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1일은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폐질환의 원인으로 최초 추정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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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제 비록 슬프지만, 큰 배움이 있던 날이어서 이 곳에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눈발이 꽤나 거세게 흩날리던 어제, 서울지법 앞에서 일주일 넘게 점심 피켓팅을 하고 계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분을 뵙고 왔어요. 의료사협 연합회 차원에서 곁을 함께 지킬 단위를 조직하고 있고, 어제는 살림이 함께하는 날이었습니다.
도착해서 둘러보니 저 말고 두 분이 더 계셨어요. 한 분은 유한밀(연합회) 님이셨고, 다른 한 분께 소개를 청하니 5초 정도 머뭇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예요." 성함을 여쭈었지만 지긋이 웃기만 하셨어요. 헤어질 때까지 결국 존함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름없이, 즉 일상없이, 오로지 피해자로만 살아온 10년 넘는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져 아득했습니다.
혼자서, 40분 내내, 조근조근,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셨어요. 얼마나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셨는지 기승전결도, 시민에게 전해야 할 말도 명확하십니다. 악을 쓰지도 않으시고, 아주 차분하셨어요. 그게 더 저는 아리게 느껴지더라고요.
곁에서 말씀 들으며 그동안 따라가지 못했던 이슈 흐름도 알 수 있었고, 왜 이 사건이 '참사'로 제대로 이해되고, 인정받아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19년 넘게 여전히 피해가 진행 중인 '느린 참사' 입니다. 아주 어렸던 저의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고, 평생을 아팠기 때문에 아픈 게 정상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1심 무죄 판결로) 죄지은 사람이 없다고 하니, 용서를 할 수도 없어요. 죄가 인정되어야 용서도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 권리가 있을 때 용서도 할 수 있어요. 용서하고, 화해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있던 성분이 포함된 에어로졸 형태의 소독제를 코로나 때도 사용했어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반복됩니다."
내일 오후 2시, 항소심(2심) 선고가 있습니다. 특정 성분만 유해물질로 인정받아 1심에서 일부 제조 판매 기업만 유죄를 받았습니다. SK, 이마트, 애경산업은 무죄를 받았습니다. 피해자 중 절반이 후자의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관점이 좀 달라서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다른 피해자 분들이 혹여나 기대하실까봐 이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피해자가 거리에 서고, 거리를 지키고, 결국은 거리를 떠나는 풍경이 제가 어제 만난 이 분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사는 게 쉬웠던 시절은 없었겠지만, 요즘은 후퇴의 속도가 너무 빨라 당혹스럽습니다. 이런 마음 조각, 다들 품고 새해 시작하고 계실 것 같아요.
홀로 발언하시는 중간중간, 저에게 재차 "힘드시죠?"를 먼저 챙겨 물으셨던, 오늘도 잠시후 12시부터 마이크를 잡으실 이 분의 존함은 채경선. 가족 모두가 살균제 피해를 입으신,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단체 '831사회적가치연대' 대표이십니다.
내일 판결이 잘 나오도록 기도/기원해주시고. 주변에 소식 알려주셔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알려주신 덕에 사건도 기억하고, 결과도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2심 결과 기사 : https://m.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40111203703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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