양의 아버지 신현수 씨.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불평등한 한미SOFA를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외쳤다.
저녁 6시 37분 범대위 행사차량 5톤 탑차가 교보문고 앞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었다. 사회자 이상규 씨(한국청년단체연합 이적규정철회 비상대책위원장)는 "육중한 궤도차량에 효순이와 미선이 깔려죽을 때 얼마나 괴로웠겠느냐"며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라"고 목놓아 외쳤다. 그는 미선양과 효순양의 부모님을 소개하며 그분들은 이제 "우리들의 아버님이자 어머님"이라고 말하자 촛불시위에 모인 참가자들은 일제히 "아버님 힘내세요!"를 연호하며 행사차량 위에 오른 부모님들을 위로했다.
미선 양의 아버지 심수보 씨는 인사말을 통해 "추운 날씨에 이렇게 모인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한 뒤 "이제 우리 국민들의 힘을 모아 억울하고 불평등한 SOFA를 반드시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특히 심수보 씨는 "미선이와 효순이를 죽이고도 반성은커녕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저 미군을 그냥 보고만 있을 거냐!"고 토로한 뒤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파렴치한 미군을 몰아내자"고 분노의 함성을 질렀다.
"조지 부시는 사과하라!"
이어 효순 양의 아버지 신현수 씨는 "효순이 아빠입니다"라고 소개한 뒤 "날씨가 추운 데도 효순이와 미선이를 위해 여러분들이 나섰다"며 "SOFA 협정은 개선이 아니라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말해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받았다.
그는 또 "SOFA개정은 우리의 숙제이며 이 숙제를 결코 다음 후대에게 넘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미국이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는데,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죽어 갔느냐, 그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며 "이번만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사회자 우위영 씨(여중생범대위 문예위원장)는 다같이 '광야에서'를 부르자며 선창했다.
미선 양의 어머니는 "집에 있어도 되는데 억울해서 이 자리에 나섰다"며 "우리 착한 딸 미선이와 효순이를 위해서 나서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으며 바닥에 떨어진 휴지조각을 주우며 '비폭력'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때 촛불시위대 종로쪽 행렬 뒤편에서 난데없는 야유가 터져 나왔는데 알고 보니 종로에서 서대문 쪽으로 향하던 이회창 후보 선거차량이 지나간 것. 집회참가자들은 "이회창 가버려!"라며 고성을 질러 한때 기자들이 이회창 선거차량을 둘러싸고 프레시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사회자 우위영 씨는 "오늘 추모식에서는 촛불의 바다와 평화의 바다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참가자들은 일제히 촛불을 머리 위로 올려 밤하늘을 아름다운 불꽃으로 수놓기도 했다.
효순 양의 어머니는 인사에 나서 "날씨도 추운데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난 뒤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집회 참가자들은 "어머님 힘내세요!"를 연신 외치며 어머니의 눈물을 안타깝게 여겼다.
"누나들이 너무 불쌍해요"
저녁 7시 03분. 종로쪽만 바라보며 행사를 진행하던 범대위 관계자들은 광화문을 둘러싸고 점점 인파가 군집하자 마이크 방송을 통해 광화문을 중심으로 대열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경찰은 이에 부심하며 병력을 최대한 배치했지만, 운집한 시민들의 힘을 배겨내지 못했다.
7시 03분을 넘기자 행사차량을 중심으로 서대문쪽과 종로쪽, 동아일보쪽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사거리를 메워버렸다.
사회자는 큰 소리로 "광화문 사거리가 뚫렸다"고 말한 뒤 "미선이를 살려내라!" "효순이를 살려내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살인미군 처벌하라!" "SOFA 협정 개정하라!" 등을 외치며 분위기를 돋웠다.
오늘 집회에 엄마를 따라 왔다는 초등학교 3학년의 장현민 군은 "누나들이 너무 불쌍해요!"라며 "다음 집회에도 엄마랑 함께 나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1주일째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제단을 대표해 오늘 추모식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는 "국민여러분! 기나긴 세월동안 압박과 설움에서 이제 해방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나긴 세월을 기다려왔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한을 풀 것입니다. 이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앞으로 전진합시다! 민족자주 만세! 민족해방 만세! 자주통일 만세!"를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은 "미선이를 살려내라!" "효순이를 살려내라!" "한미SOFA개정하라!" "조지 부시는 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한밤의 찬바람을 이겨냈다. 이날 집회는 마치 월드컵 응원전을 보는 듯 했는데, 침울하게 아리랑을 부르다가도 월드컵 응원가 '아리랑'이 흘러나오면 허공을 퐁퐁 뛰어오르며 신나게 춤추며 '아리랑'을 따라부르기도 했다.
사회자 이씨는 "오늘 이 집회는 전국 34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진행중인데 전국에서 모두 평화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고 보고하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진관 스님은 효순 양과 미선 양을 추모하며 한 편의 시를 낭송했다.
시 < 효순이 미선이에게 줄 홍시 감 >
효순이 미선이에게 줄 홍시를
딸려고 감나무를 바라보니
까치가 그걸 알고
먼저 먹어 버렸다
봄이 오는 날 부터 겨울까지
효순이 미선이
생일 날에 먹을
홍시
감나무도 붉은 옷 입고
허공에 매달린 홍시
효순이 미선이가 올 때까지
허공에 매달려 있으려나
까치가 그것을 알고 있으니
효순이 미선이는
천상으로 날아 갔네
'네티즌의 힘' 사이버범대위 채근식 대표는 "이번 광화문 집회는 감동 그대로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며 "주한미군사령부는 시민들과 네티즌들의 힘을 없앨 수 없을 것"이라며 "12월 14일 시청 앞에서 15만 대국민 평화촛불집회에 참여하자"고 독려했다.
이때 행사차량 위로 긴급하게 빨간 돼지저금통이 올라왔다. 사회자 이씨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이라며 돼지저금통을 흔들어 보였다. 이뿐 아니라 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 이경희 씨도 아이들의 정성을 모아온 것이라며 동전으로 된 6만 원을 흰색 비닐봉투에 담아 여중생범대위 상황실장에게 전달했다.
▲오늘 집회를 처음 제안한 ID 앙마. 그는 이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국문제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의 자세를 견지하자! 우리는 효순이 미선이를 잃었지만 현재 이라크에서는 100만 명의 어린이가 죽었다"고 주장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집회는 주관한 주최측의 천편일률적인 행사진행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인 시민들과 네티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즉석에서 발언자를 찾고 직접 행사차량에 올라와 거침없이 발언해 생생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지금 미국 대사관으로 가고 있다!
시민발언 중 첫번째로 탑차에 오른 최용철 씨(서울 삼양초등학교 운영위원장)는 "더러운 양키는 가!"라고 말문을 연 뒤 "이제부터 미국을 아름다울 미(美)에 나라 국(國)이라 부르지 말고 아닐 미(未)에 나라 국(國)으로 부르자"고 주장했다. "깡패나라 미국에게 우리는 더이상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부르자"고 말하며 "미국 대사관으로 몰려가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자"고 주장했다.
올해 수능을 마친 한 고3수험생 봉연진 군은 "무구한 여중생이 무참히 짓밟혔는데도 미군은 근무 중에 있었던 사고라며 그 어떤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발뺌하고 있다"며 "이게 말이 되느냐. SOFA 개정 반드시 이뤄내자"고 주장했다. 5톤 탑차 아래에 있던 중학생들은 "형 너무 멋있어요!"라고 연호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고등학생 이병무 군 등도 "우리는 이제 하나다!"며 "미선이와 효순이가 새롭게 부활하도록 도와줍시다!"고 앳된 목소리로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때 행사차량 아래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군집한 시민들은 빨리 국민들의 의지를 모아 미국 대사관으로 진격하자고 주장했고, 범대위 지도부는 만일의 사고에 부심하며 미국 대사관 쪽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었다.
마침내 범대위 지도부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미국 대사관을 통해 신부님들이 농성 중인 열린광장에서 정리집회를 하자고 나섰다. 사회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서대문 쪽으로 돌아 세종문화회관 뒷편을 통해 열린 광장으로 가자"고 말했으며 "경우에 따라 지하도를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이때 광화문 쪽에서는 전경들과 청소년, 전경들과 대학생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나 워낙 많은 인원이 깃발을 앞세우고 걷는 터라 경찰도 막을 수 없었다.
▲이날 집회에서는 촛불 파도타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있는지 알아보았다. 사진은 촛불파도타기 장면.
실제 경찰 당국은 이날 교보문고 앞에서부터 "오늘은 추모제인 만큼 질서를 돕는다는 자세로 임하라"며 일선 경찰들에게 핸드마이크로 지시했다. 이에 덧붙여 "질서유지 차원에서 조금씩 인도 쪽으로 붙어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지만, 추모행렬을 강력하게 막을 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냐는 주변의 관측을 낳기도 했다.
저녁 7시 50분경 세종로에 진입한 추모행렬은 미국 대사관 앞으로 쭉쭉 진행하고 있었다. 행사차량도 추모행렬을 따라 미국 대사관 쪽으로 진입했으며 사회자는 "우리는 한발 한발 미 대사관으로 간다고 말했다. 사회자는 "평화시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미국 대사관 쪽으로 가는 도중 추모행렬이 전경들과 몸싸움이 붙은 광경을 보면 주로 여성들은 "싸우지 마세요!" "우리끼리 이러면 안돼요!" "밀지 말아요!" "천천히 가요!" "촛불 끄세요, 위험합니다" 라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월드컵 응원전을 방불케 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저녁 8시 13분. "와 뚫린다, 뚫린다!"라는 함성과 함께 미 대사관 앞에 추모행렬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국 대사관 앞에 도착한 행사차량에서 사회자는 "조지 부시 사과하라!"고 외치자 추모행렬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경찰에게도 "함께 하자" 같이 하자"며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당초 열린 광장에서 정리집회를 하려던 범대위 지도부는 57년만에 평화적인 시민의 힘으로 뚫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감격의 마무리 집회를 하기로 바꿨다.
오늘의 집회를 가장 먼저 제안한 ID 앙마는 직접 연단에 나와 다정한 목소리로 "을 봤어요. 눈물이 났어요. 새벽 6시까지 잠을 못 잤어요"라며 본인의 심경을 밝힌 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마디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80년 광주항쟁 당시 서울역에 운집해 있던 우리가 87년 6월항쟁 때는 시청앞에, 드디어 그로부터 15년만인 오늘 세종로 미국 대사관까지 왔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보도하지 않은 언론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우리는 오늘 민주주의, 불복종, 비폭력을 실천하는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가 "미군들이 효순이 미선이만 죽였냐. 이라크에서 죽은 100만 명의 어린이들을 생각하자. 과테말라 등 미국으로부터 고통당하고 있는 민중들과 함께 하자. 세계시민으로서 한국문제에만 급급하지는 말자"며 눈물을 쏟자 모인 군중은 일제히 "울지마!"를 연호하며 그를 달랬다.
▲집회에는 10대 청소년부터 희끗희끗한 칠순노인까지 광범위한 시민들이 참여했다. 무엇보다 시민발언을 통해 진가를 보이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기성세대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이수호 전교조 위원장은 "부끄러운 맘으로 인사드린다"며 "오늘 우리가 교사로서 잘못 가르쳤지만 이 자리에 선 여러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싸움에 함께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경원대 공예학과 김두삼 학생은 "앞으로 대학생들 열심히 하겠다"며 "부시로부터 꼭 사과를 받고 효순이와 미선이의 한을 풀자"고 외쳤다.
▲밤 9시 30분까지 지속된 이날 집회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손을 잡고 참여한 '고사리 손'들이 많았다. 어린이들도 촛불을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효순 양과 미선 양을 추모했다.
연단 위에 오른 두명의 여중생은 "효순이와 미선은 남이 아닙니다. 미군은 물러가라, 우리나라 땅 쓰려면 돈 내고 써라. 원통하게 생각한다"며 본인들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러고난 뒤 그들은 마치 월드컵 응원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치며 "대한민국 세계최강"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참가자들도 일제히 함께 따라하며 한밤의 월드컵 응원전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문동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는 "친구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그가 던진 교훈을 말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뉴스를 보다 말하기를 '우리도 탱크 가지고 가서 깔아버리면 되지 뭐'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아는데 하물며 어른들이 이럴 수 있느냐"며 "이렇게 국민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SOFA 개정 등에 대해 언론은 제대로 보도해달라"고 주장했다.
찬바람이 불고 제법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종로에 모인 시민들은 밤 9시를 넘기면서도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대열이 점점 더 불어났으며 9시 30분경 정리집회를 마무리할 시점에도 2만 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아리랑' '아침이슬'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등을 부르며 시민들의 직접 발언 등을 듣는 순서를 마련하는 등 월드컵 응원전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지루하지 않게 진행됐다. 월드컵 아리랑이 나올 때는 춤을 덩실 추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12월 14일 만나자, 서울 시청 앞에서!
이날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사회자는 "오늘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12월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주권회복의 날을 선포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사회자 이씨는 "오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한 것 때문에 앞으로 경찰의 탄압이 예상된다"며 "범대위 활동을 지지해달라"고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날 촛불추모제에 앞서 마련된 여중생 범대위 주최 사전집회를 마친 대표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종묘공원을 나서고 있는 모습
이들은 마지막으로 그동안 주한미군범죄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모든 피해자들을 기억하면서 묵념을 하자고 제안했고 참가자들은 일제히 1분간 묵념에 들어갔다.
한편, 이날 행사도중 사회자 우씨가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와 있다"며 민주노동당을 추켜세우자 참가자들 중 일부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야유를 퍼붇자 급하게 말을 주워담으며 "주최측에서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자 이씨도 "자신의 발언 중 '세상은 남자가 만들고, 남자를 만드는 건 여자고, 그 여자는 대부분 아줌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여성비하 발언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사과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 중 한 사람은 핸드폰 초기 화면에 미선 양과 효순 양의 영정을 다운 받아 넣어놓고 이를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날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구경하며 이번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촉구하는 발언을 놓치지 않았다. 오늘 우연히 광화문에 왔다가 시위를 목격했다는 한 50대 아저씨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부모가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며 "효순양과 미선양의 부모님께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전달했다.
오후 3시 부터 한총련등 사전집회 개최
2만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촛불 추모제가 열린 7일, 이에 앞선 사전집회가 늦은 3시와 4시 각각 대학생들과 여중생 범대위에 의해 종묘에서 진행되었다. 양 집회의 분위기는 미군피의자 처벌, 부시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소파의 전면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일찌감치 달구어졌다.
'미군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해결과 반전평화실현을 위한 학생대책위'는 지난 8월 13일 1차 행동의 날을 시작으로 이날 5차 집회에 이르렀다. 서울뿐만 아니라 춘천, 대구,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개최된 이날 집회는 오는 14일 '10만 범국민대회' 성사를 위한 자리라고 학생위는 밝혔다.
이날 역시 학생들은 미국의 정책과 사건해결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대선을 겨냥하여 '적합한' 대통령의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 윤경회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
윤경회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은 대한민국의 자주권 회복을 위해 대학생이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수백만 명의 촛불이 이제는 용암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며 "57년간 우리 부모님들의 피고름을 먹고 살아온 미군놈들의 지배를 종식시키는 싸움으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윤 권한대행은 "국민의 생존을 보호해줄 수 있는 대통령을 뽑자"며 "이회창은 안됩니다.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되려거든 미국 대통령이 되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건국대 김석진 총학생회장은 "미 하원의원의 방한이 취소되자 부랴부랴 반미는 안된다고 성명을 발표한 정부에 분노한다"며 "한국정부는 겁먹지 말고 소파개정과 미군 철수를 위해 나서라"고 질타했다.
▲ 문정현 신부
바로 이어진 여중생 범대위 집회는 이날 6시 '광화문 촛불 추모제' 결합에 앞서 각당 대선후보들과 부시 대통령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권영길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이 "표를 의식해서 선거가 임박한 지금에서야 소파개정을 공언하고 있다"며 문제해결의 의지를 의심했다.
특히 재판의 무효화에는 반대하면서 소파를 개정하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저의가 무엇인지 물었다. 또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도 사건의 해결을 위한 서명에 동참할 것과 동시에 분명한 계획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에 보내는 서한을 통해서도 범대위는 "직접 한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번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소파개정 거부를 못박은 데 대해서도 "미국의 오만함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며 전면개정을 주장했다.
오종렬 범대위 상임대표는 "나라 잃은 국민을 뜻하는 망국노는 어디에 가도 대접받지 못한다. 아무라도 짓밟고 지나간다. 두들기고 빼앗는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민족의 자주권 우리 청년g학생들이 되찾겠습니다!" 3시부터 시작된 5차 행동의 날 학생대책위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영도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소파라는 괴물이 우리의 자주권을 짓밟았고 우리의 자존심을 훼손했다"며 "운영절차만 개선하자는 대통령과 소파개정 어렵다고 말하는 법무장관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2일부터 미 대사관 옆 시민공원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이날 광화문까지의 행진에 앞서 "더 이상 위압적일 수 없는 곳이 바로 미 대사관이다. 오늘 모두가 광화문으로 가서 수백만 개의 촛불로 대사관을 포위하자"며 "진정한 독립을 쟁취하자"고 독려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5시께 광화문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거나 건물 밖으로 몸을 내밀고 행진하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호응을 보였다. 종로 YMCA 앞에서 전경들은 행진대열을 막았지만 이내 시민들의 "비켜라! 비켜라!"는 연호가 계속되자 길을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