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소의 물냉이
함영연
함박마을 도래강에는 물웅덩이 도래소가 있어요.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도래소는 햇살이 내려와 반짝이고, 송사리 떼가 한가롭게 놀았어요. 여름 한낮에는 마을 아이들이 더위를 피해서 풍덩풍덩 물놀이를 하다가 갔지요. 도래소 근처에 있는 물냉이는 경쾌하게 흘러드는 물소리를 들으며 싱싱하게 자랐어요.
물냉이는 뿌리로 물을 힘껏 빨아들이며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흰여뀌 가까이에 낯선 식물이 눈에 들어왔어요.
-뭐지?
궁금해서 갸웃하는데, 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건우의 목소리도 들렸어요. 건우는 물놀이 하다가 강가에 있는 식물들을 살피곤 했어요.
“여기는 얼음물처럼 시원해.”
“물이 얼마나 맑은지 송사리 떼가 다 보여!”
아이들은 도래소에 발을 담그고 찰방찰방 물장구를 쳤어요. 그러다가 풍덩 뛰어들어 물보라를 만들었지요. 물냉이는 해맑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았어요.
“얘들아, 저기 농산물 창고로 쓰던 건물 있잖아. 그곳에 플라스틱 공장이 들어선대.”
한 아이가 손으로 가리켰어요. 그곳은 강 위쪽에 있는 창고 건물이었어요. 농산물을 보관하던 창고였는데, 농사 짓는 집이 줄면서 몇 년째 비어 있었어요.
“거기서 뭘 만드는데?”
“플라스틱 제품들이겠지.”
“공장이 들어오는 걸 어른들이 반대하잖아.”
“비어 있느니 이용하는 게 낫다는 사람들도 있대.”
“건우야, 너네 아빠가 환경 지키는 일을 하신다고 했잖아.”
“맞아. 아빠가 출장 가셔서 통화만 했는데, 공장 폐수가 강으로 흘러들기라도 하면 물고기와 풀들이 살 수 없다고 걱정하셨어.”
-뭐?
물냉이는 그 말이 확 들어왔어요. 근처에 촘촘히 나 있는 흰여뀌를 보았어요. 흰여뀌는 한참 물이 올라 새뜻했어요.
-너도 들었지? 폐수가 이곳으로 올 수 있대
물냉이는 여뀌에게 알려줬어요.
-별 일이야 있겠니?
물냉이의 마음을 읽었는지 흰여뀌가 안심을 시켰어요.
-난 이곳이 더러워질까 봐 겁나. 지금처럼 싱싱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물냉이가 걱정을 드러냈어요. 그래도 흰여뀌는 덤덤했어요.
-당장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뭘.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해.
물냉이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어요.
며칠 동안은 별 일이 없이 지냈어요. 그렇게 평화로운 날이 이어지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 쪽에서 기계 소리가 들리더니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엉켰어요.
“주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데, 프리스틱 공장이 들어선다는 거예요? 절대 반대예요.”
“맞습니다. 공장이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도래강 오염을 막아야 합니다.”
“옳소, 반대한다! 반대한다!”
사람들의 외침이 허공으로 울려 퍼졌어요.
-강물이 더러워지면 안 돼요.
물냉이도 마음을 보탰어요.
사람들의 반대에도 플라스틱 공장은 시설을 갖추고 입주를 강행했어요.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었어요. 강으로 시꺼먼 물이 흘러들었어요. 검은 물은 도래소에 고이고 근처 흙에도 스미고 있었어요.
-왜 이러지?
물냉이는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어요. 강물을 세차게 두드리던 비가 그쳤어요. 물냉이는 쓰러지지 않고 버틴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주위를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송사리들이 떼 지어 불안하게 빙빙 돌고 있는 거예요.
-아푸아푸! 찌른내, 쓴내, 톡 쏘는 냄새……. 켁켁!
송사리들이 고통스러워 몸부림을 쳤어요.
-저건…….
물냉이는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파란 하늘을 가리는 날이 많아지면서 도래소의 맑은 물은 어느새 검은 물로 바뀌어 갔어요.
-저럴 수가!
송사리 떼가 뒤집혀 둥둥 떠내려가고, 흰여뀌도 거무죽죽 시들고 있었어요.
-여뀌야, 정신 차려.
물냉이가 소리쳤어요.
-뿌리가 쓰라려서 견딜 수 없어.
-나도 그래.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물냉이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흰여뀌 근처에 있던 낯선 식물은 며칠 새 부쩍 웃자라 있었어요.
-너희는……?
물냉이는 전에 궁금했던 기억을 되살렸어요.
-우리? 우린 미국자리공이야.
-괜찮니?
-그렇게 허약해서야 어디 살아남겠니? 우린 끄떡없어.
미국자리공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어요. 물냉이는 뿌리로 몰려드는 더러운 물로 점점 버티기 힘들었어요. 더 이상 그곳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아이들이 물장구치는 곳이 아니었어요. 찾아온 아이들도 코를 움켜쥐고 달아났어요. 물냉이는 맑은 물을 흠뻑 머금던 일이 아득했어요.
-으윽, 힘들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우린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약한 너희들이 자리를 내주면 고맙지. 낄낄낄…….
미국자리공이 빈정댔어요.
-힘들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해야겠니?
-그럼 우리처럼 강하면 되잖아.
미국자리공은 기다렸다는 듯이 풀들이 시든 자리로 뿌리를 쭉쭉 뻗어나갔어요.
-아, 예전처럼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냉이는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지탱했어요.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으윽…….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어요.
“아빠, 빨리 가 봐요.”
그때 재촉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건우였어요. 건우는 몇 번 도래소를 찾아와서 코를 움켜쥐고 돌아가서는 뜸했어요.
-건우야, 도와 줘.
물냉이는 건우가 어서 봐주기를 바랐어요.
“아빠 출장 가셨을 때 전화로 말했잖아요. 저기가 플라스틱 공장이에요.”
건우가 손으로 가리켰어요.
“출장이 길어져서 미안했어. 어이쿠, 냄새! 플라스틱 제품으로 생활이 편하자고 강물을 오염시키다니!”
“아예 플라스틱 물건을 쓰지 않으면 공장이 있을 필요가 없을 텐데요.”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는데, 생각처럼 쉬운 일이니?”
“그럼 어떡해요?”
건우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당장 안 쓸 수는 없어도 쓰는 걸 줄이려고 해야지. 물이 고여 있으니 도래소 오염이 더 심하구나.”
아빠의 얼굴에도 근심이 드리워졌어요.
-우리도 힘들어요. 하필 저기에 공장이 들어와서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살만 한데 웬 난리냐?
물냉이의 하소연에 미국자리공이 불뚝거렸어요. 말본새가 얄미웠어요.
-어쩜 너희만 생각하니?
-그게 뭐 어때서? 어떻게든 살아내겠다는데.
쏘아대기까지 했어요.
그때였어요.
“아빠, 이건 무슨 풀이에요? 전에는 별로 없었는데 이 풀만 엄청 많아요.”
“어? 미국자리공이네. 열매와 뿌리에 독이 있고, 흙을 강한 산성으로 변화시켜서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식물인데.”
아빠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어요.
“미국자리공아, 왜 미국자리공인지 몰라도 다른 풀들을 못 살게 하면 안 돼!”
건우가 허리에 손을 얹고 호통을 쳤어요.
“네 말이 먹히면 얼마나 좋겠니? 미국자리공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라서 붙여진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자리공, 섬자리공이 있고 외래식물인 미국자리공이 있단다.”
“아, 그렇군요. 이건 뭐예요?”
드디어 건우가 물냉이에게 눈길을 주었어요.
“이건 물냉이야. 깨끗한 물에서 사는 정수식물이지. 물냉이로 물의 오염을 알 수 있기도 한데, 물냉이가…….”
아빠의 얼굴이 어두워졌어요.
“왜요? 잎은 파릇한데요.”
“미국자리공이 저렇게 무성한데 물냉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게 용하다.”
“아, 안 돼요! 아빠, 물냉이도 살리고 도래소도 맑아지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야지. 우리 주위에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를 보면 환경이 어떤가를 알 수 있거든. 물냉이가 힘을 낼 수 있게 애써보자.”
“빨리 빨리요.”
“알았어. 혼자는 힘드니까 마을대책위원회 사람들을 만나서 의논하고, 해결될 때까지 공장 폐수가 개천으로 흘러들지 않게 감독해야겠다.”
아빠는 자료로 삼으려는지 도래소 주위를 사진으로 담았어요.
“물냉이야, 힘들었지? 조금만 기다려. 우리가 도와줄게.”
건우는 물냉이를 애잔한 눈으로 보았어요.
아빠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어요.
“마을회관에 가시려고요?”
“공장에서 마을 대표들과 만나기로 했어. 먼저 폐수처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아빠, 잠시만요! 우리 이것부터 없애요. 주위에 어떤 식물이 자라는지도 중요하다면서요. 전 물냉이가 많이 자라면 좋겠어요.”
건우가 미국자리공을 잡아당겼어요.
-으악, 으윽! 살기 위해 더러운 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물냉이는 하늘을 찌를 듯 기세등등하던 미국자리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어요.
-난 너희들처럼 혼자만 생각하지 않을래. 어울려 사는 마음을 가질 거야.
물냉이는 뿌리가 따갑고 아렸지만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했어요. 가칫해진 줄기에도 힘을 주어 곧추 서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물냉이를 응원하듯 눈부신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고 있었어요.
출처 : 2021 강원아동문학 제 46집
첫댓글 '난 너희들처럼 혼자만 생각하지 않을래. 어울려 사는 마음을 가질 거야'
환경동화에서 배려도 배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운언니님 작품에서도 '소'가 나왔는데, 함교수님 작품에서도 '도래소' '소'가 나오니 반가웠어요.
물을 맑게 하는 자정능력이 우수한 식물을 시내나 강에 많이 심어야겠어요.
훌륭한 환경동화 잘 읽고 배웁니다.