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후아 꽃이 피었습니다
전영원
작년 9월 나는 꿈에 그리던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원래 옛 이름이 하와이였다는 빅아일랜드는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멋진 여성들이 목에 레이를 걸고 훌라춤을 추는 곳, 상상 속 하와이는 지상 낙원이었지만 빅아일랜드는 사람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낯선 행성 같은 곳이었다. 새파란 하늘과 새까만 땅 외에는 인적조차 느끼기 어려워서 우주 어딘가 불시착한 느낌마저 들었다.
빅아일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남편과 나는 차를 빌려 화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수증기를 내뿜는 스팀벤트를 지나 라바튜브를 거쳐 이키 트레일의 분화구를 걸었다. 용암이 굳어 새까만 땅, 끝도 없이 이어진 길,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화구 위를 엉금엉금 기듯 걸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과 여기저기 피어있는 붉은 꽃이 아니었다면 달 위를 걷는다는 착각에 빠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삭막한 검은 땅 여기저기에 불꽃의 파편을 닮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내 앞에서 걷던 여자가 꽃을 꺾으려 하자 옆의 남자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오히아 레후아 꽃이야. 꽃을 따면 비가 온대.”
빅아일랜드에 몇 번 와봤다는 남편이 소곤거렸다. 지쳐 주저앉아 있던 나에게 남편은 레후아 꽃에 대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목수 오히아와 레후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불의 여신인 펠레가 오히아에게 반해서 청혼을 했고 오히아는 펠레의 청혼을 거절했다. 화가 난 펠레는 그를 용암에 넣고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레후아는 오히아를 사람으로 되돌려 달라 애원했지만, 펠레가 거부했고 레후아는 다시 아우마쿠아 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은 레후아를 오히아 나무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여 둘을 영원한 연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레후아 꽃을 따면 비가 내리는 것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하늘이 슬퍼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오히아 나무는 불에 그을린 것처럼 까맣고 레후아는 화산 불꽃처럼 붉대. 중요한 건 레후아는 새로 생긴 용암 지대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라는 거야. 그러니 힘을 내. 이런 데서도 꽃이 피는데 넌 레후아보다도 세잖아?”
남편이 장난기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 손을 끌어당겨 나를 일으켰다. 걷는 동안 갈퀴 같기도 하고 꽃무릇 같기도 한 새빨간 레후아가 어쩐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전설도 재미있었지만 이런 척박한 땅에 나무가, 꽃이 핀다는 것이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이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화산이 터졌대.”
빅아일랜드로 온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분화였다. 남편은 빅아일랜드로 출발할 때부터 화산 분화를 기대하는 눈치였는데 화산은 우리를 맞이하듯 분화했다. 이미 킬라우에야 화산 분화구 근처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분화구는 공원 폐쇄 구역에 있어서 용암이 분출하는 모습을 멀리서 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 먼 거리에서도 모든 걸 삼켜버릴 듯한 웅장한 위력과 살이 익는듯한 뜨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킬라우에야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분화하고 있는 화산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불기둥이 솟구쳤고 구름보다도 큰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새까만 땅에서 피어나는 까만 나무 오히아, 그 나무에서 피는 레후아꽃 같은 불꽃이 튀어 올랐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 머릿속에도 화산이 분화했다.
“전두엽 쪽에 작은 종양이 생겼네요. 전이성 종양으로 보입니다.”
지난 5월, 여느 때처럼 별생각 없이 진료실로 향했다. 8년 전 수술 후 3개월, 6개월, 그러다 5년 전부터는 1년마다 뇌 MRI를 찍고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진료 때마다 신경외과 주치의는 나보다 환하게 웃으며 ‘깨끗합니다, 흔적도 없네요.’라고 말했었는데 이제 뇌에 전이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8년 만에 내 머릿속 화산이 분화했다. 주치의는 위치도 좋고 개수도 적으니 감마나이프를 하자고 했다. 예전의 고통이 떠올라 좀 지켜보면 안 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다 전이가 빨라져서 다발성으로 종양이 생기면 그땐 감마도 못 합니다.”
수술은 일주일 후에 하기로 했다. 2016년 8월에 암 수술을 받고 두 달 만에 뇌전이 진단을 받았었다. 2기에서 4기로 껑충, 기수가 뛰었다. 예전에는 나사를 머리에 박아 고정했지만 요즘은 특수마스크를 제작하여 씌운 후 감마나이프를 한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아프진 않을테니.
얼굴을 고정할 마스크 본을 뜨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사방이 온통 새까맣다. 화산이 터지고 녹아내린 용암이 굳어간다. 구멍이 난 까만 돌, 돌길 위로 조심스레 발을 내어 딛는다. 땅이 흔들린다. 다시 화산이 터지려나, 머리가 흔들린다. 원격 전이가 되면 하나가 됐든 백 개가 됐든 암 환자는 무조건 4기가 된다. 뇌전이 환자의 예후는 좋지 않다. 나처럼 전이성 종양이 하나만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몇 개의 종양이 생기면 위치나 크기, 개수에 따라 감마나이프를 받는다. 감마나이프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종양이 생기면 전뇌 방사선이나 개두술을 받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 같은 병을 앓던 지인들이 다들 그렇게 떠나갔다. 멀리 검은 분화구를 지나 스팀벤트 속으로.
“치료 시작합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단 한 개뿐인 종양은 10분도 채 안 되어 제거되었다.
“두통이 있다거나 깜빡깜빡한다던가 그런 증상 있었나요? 위치도 좋았고 수술도 아주 깨끗하게 잘 됐습니다. 다음 달에 MRI 찍고 다시 봅시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주치의는 방긋 웃었다. 수술이 잘 되어서, 잘 된 채로 유지되어서 기쁘다는 표정, 그 표정 때문에 나는 기뻤다. 내가 건강해진 것 같아서, 완치된 것만 같아서.
“선생님, 또 재발하지는 않을까요? 저 괜찮은 걸까요?”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또 생기면 또 이렇게 감마하면 되고요.”
신경외과 주치의도 종양내과 주치의도 그랬다. 내가 본인들이 담당하는 환자 중 몇 안 되는 우등 환자라고. 그 말이 나에게는 용암이 굳은 땅에서 피어난 오히아 레후아처럼 너는 끝끝내 피어날 것이며, 화산 국립공원에 있는 유일한 꽃 레후아처럼 너는 살아낼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해거름이다. 여름 해가 뜨겁게 부서져 차창 안으로 들어왔다. 팔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감았다. 화산이 분화한다. 불꽃이 분수처럼 붉게 흩어진다. 용암이 흘러내린다. 굳은 땅에 새싹이 돋는다. 나무에 꽃이 핀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나무로, 꽃으로 피어난 꽃, 오히아 레후아, 레후아 꽃이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