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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무현 대통령·평검사 공개토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사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9일 100분 넘게 이어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검사들의 토론은 서로
‘위험 수위’ 를 넘나드는 발언을 주고받는 등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했다. 검사들은
작심한 듯 노 대통령의 ‘아픈 곳’ 까지
공격했고, 노 대통령은 이 때문에 서너
차례 감정이 상해 흥분한 모습도 보였다.
발언에 나선 검사들은 사전에 준비한 듯
한두 가지씩 공격 포인트를 꺼냈다.
부산지검 윤장석 검사는 “징계의 자리가
아니라, 대화의 자리에 불러줘 고맙다” 며
노 대통령의 ‘항명 검사 징계론’ 을 꼬집었다.
노 대통령이 “당선 이후 일반 검찰이건
수뇌부 검사건 단 한 건의 전화도 하지
않았다” 고 하자, 바로 마이크를 잡은
수원지검 김영종 검사가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있지 않으냐” 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 라고 했는데,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격앙돼
있었다. 서울지검 이정만 검사는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안된다는 취지로
‘노 대통령 형님 해프닝’ 을 거론했고,
노 대통령은 “자꾸 이런 식으로 토론할
것이냐. 대통령을 낯을 깎아내리려 하느냐”
며 불쾌해 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흥분했다고 느꼈는지
“여러분이 공격적으로 나오니 나도
공격적이 되는 것 아니냐” 고 했고, 검사들이
자신의 저서까지 들춰내자 “많이들
연구하셨다” 고 했다. 한 검사가 “거슬리는
얘기도 있겠지만, 양해해 달라. 우리가
토론의 아마추어이기 때문” 이라며 긴장을
누그러뜨리려 했지만, 노 대통령은 “여기는
대통령의 개인적 약점, 신문에 나는 것을
거론하는 자리가 아니다. 토론 아마추어라는데
그렇다면 검찰개혁 문제도 아마추어답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고 말했다.
양측 간 날카로운 신경전 속에서도
노 대통령은 시종 “여러분은 믿지만, 검찰
상층부는 믿을 수 없다” 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토론에 참석한 평검사들과 검찰 지도부를
분리하겠다는 전략적 구상이 있는 듯했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이 과거 대통령들의
검찰 중립화 의지를 믿지 못하듯, 나 역시
현재 검찰 지도부는 신뢰 못한다”, “여러분도
지금 지도부로 몇 달을 그대로 가자는 뜻은
아니지 않으냐” 고 말했다. 그러나 검사들은
선뜻 맞장구를 치지 않았고, “선배 검사들에게
일부 문제점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인적 청산 역시 투명한 절차로
이뤄져야 한다” 는 답을 반복했다.
함께 자리한 문희상(文喜相) 청와대 비서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도 대통령과
검사들의 격한 발언이 계속되자 얼굴을
찡그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 긴장된
표정이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개를
푹 숙이기도 했다. 문 수석은 토론이 끝난 뒤
상기된 얼굴로 “아슬아슬했다. 정말
조마조마했다” 면서도 “원래 이런 것 하자고
마련한 자리가 아니었느냐” 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의 관계자는 “SK수사 같은 진행
중인 사건을 어떻게 브리핑 할 수 있느냐” 고
했다. 토론 후 기념촬영 때도 노 대통령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 상태였다.
▶ 2016년 3월 9일,
알파고-이세돌 대국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승부로,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함
2016년 3월 9일부터 10, 12, 13, 15일 열린 5번기 대결로,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에 4 대 1로 승리하였다. 알파고는 1국에서 186수 백 불계승, 2국에서 211수 흑 불계승, 3국에서 176수 백 불계승을 거뒀다. 4국에서는 이세돌 9단이 180수 백 불계승으로 1승을 이뤄냈으나 5국에서 알파고가 280수 백 불계승을 거두면서 알파고가 최종 승리하였다.
보통은 5전 3선승제이나 이 대국에서는 구글 측이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길 원해 5국까지 모두 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제한시간은 2시간이며 1분 초읽기는 3회였는데, 이는 2015년 10월 알파고와 판후이(樊麾) 2단의 대국과 비교하였을 때 2배 늘어난 것이다. 제한시간이 길어지면 알파고가 시뮬레이션을 할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알파고에 유리하다고 본다.
알파고는 직접 바둑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알파고 개발팀 중 대만계 아자 황(아마 6단)이 알파고가 둔 수를 대신 바둑판으로 옮겼다. 아자 황이 이세돌 9단이 둔 수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구글 클라우드에서 알파고 프로그램을 돌려 수많은 컴퓨터를 통해 대국 중에 수백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한편, 알파고는 중국 룰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 대국에서도 흑이 부담할 덤이 한국 룰보다 한 집 많은 7집 반으로 적용되었다. 또한 바둑판 위에 살아있는 돌과 집을 모두 계가해 승부를 가리는 계자제로 치러졌다. 한국은 바둑판 위에 지어진 집의 수만 계산한다.
▶2009년 이성자 화백 타계
▶ 2009년 양용은, 미국 PGA 첫 우승
골프선수 양용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시작
▶2002년 `걸레 스님’중광 타계
▶2000년 김대중 대통령 4개항의 대북제안
`베를린 선언` 발표
▶2000년 세계 최장 국제 해저 광케이블
`제7 국제해저케이블(SEA-ME-WE3) 개통
▶1999년 태국 주재 북한 대사관 홍순경 참사관 일가,
북한요원에 납치됐다 탈출
▶1999년 에콰도르, 경제난으로 60일간 비상사태 선포
▶1997년 프랑스 ‘엘르’ 전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 사망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공식 출범
▶1994년 컴퓨터 통신 동호회원,
컴퓨터 통신망에 이적표현물 게재혐의로 구속됨
▶1993년 부정방지위원회 설치
▶1993년 `파킨슨 법칙` 만들어 낸
영국의 역사가 파킨슨 사망
▶1992년 메나햄 베긴 전 이스라엘 수상 사망
베긴 [Begin, Menachem (Wolfovitch), 1913.8.16~1992.3.9]
메나햄 베긴 전 이스라엘 수상이 1992년 3월 9일 텔아비브의 이치로브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78세였다. 베긴 전 수상은 1979년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맺어 중동지역에 처음으로 공존의 씨를 뿌렸는가 하면 1982년의 레바논 침공 등 숱한 비난을 받는 등 여러가지 얼굴을 보여준 이스라엘의 극우 민족주의 운동 정치인이었다.
그는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6일전쟁을 결산하는 평화협정을 맺어 이 공으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함께 197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1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베긴 전 수상은 부모가 나치 정권에 살해당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이스라엘 극우 독립운동단체인 `베타르`에 가담, 1943년에는 유태 과격지하해방단체인 `IZL` 총사령관을 맡아 이스라엘 건국운동을 벌여왔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후 자유당 당수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1973년 우파들과 함께 보수 우익의 리쿠르당을 창설해 노동당을 누르고 29년간의 야당생활을 청산했다. 그후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총리직을 맡았었다.
▶1991년 유고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반공시위(40여명 사상)
▶1989년 제1차 남북체육회담(판문점)
▶1979년 중국, 미국 AP와 UPI통신 북경지국 개설 허가
▶1978년 서울 순환선인 지하철 2호선 건설 시작
▶1977년 미국 정부, 미국인의 북한 여행제한 해제 발표
▶1977년 카터 대통령, 주한미군 철수 계획발표
카터 미국 대통령
▶1975년 미국 알래스카 개썰매 경주
▶1975년 루마니아 선거
▶1973년 스페인- 중국 외교관계 수립
▶1969년 천안시장 화재
▶1968년 일본 이타이이타이병 환자,
카드뮴을 배출한 삼정금속광업 고소
▶1965년 이탈리아, 고속도로 붕괴
▶1965년 한국-말라위 국교 수립
▶1965년 한국-이탈리아 무역문화협정 체결
▶1962년 정부, `해외이주법` 공포
▶1961년 달라이 라마 유엔 방문
▶1959년 바비인형 등장
바비 인형이 뉴욕 시에서 열린 장난감 전시회에서 첫 선을 보이다
바비인형은 미국의 마텔사에서 1959년에 처음 출시되어 현재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형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바비인형은 크게 어린이들이 갖고 놀 수 있는 '레귤러바비(일명 핑크박스바비)'와 수집가들이 수집용으로 모으는 '콜렉터블바비(컬렉터바비)'가 있습니다.
'콜렉터블바비'의 경우 국내에서는 일부 수집가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2000년 하반기쯤 부터 TV, 잡지 등의 메스컴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해, 현재는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엄청난 메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선혜와 동현'』과 함께 바비메니아가 되어 보세요..
루스 핸들러(85)는 바비(Barbie)인형의 아버지랍니다. 2002년 4월 27일 결장수술 합병증으로 사망 했습니다. 바비 인형의 창안자이자 바비 제조업체인 마텔의 공동 설립자죠. 1959년 딸 바버라의 이름을 따서 파란 눈에 금발머리의 성인여성 인형 ‘바비’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 인형은 미국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인정받아 1976년, 200년 후에 열어볼 타임캡슐에 포함됐습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2002년에 세상을 뜬 유명인" 27명을 선정했는데, 이들 중에는 학계 문화예술계 스포츠계 재계 정치계 등에서 업적을 남기거나 악명을 떨친 유명인들이 다양하게 포함됐습니다. 루스핸들러도 이들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59년 발매된 오리지날 바비인형
▶1957년 함백선 개통
▶1957년 유엔군, 가자지구 진주 완료
▶1956년 영국, 키프러스의 마카리오스 대주교 추방
▶1952년 구소련의 여성 정치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사망
▶1945년 미국, 라인강 도하
▶1945년 미국이 B-29 폭격기로 일본 도쿄를 공습,
도쿄 대 공습: 334 미국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는 120,000개의 화재 폭탄으로 도쿄를 공격하다.
8만여명 사망했다
▶1945년 베트남 독립 선언
▶1942년 일본군, 남부 인도네시아 점령
▶ 1934년 최초로 (1961년) 우주를 비행한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출생
▶1918년 러시아 수도를 모스크바로 이전
▶1916년 독일, 포르투갈에 선전포고
▶1910년 낭만적 경향의 대표적인 미국 작곡가 바버 출생
▶1908년 응용화학계의 토대를 마련한
한국의 화학자 김동일 출생
▶1907년 루마니아의 종교학자 머시아 엘리아데 출생
▶1903년 법부, 법률학교 설립
▶1891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통치를 반대한
필리핀 대통령(1943~45) 라우렐 출생
▶1888년 독일 빌헬름 1세 사망
▶1871년 사액서원 47개만 남기고 모두 폐쇄
서원철폐령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은 1871년(고종 8년) 음력 3월 20일 지방에 있어서 양반의 근거지로 남설(濫設)된 서원의 오랜 적폐(積弊)를 제거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이 서원에 대해 내린 일대 정리 명령이다. 전국에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통폐합한 조치이다. 비사액서원을 우선적으로 정리를 하였고, 사액서원이라도 첩설된 것과 불법을 횡행하는 서원은 모두 철폐되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유교 중심 정책을 취하여 전국 각지에 많은 서원이 생겼다. 이러한 서원은 지방에 있어서 남설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특권적인 것이 되어 전지(田地)와 노비를 점유, 면세·면역의 특전을 향유하면서 당론의 소굴이 되었다. 유생은 향교보다도 서원에 들어가 붕당에 골몰하였고, 심지어는 서원을 근거로 양민을 토색하는 폐단이 심하였다. 이리하여 역대 제왕들은 여러 차례 서원의 정비를 꾀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원군은 집정 초기부터 서원의 비행과 불법을 낱낱이 적발케 하는 동시에 사설(私設)과 남설을 엄금하라고 지시했으며, 1865년(고종 2년) 서원의 괴수 격인 만동묘를 철폐케 했다. 1866년(고종 3년) 흥선대원군은 명을 내려, 면세와 면천으로 조정의 재정에 부담을 주는 사원을 일제히 정리하였다. 비사액 서원을 우선적으로 철폐되었으며, 1870년에는 사액서원 중에서도 붕당을 만들어 백성을 해치는 일을 조사하여 일부를 철폐하였으며, 1871년에도 첩설된 서원을 모두 철폐하여 전국에 47개소만 남겼다.
▶1856년 카보런덤 발견, 흑연 제조방법을
완성한 미국의 발명가 애치슨 출생
▶1824년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철도 건설자,
미국 상원의원 스탠퍼드 출생
▶ 1834년 오늘,
프랑스 외인 부대가 창설되다.
▶1796년 나폴레옹, 조제핀과 재혼
유혹자에겐 독특한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청년장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796년 오늘 파리 사교계의 여왕 조제핀과 결혼식을 올린다. 나폴레옹이 27세, 조세핀이 33세였다. 조세핀은 아이 둘이나 달린 미망인이었다.
조제핀은 ‘유혹의 기술’을 가진 끼많은 여인이었다. 부유한 알렉상드르 보아르네 자작과 결혼했으나 이후 별거했고, 남편이 프랑스 혁명 때 처형된 후 나폴레옹을 만났다. 그녀는 상대가 완전히 유혹에 넘어갈 때까지 당겼다 늦췄다를 계획적으로 반복하는 ‘냉담한 나르시시스트형’ 유혹자의 전형으로 꼽힌다.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영웅도 유혹의 기술을 운명의 덫쯤으로 여기고 빠져나오지 못했다. 우롱당하면서도 악착같이 소유하고자 했다. 조세핀의 바람기는 나폴레옹의 부하와 놀아날 정도로 결혼후에도 여전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영웅은 “나를 무시하고 비웃어도 좋다. 여러 애인이 있고 그걸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도 상관없다. 그럴수록 나는 열 배 더 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한 여인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자 ‘유혹의 기술’을 뛰어 넘는 영웅의 열정이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어 대관식을 치러기 하루 전날인 1804년 12월 1일, 두 사람은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한번더 결혼식을 올린다. 지상에서 치뤄진 가장 화려한 결혼식의 하나였다. 다음날 나폴레옹은 제정을 선포했고, 조제핀은 황후가 되었다. 서인도 제도의 조그만 섬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나 신데렐라가 된 셈이다.
사치가 심하고 경박하다는 입방아가 끊이지 않았지만 감히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이을 후사를 낳지 못해 1809년 이혼당하고 만다. 그녀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배된 직후 숨을 거뒀다. 짧은 행복, 긴 불행의 여정이라고나 해야하나?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된 피에로 폴 프뤼동의 그림 ‘황후 조세핀’은 대관식 이듬해 그려진 작품으로 말메송 별저의 정원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 조세핀을 그렸다. 황후의 기품보다는 관능적인 여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고혹적인 포즈다. 하지만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무언가 깊은 상념에 잠겨있음을 말해준다. 앞날을 예감했던 것일까?
▶1734년 스페인의 극작가. 시인. 비평가
가르시아 데 라 우에르타 출생
▶1374년 고려 문신 이인복 사망
▶1365년 왜구, 강화도에 침략
▶1200년 주자학의 창시자 주자 사망
https://youtu.be/uWFpiTzr_EA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솦트리종려나무,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