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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13:5-13절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내용분해 : A.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툼(5-7절)
1.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동거하기 불편할 정도로 많아짐 (5-6절)
2.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툼 (7a절)
3. 가나안 족속도 그 땅에 거함으로 생활이 더욱 불편함 (7b)
B. 아브라함이 롯에게 서로 분리할 것을 제안함(8-9절)
1. 아브라함이 롯에게 다툼을 피해 분리할 것을 제안함 (8-9a절)
2.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할 권리를 줌 (9b절)
C. 롯이 비옥한 요단 들을 선택하여 떠남 (10-13절)
1. 롯이 초지와 물이 풍부한 요단 들을 택하여 이주함 (10-11절)
2. 아브라함은 가나안 고원 지대에 거함(12a절)
3. 롯이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름(12b절)
4. 당시 소돔 사람들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서 큰 죄인이었음(13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오늘이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다 같이 전심으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창세기 13:5-13절 말씀으로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과 다음 단락은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 (13:5-13) 및 롯과 분가한 직후에, 이제 하나님 앞에 더욱 온전히 훌로 남게 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전날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소명을 주시면서 수여하였던 땅과 후손의 언약을 재갱신하여 주신 사건 (13:14-18)을 연이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에 초기 정착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근 30년간 내내 고락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언급된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는 대략B.C. 2083년 전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가나안 이주 후, 하나님의 거듭된 축복으로 상당한 규모의 유목민 그룹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상호 긴밀한 협조와 공동 방위가 보다 중요하였던 정착 초기와 달리, 목초지와 물이 풍부하지 못한 가나안에서 대단위로 이동하는 데서 오는 비효율성이 더욱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때로는 상호간에 갈등이 야기될 소지까지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 사건 자체는 일단 이러한 현실적 편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가할 당시의 의사 결정 방법과 그 이후 양자의 인생 행적은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더욱 공고히 하는 신앙 위주(信때 鳥主)의 삶에 힘씀으로써 더욱 더 큰 축복을 누리며 계속 창대해져 갔으나, 반면 롯은 세속적 관심사에 기울어진 나머지, 점점 더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져 더욱 비참해져만 가는 말로를 겪게 되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양자의 전철은 하나님 안에서의 인생이 대조되는 두 모습의 전형적인 모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을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분가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먼저 제시됩니다 (5-7 절),그리고 이어서 아브라함이 롯에게 분가를 제의하고, 먼저 선택의 우선권을 양보했음이 기록됩니다(8.9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롯이 먼저 비옥한 요단 들판을 선택하여 동으로 떠남으로써 분가가 이루어졌음이 보도됩니다(10-13절),
아브라함 (Abraham)이 양질의 목초지의 우선 확보가 그 성패를 좌우하는 유목 생활을 하면서도 롯에게 유목지의 선택권을 양보한 것은, 이 직전에 있었던 애굽에서의 체험과 그 직후의 신앙 회복(12:10-13:4) 에서 우러나온 성숙된 신앙 인격의 발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그분의 축복만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 진정한 요소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롯(Lot) 은 아직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세속적 관점을 우선시 했습니다. 이는 13절에 롯이 택하여 갔던 당시 요단 동편 땅의 중심지였던 소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었다는 짤막한 기사에 함축적으로 암시되어 있습니다. 즉 롯은 그토록 하나님 앞에 큰 죄인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다만 물과 풀이 풍부한 사실만을 보고 그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계속 퇴보하여 가나안 전쟁 당시에는 가나안 북부 원정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습니다(14:1-12).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소돔성의 멸망 당시에는, 아내는 재물에 미련을 두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으며, 자신은 겨우 목숨을 건진 후 두 딸들과의 근친 상간을 통해, 겨우 후손을 남기며 굴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19:12-38). 그리고 그나마 이 정도도 아브라함의 거듭된 보호로 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듯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 사건에 나타난 이같은 양자의 상반된 모습과 그 상반된 결과는, 우리에게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 세속적 관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적 관점을 우선해야만 할 것을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롯이 떠나간 후에 재갱신(再更新)하여 주신 언약은, 앞서 아브라함의 첫 소명 당시 주셨던 언약보다 친밀감과 생동감이 훨씬 짙게 깔려 있습니다. 먼저 13:14-17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 보거나 직접 그 땅을 거닐어 보는 감각적 방법과 그의 자손이 마치 온 땅의 티끌처럼 많을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 땅과 후손의 약속을 거듭 주셨음을 보도합니다. 그리고 18절은 아브라함이 이러한 언약의 하나님을 더욱 경배하며 의지하는 삶을 살았음을, 그가 마므레로 옮겨가 단을 쌓았다는 짧은 기록을 통하여 함축적으로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실로 의지할 유일한 혈족이요, 유사시 자신의 재산을 상속할 친족이기도 하였던 롯과 분가한 직후였고, 자신의 아내인 사라는 계속하여 불임(不姬)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눈으로만 볼 때에는, 하나님이 주신 땅과 자손에 대한 언약은 허황된 것으로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창조주로서 자신을 택해 주시고, 지금까지 매순간 이끌어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언약의 하나님을 향해 믿음과 경배의 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당장의 현실만 바라볼 때에는, 우리를 자신의 양자로 삼으시고, 장차 만유를 영원히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엡1:3-6 ; 2:6.7) 이 허황된 옛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또 거닐어 보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다다를 구원의 땅인 새 하늘과 새 땅 (The New heaven and earth)의 천국(天國)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 천국에서 누릴 우리의 구원은 눈으로 보고, 만지고, 거닐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실제적 구원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다갔던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의 삶과 바로 나 자신의 인생을 지금껏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며, 새로이 믿음의 단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히11:1.2 ; 유 1 :20).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본문을 보면 각자의 풍부한 소유로 인해 목초지와 물 부족 퉁의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서로 분리 하기에 이릅니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초지(草地)와 물은 생명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목 사회에서 초지와 물은 언제나 분쟁의 불씨였습니다. 본문에서도 보면 아브라함의 소유와 롯의 소유가 심히 많아지자, 그들의 목자 사이에서는 서로 초지와 물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다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툼은 비록 목자들간의 다툼이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아브라함과 롯 자신들이 다툰 것이나 진배없었고, 이것은 같은 혈육이자 같은 신앙의 동지로서 그들에게 결코 덕이 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일대 결단을 내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롯과 분리하기로 한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10절을 보면 롯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분리제의를 받고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땅은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도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요단 들을 택하여 아브라함 곁을 떠나 그곳으로 갔습니다(11절).
여기까지만 보면 롯이 요단 들을 바라본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성경의 내용을 보면 롯이 요단들을 바라본 것은 너무도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롯이 바라보고 떠난 요단 들은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곳으로, 하나님에 의해 멸망으로 정해진 땅이었던 것입니다(13절). 그리하여 요단 들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떠나갔던 롯은, 훗날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의 가나안 침공으로 말미암아, 모든 재산을 잃고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기도 했으며(14:1-16),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 때에는 유황불의 갯더미 속에서 목숨만 간신히 건지는 불행을 당하기도 했던 것입니다(19:1-38 ).
이와 같이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가 바라보는 것에 끌려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바라본다’ 는 것은 단순히 한 번 쳐다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을 얻기위해 간절히 사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튼 사람이 잘못된 것을 바라보게 되면 그는 파멸에 빠지게 됩니다. 하와는 잘못된 것을 바라보았다가 파멸에 이르게 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 동산에 두신 후에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시되,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영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2:17).
따라서 그들은 선악과를 절대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바라본즉,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하와는 하나님의 엄격한 금령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3: 6), 그 결과 그들에게와 그 안에서 난 온 인류에게는 온갖 질고와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롬 5: 12). 그렇습니다. 하와는 잘못된 것,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기에, 그녀 자신과 남편은 물론 온 인류를 온갖 질고와 죽음으로 몰아 넣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라보아서는 안될 것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요단들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음란과 방탕의 도성인 이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죄악의 도성인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또한 세상을 따라감으로써 세상과 같이 타락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때, 함께 멸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을 향했던 우리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나라를 얻기 위해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때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그 성품이 선하게 변화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게 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멸망의 고통을 당하게 될 때에 영원한 지복(至福)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여러분의 눈은 세상이 아닌 하늘에 고정되어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 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 두란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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