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戰爭)이 벌어지면 승리(勝利)가 가장 중요(重要)한 가치(價値)이므로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이 동원(動員)됩니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故事)가 조롱(嘲弄)의 의미(意味)로 쓰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에서 도덕(道德)이나 겸양(謙讓)은 결코 고려(考慮)할 부분(部分)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歷史)를 살펴보면 패(敗)한 이가 굴욕(屈辱)을 모면(謀免)한 사례(事例)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면 대결(正面對決)을 회피(回避)하고 수세적(守勢的)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방어 수단의 시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선인장의 가시는 동물에 대한 방어수단입니다.
일단 내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니 방어(魴魚)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行爲)였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되고 견고(堅固)한 수단이 성(城, castle)입니다.
인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성이라는 인공적(人工的)인 방어물로 유사시(有事時)를 대비(對備)했습니다.
산속의 요충지(要衝地)에 축성(築城)한 산성(山城)도 있지만 서울 도성(都城)이나 지방의 읍성(邑城) 등에서 보듯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존재(存在)하는 건축물(建築物)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밀접(密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은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군사용 건축물입니다
사전(事典)에서는 성을 '적을 막기 위하여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만든 담. 또는 그런 담으로 둘러싼 구역(區域)'이라 설명(說明)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적(敵)으로 보는 가에 따라서 성의 개념(槪念)이 바뀔 수 있습니다.
만일 나의 생명(生命)이나 재산(財産)을 노리는 대상(對象)이 범죄자(犯罪者)나 짐승이라면 평상시 거주(平常時居住)하는 집과 담장(簟匠)도 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건축물과 성의 차이(差異)는 분명(分明)합니다.
바로 군사적 용도(軍事的用度)로 사용(使用)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서울 도심에 남아있는 한양 도성
물론 울타리나 주택(住宅)도 전쟁 중에 군사 시설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원래 목적(目的)이 군사용은 아닙니다. 반면 성은 처음부터 그리고 오로지 군사적 목적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성은 보호 시설(保護施設)이면서 혜택(惠澤)을 보는 이들의 자유(自由)를 스스로 제한(制限)해 버리는 불편(不便)한 장애물(障碍物)이기도 합니다.
도로(道路)나 건물(建物)이 생겨도 지역(地域)이 단절(斷絶)될 정도인데, 일부러 통행(通行)을 가로막는 성은 당연히 일상(日常)에 많은 곤란(困難)함을 야기(夜氣)합니다.
↑돌아가기 싫다고 무단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허물고 길을 낸 모습, 사실 성은 통행에 어려움을 줍니다
공성(攻城) 방법이 발달(發達)하면서 군사적 용도(軍事的用道)가 거의 사라진 현대(現代)에 와서 성은 도시의 발전이나 통행(通行)을 저해(沮害)하는 장해물(障害物)로 전락(轉落)했습니다.
성이 남아있는 곳은 현재도 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지역(地域)인 곳이 많아서 이를 쉽게 느낍니다.
인간이 언제부터 성을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상당히 오래전부터 임은 틀림없습니다.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든 성곽(城郭)을 기준으로 예리코(Jericho) 성벽(城壁)은 기원전(紀元前) 8,000년 전에 제작(製作)되어 진 것으로 알려집니다.
↑가장 오래된 성벽으로 알려진 예리코 유적지
현재까지 확인(確認)된 가장 오래된 성곽(城郭)으로 알려지기는 하나 규모(規模)나 축성 기술(築城技術) 등을 고려(考慮)할 때 그 이전에 성이 있었음은 분명(分明)합니다.
어쩌면 이런 가정(假定)은 인간이 언제부터 전쟁을 벌였는지 하는 질문(質問)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은 앞서 언급(言及)한 것처럼 전쟁 중 내가 살아남기 위한 본능(本能)을 바탕으로 탄생(誕生)한 건축물(建築物)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생존 본능(生存本能)이 가장 극명(克明)하게 드러난 증거(證據)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방어물로 가치가 사라진 노보고로드(Novgorod)성을 통과하는 독일군
건축 기술(建築技術)이 발달(發達)한 지금도 단기간(短期間) 내 거대한 장벽(障壁)이나 성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은 군사 시설 임에도 가장 평화(平和)롭고 여유(餘裕)가 있을 때 축성(築城)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歷史)를 보면 강력(强力)한 공격자(攻擊者)의 침공(侵攻)으로 성이 함락(陷落)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단지 이런 결과(決科)만 놓고 본다면 성이 역할(役割)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성이 없었다면 더 빨리 그리고 더욱 철저(徹底)하게 패(敗)했을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구한말 도성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숭례문을 향해 이동 중인 일본군
적어도 성의 존재(存在)는 방어(防禦)자(者)에게 처음부터 무기력(無氣力)하게 저항(抵抗)을 포기(抛棄)하지 않도록 의지(意志)를 북돋아 주는 존재였습니다.
평화로울 때 전쟁(戰爭)을 대비(對備)하라는 격언(格言)은 오랜 경험(經驗)의 산물(産物)입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安全)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 많을 때 성을 쌓았고 끊임없이 정비(整備)했습니다.
반면 평화로움만 즐기고 대비를 게을리하였던 이들은 역사(歷史)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남아 있는 성이 우리에게 주는 생생(生生)한 교훈(敎訓)입니다●
[출처] 안전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작성자 aug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