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맛집
이란에서 유학와 대학로에서 요리합니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35호(2022.10.15)
샤풀 나스러라히
(심리98-02)
대학로 ‘페르시안궁전’ 대표
정말 궁전인 듯 화려한 장식에
한국화된 카레·케밥 맛 선보여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한 6개월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잠깐 취미생활을 겸해서 개업한 식당입니다. 하고 후회하는 일보다 안 하고 후회하는 일이 더 많다는 생각에 저지른 일이죠. 어렸을 때부터 꿈이 요리사였거든요. 당시 교수님한테 미쳤냐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남들 시선보단 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이 중요했습니다.”
샤풀 나스러라히 ‘페르시안 궁전’ 대표는 20대 초반에 이란에서 한국으로 유학왔다. 1993년 한양대 의과대학에, 1998년 서울대 심리학과에 입학해 대학을 두 번이나 다닌 그는 전공과 연계해 심리상담이나 제약 분야에서 본업을 찾고, 식당은 곧 그만두거나 혹 잘되면 부업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계획이 뒤집혔다. 잠깐 해보자 했던 식당이 소위 대박을 쳤던 것.
1년쯤 지나 공중파 방송에 소개될 만큼 유명해지자 야단을 쳤던 은사가 되레 아들의 취업을 부탁해왔다. 이란 케밥, 인도 카레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20년째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9월 26일 성균관대 정문 맞은편에 있는 페르시안 궁전에서 샤풀 나스러라히 동문을 만났다.
“모교 재학 당시 서울 성북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통근 거리가 짧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찾다 보니 이곳에 가게를 열게 됐죠. 예전엔 PC방이 있던 자리였는데 장사가 잘 안 됐는지 임대료가 저렴했어요. 권리금도 없었고요. 개업 직후엔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무료로 대접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공짜 음식이 아닌 까닭에 냉정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덕에 한국인 입맛에 맞는 케밥, 카레를 개발할 수 있었죠.”
이란 정통 의학에선 음식이 곧 치료약이다. 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 하나하나가 본디 약초이기 때문. 약이 증상에 따라 맞춤형으로 조제되듯, 페르시안 궁전은 손님의 취향에 따라 24가지 향신료를 각각 다르게 배합한다. 기본 매운 맛 2.5를 중심으로 안 매운맛 어린이 소스 단계부터 아주 순한 맛 1.8, 순한 맛 2.0, 약간 매운맛 2.2, 2.5보다 2배 매운맛 2.7, 2.5보다 4배 매운맛 3.0, 낙지볶음보다 3배 매운맛 3.5 등 여덟 단계의 매운맛을 제공한다. 더 매운맛을 원하면 상담을 거쳐 7단계까지 조리가 가능하다.
“늦은 밤 술에 취한 손님 넷이 들어왔어요. 엄청 까다롭게 고르길래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바꿔주겠다고 했죠. 아니나 다를까. 반쯤 먹고 남긴 것을 입에 안 맞는다고 바꿔 달라는 거예요. 다시 조리해주면 또 반쯤 먹고 나서 바꿔 달라고 하고, 다시 해주면 또 바꿔 달라고 하고……. 그렇게 네 번을 새로 요리해 줬어요. 자기들끼리 킬킬 웃더군요. 쉽게 말해 저를 갖고 논 거죠. 그렇지만 화내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손님 입맛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했죠. 한 사람 씩 자리를 비우더니 결국 음식값도 내지 않고 모두 도망쳐버렸어요.”
다음날 오전, 일행 중 두 사람이 찾아왔다. 어젠 너무 취했었다고 사과하면서 돈을 내밀었다. 그러나 샤풀 나스러라히 동문은 받지 않았다. 어쨌든 손님을 100% 만족시키진 못한 거니까 다음에 와서 맛있게 먹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쿨한 고객 응대에 감동받은 걸까? 바로 그날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찾아왔다. 18년 전 일이다. 단골손님이 돼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며 웃고, 부인과 아이를 데려와 가족 외식을 한다.
“저희 식당엔 단골이 참 많습니다. 개업 초기 서울대 친구들이 입소문을 내 줘서 인근 서울대병원 교직원분들도 자주 찾아주시죠. 검진받으러 가면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웃음). 1년에 하루도 쉬지 않고 제가 직접 고객을 맞이합니다. 어느 음식점이든 사장이 직접 응대해야 손님에게 신뢰감을 줘요. 더구나 찾아주시는 손님 중 상당수가 멀리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시는 분들이세요. 휴일인 줄 몰랐다가 헛걸음하시지 않도록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안 궁전의 인기메뉴는 통닭 카레 정식. 토마토와 24가지 향신료를 특정 비율로 섞어 카레를 만든 후 살짝 미리 익힌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끓여 만드는 메뉴다. 닭고기를 먹기 좋게 찢어 카레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 함께 제공되는 라이스 케이크는 꼬들꼬들한 밥 위에 바삭하고 고소한 누룽지를 얹었다.
단품으론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치킨 마크니 커리’와 시금치에 홈메이드 치즈를 넣어 만든 ‘팔락 파니르 커리’를 추천한다고. 페르시안 궁전에서 제공하는 모든 육류는 이슬람 율법을 준수해 도살·처리·가공된 경우에만 부여하는 할랄 인증을 받았다.
정말 궁전인 듯 화려하게 장식한 식당 입구
외부 전경부터 눈에 띄게 화려해 발길을 잡아끄는 페르시안 궁전. 내부엔 페르시안 왕족의 그림이 곳곳에 걸려 있고, 엔티크한 조명과 궁전의 지붕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마치 외국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업해서 돈벌려면 사람의 심리를 알아야 합니다. 모교에서 배운 지식이 큰 도움이 됐죠. 메뉴판부터 식욕을 돋우는 오렌지색 바탕에 해당 음식을 직 관적으로 알 수 있게 사진을 곁들였고, 고객을 응대하는 제 옷차림이나 직원의 동선에도 심리학적 지식을 반영했어요.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 주셔서 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페르시안 궁전 많이 찾아주십시오.”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밤 9시 30분. 총 96석 규모. 주차비 50% 지원. 포장 가능, 배달 불가. 문의: 02-763-6050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