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사(道峯寺)
나식(羅湜, 1408~1546)
굽이굽이 개울을 돌고 돌아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고 올라
황혼 무렵 절에 다다르니
맑은 소리 구름 가로 흩날리네
曲曲溪回復(곡곡계회부)
登登路屈盤(등등로굴반)
黃昏方到寺(황혼방도사)
淸聲落雲端(청성낙운단)
나식은 조광조의 문인(門人)이었다. 조광조는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대표로서 개
혁을 추진하다 훈구파에게 화를 당했는데 이것이 기묘사화(己卯士禍:1519)다. 이후
사림파가 재집권했지만 훈구파인 윤원형 일당의 모함으로 다시 나식을 포함하여 사
림 세력 대부분이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했으니 이 사건이 바로 을사사화
(乙巳士禍:1545)다. 시를 보면 그 시를 쓴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가깝게 사
귀는 친구들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짐작컨대 나식은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임이 틀림없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의 복리를 추구했던 그 당시의
사림파는 일신의 부귀영화를 노려 권력을 추구한 훈구파와는 사뭇 달랐다. 사화
(士禍)는 지금도 반복된다.
[작가소개]
나식[羅湜]
자 정원(正源), 호 장음정(長吟亭)
시대 : 조선
출생 – 사망 : 1498년(연산군 4) ~ 1546년(명종 1)
성격 : 학자
출신지 : 미상
성별 : 남
본관 : 안정(安定)
저서(작품) : 장음정집
대표관직(경력) : 선릉참봉(宣陵參奉)
<정의> 조선전기 『장음정집』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정원(正源), 호는 장음정(長吟亭). 아버지는 창릉참봉(昌陵參奉) 나세걸(羅世傑)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豐壤趙氏)로 대사헌 조익정(趙益貞)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4년(중종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었다가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윤임(尹任)의 일파로서 이휘(李煇)의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 흥양(興陽)으로 유배되었다.
이듬 해 강계(江界)로 이배된 뒤 사사(賜死)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49세였다. 1568년(선조 1)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의 상소로 신원(伸寃)되었다. 저서로는 『장음정집(長吟亭集)』 3권이 있다.
<참고문헌>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장음정집(長吟亭集)』
[네이버 지식백과] 나식 [羅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