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아들의 등록금을 냈다.
4학년 2학기.
마지막 등록금이었다.
그런데 늘 그랬던 대로 등록금은 0원 이었다.
군대 2년을 포함해 아들이 대학생활을 했던 지난 6년의 시간들을 되돌아 본다.
신입생으로서 입학할 때만 등록금을 냈고 그 다음부터는 늘 0원이었다.
0원이어도 은행에 가서 송금(?)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등록이 된다.
등록을 마쳤는데도 아들은 캠퍼스에 돌아가지 않았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미 충족해 둔 상태였기에 굳이 캠퍼스로 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대신 취업준비, 알바, 운동, 여행 등으로 나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도 2박3일 일정으로 통영과 거제지역을 여행 중이다.
2학기에 해당하는 9월부터 12월 사이에 취업을 할 생각인 것 같다.
"생각이다"가 아니고 "생각인 것 같다"고 하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옛날부터 그랬다.
우리 부부는 아들의 계획을 묻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라 아들의 진로나 계획 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이다.
"지 일은 지가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
우리 가족 4명은 만나기만 하면 치맥도 자주하고,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도 밤 늦게까지 얘기꽃을 자주 피운다.
대개 영화, 가문, 친구, 여행, 사진, 정치와 선거, 운동, 미래 등 다양한 주제들을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다.
가족들과의 대화가 제일 재미있고 즐겁다.
아들의 스타일은 대개 이렇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저 국토순례 600킬로 하고 올게요"
1학년을 마치고는 "아버지, 며칠 후에 저 해병대 입대합니다"
"혼자 지리산 종주 좀 하고 올게요"
"잠간 중국여행 좀 하고 오겠습니다"
"부산에서 마라톤 풀코스(42.195킬로)를 완주했는데 아버지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요"
뭐, 이런 식이다.
청년을 항상 믿었고 아들도 늘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깔끔하게 자기 인생을 경작해 나갔다.
인생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긴 호흡과 장기적인 시선을 갖고 일관되게 살자고 했다.
하지만 각 과정 과정마다에 디테일한 간섭이나 참견은 하지 않았다.
그냥 맡겨두고 뒤에서 기도하는 편이다.
지금 대학 4학년 2학기지만 우리집에서 3명이 함께 산다.
다른 가정에 비해 이런 저런 대화는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아들의 취업에 관한 얘기는 지금까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지 인생인데 지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장교 후보생들 30명을 데리고 9박10일간
미국의 웨스트 포인트, 아나 폴리스, 유엔, 팬타곤 등에 간 딸에 대해서도 거의 그랬다.
자식들에 대한 무관심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새벽에 더 많이 기도했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나 홀로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글을 숱하게 썼으며,
더 간절한 소망을 담아 하나님께 저들의 미래와 헌신하는 삶을 당부드리곤 했었다.
다만 표현방법이나 소통 스타일이 다를 뿐이었다.
마지막 등록을 마치고, 총알같이 흘러버린 지난 6년을 반추했다.
청년의 삶은 멋지고 당당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훌륭한 아웃풋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방향과 철학에 맞게 도전하며 배려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이 관리하는 개인 블로그에도 오늘 이 시간 현재 누적 방문자가 3,950,046명이다.
근 400만 명이 들어왔다는 것은 유용한 콘텐츠가 그 안에 있었다는 얘기고, 한결같이 관리했다는 뜻이겠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들과 함께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다.
자신만의 시선과 마음의 프레임으로 찍어 온 많은 사진들을 같이 보면서 남녘바다의 초가을 느낌을 공유해 보고 싶다.
아직 나이는 젊지만 사진에 조예가 있다는 것은 주위에서도 모두 인정하는 바니까.
청년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스물다덧 살.
참 빛나는 나이다.
부럽기도 하고.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깊은 신뢰, 사랑, 배려의 과정이 참으로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입니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비오던 날 완주하던 사진속 밝은 얼굴이 생각나네요.
건실한 청년이 이 나라의 밝은 내일이리라 믿습니다.
행복과 희망을 주시어 감사 드립니다.
내 친구. 아이들 참 잘 키웠다!부모가 믿고 맡긴대로 아이들은 또 자신들의 삶을 충실히 꾸려가고 있구나. 가족 간의 신뢰만큼 중요한 요소가 어디 있겠냐?친구는 겸손하게 그저 믿고 맡겨다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거울과 같은 존재. 올곧은 부모의 삶을 보고 그 뒤를 따르다 보니 아이들도 올곧게 성장할 수 밖에.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더 기대된다!
항상 내게 배움과 영감을 주는 친구에게 새삼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맙다.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